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ome Nov 17. 2023

와인과 낭만

허영과 진정성 사이에서

우리 집 거실에는 수십 병의 와인을 쟁여놓은, 전자식 와인셀러가 있다. 현관문을 열고 거실에 들어오는 순간 잘 보이는 위치에 놓여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의례 집주인인 내가 와인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는 나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었지만, 그들의 생각은 완전히 틀린 것이다. 


내가 와인과 셀러를 구매한 이유는 와인을 즐겨서가 아니었다. 언젠가 와인을 취미삼아 즐기는 지인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와의 대화는 종종 와인 동호회에서의 활동이나 고급와인의 역사, 때론 맛의 품평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흥미롭지 않았다. 나는 사실 맥주나 소주의 브랜드별 차이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내 혀는 비교적 단순해서 매운맛이라고 알려진 통각과 단맛, 짠맛 정도를 느끼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와인이 취미인 그가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평소 와인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를 하면 꽤나 흥미로워 했다. 


이러한 경험들은 결국 나의 허영심에 불을 지폈다. 사람들에게 떠들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와인관련 서적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나는 와인의 깊은 세계를 몸소 체험한 것이 아니라 글로 접했다. 와인의 역사, 각 국의 제작 환경 등 그리고 와인 라벨을 읽는 방법까지 모두 글에서 배웠다. 이 방식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와인코너의 판매원조차 내가 와인에 취미를 가진 사람인 것처럼 인식했다. 와인을 구매하지 않았음에도 판매원은 자신의 명함과 각종 브로슈어를 제공하며 다음에 자신을 꼭 찾아 줄 것을 당부했다.


그 후 나는 실제로 다양한 와인을 구입했다. 하지만 나는 정작 와인의 깊은 풍미를 느끼지 못했다. 여전히 나에게는 단지 술에 불과했다. 그것은 현재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내 와인셀러와 와인들을 허세로 가득한 장식품이라고 비아냥댄다 해도 할 말이 없다. 물론 와인에 대한 만족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제공하는 것처럼 느껴져 매력적이긴 하다. 그렇더라도 와인에 대해 잘 모르는 나에게는, 실제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와인을 즐기는 것이 사람들에게 특별한 만족감을 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나의 현실과는 다른 것이다. 사람들의 이러한 인식적 배경에는 와인의 역사와 발전과정과 관련이 깊다. 


와인은 기원전 8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의 조지아 지역에서 발효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또한 고대 이집트에서도 토기에 와인을 저장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으며, 무덤 벽화와 유물에서도 확인된다. 이로 미루어 와인은 고대의 사회적, 종교적 생활의 중심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 와인은 신화에서 종종 등장한다. 특히 그리스 신화의 바카스(디오니소스)의 이야기에서 중요하게 나타난다. 바카스는 와인, 축제, 쾌락의 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신화에서 바카스는 인류에게 포도주의 제조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축제와 기쁨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고대 그리스에서 '디오니소스 축제'는 그를 기리는 중요한 사회적 의식이었다. 


당시 디오니소스는 변화와 재생을 상징했다. 따라서 와인은 단순히 쾌락의 매개체가 아니라 변화와 각성의 수단으로 기능한다. 와인을 통해 사람들은 일상적인 한계를 넘어서고, 새로운 인식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자유의 상징적 의미는 결국 사회적 규범과 제약에 도전을 의미했다. 디오니소스가 반항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성격의 소유자로 묘사된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바카스(디오니소스)는 다양성을 상징하는 신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디오니소스의 신화에서 보듯 와인에 대한 인식을 해방과 변혁의 수단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왜 굳이 포도로 만든 술이 중요했을까? 이는 아무래도 지중해 문화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특히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는 포도 재배에 적합했고, 포도는 곧 풍요의 상징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포도에서 파생된 와인도 풍요의 중요한 상징이었을 것이다. 포도가 발효되어 와인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자연의 순환과도 연결되며 이러한 변화는 바카스(디오니소스)가 상징하는 삶과 죽음, 재생의 주제와 연결이 된다. 실제 이 지역의 주요 산업적 기반은 포도와 와인의 제조였고, 와인은 신들에게 제공되는 주요한 공물로 사용되었다. 종교적 축제와 의식에서 중요한 위치가 된 것이다.


그렇기에 포도와 와인은 인간을 억압하는 근본적인 상황들에 대한 저항의 도구로서 역할이 강조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 이러한 요소는 많은 당시 문학과 예술에서 사랑, 열정, 감각적 즐거움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와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 와인은 예수와 제자들의 신성한 만찬을 나타내며, 기독교에서 와인이 상징하는 '피'와 연결된다. 이 작품은 와인이 단순한 음료를 넘어서 영적,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카라바조의 '바쿠스'라는 작품도 있다. 이 그림은 로마 신화의 와인 신 바쿠스를 젊고 관능적인 모습으로 묘사하며, 와인이 감각적 즐거움과 연관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와인잔을 들고 있는 바쿠스의 모습은 와인이 쾌락과 사치의 상징이었던 바로크 시대의 정신을 잘 나타낸다.


이와 달리, 에두아르 마네의 '폴리의 바에서'는 와인을 더 현대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에서 보여준다. 이 그림에서 바 바텐더는 와인잔을 들고 있으며, 이는 당시 파리 사회의 사교적 측면과 여성의 역할을 상징한다. 와인은 이 작품에서 사회적 상호작용과 현대 도시 생활의 한 부분으로 표현된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와인은 다양한 시대와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예술작품을 통해 그 의미도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와인은 단순한 음료를 넘어서 유럽의 문화와 전통, 역사를 상징하는 럭셔리한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와인은 점차 종교적 신성함이 반영된 고급스러운 문화와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와인을 즐기고 이해하는 것은 이제 단순한 취미를 넘어서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방법이었다.


실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과 같은 와인 생산국에서는 와인 제조가 예술적이고 정교한 과정으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생산된 고품질의 와인은 단순한 음료를 넘어서 그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반영하는 예술품으로 여겨졌다. 와인의 품질, 제조 과정, 원산지에 대한 깊은 지식은 고급문화와 교양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사람들은 와인을 즐기는 것이 높은 사회적 지위와 문화적 세련됨을 나타내는 행위처럼 인식했다. 


이러한 흐름은 와인 산업을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특히 프랑스의 와인은 품질 관리와 분류 시스템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보르도와 부르고뉴 지역의 와인은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이러한 와인을 소유하고 즐기는 것은 사회적 지위와 맛에 대한 세련된 이해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도 와인은 지역의 특색과 전통을 담아내려 했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그들의 역사와 문화적 자부심을 반영한다.


그러나 와인의 역사와 전통을 위협할 만한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다. 19세기 후반, 유럽 와인 산업은 뿌리혹진드기(Phylloxera)라는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북아메리카에서 유래한 해충은 유럽 대륙에 건너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의 포도밭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유럽의 포도 품종들, 특히 까베르네 소비뇽 같은 유명 품종들에서 발생했다. 이 해충은 포도의 뿌리를 공격하여 전체 포도나무를 죽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유럽의 와인 산업은 거의 붕괴 직전까지 이르렀다.


유럽 와인 생산자들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북아메리카 원산의 포도 뿌리에 유럽 품종의 포도나무를 접목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 접목 방식은 유럽 품종의 포도나무 상부가 북미 원산의 뿌리혹진드기에 저항력이 있는 뿌리에 접붙이는 것이었다. 이는 성공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포도의 맛이나 와인의 품질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유럽의 오리지널은 사라졌다고도 할 수 있다. 까베르네 쇼비뇽의 뿌리는 북아메리카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중요한 사건도 있었다. 1976년의 '파리 와인 테이스팅'에서 유럽의 와인을 대표하는 프랑스 와인이 미국의 와인에게 패배한 사건이다. 사람들은 이를 '파리의 심판'으로 부른다. 이 행사에서 캘리포니아 와인과 프랑스 와인이 블라인드 테이스팅 방식으로 비교 평가되었다. 참가자들은 주로 프랑스 출신의 와인 전문가들이었으며, 그들은 각 와인의 맛과 품질을 평가했다. 놀랍게도 결과는 프랑스 와인이 아닌 캘리포니아 와인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특히 샤르도네와 카베르네 소비뇽 카테고리에서 캘리포니아 와인이 최고 점수를 받았다. 이 사건은 와인에 대한 프랑스의 독보적인 지위가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오늘 날 여전히 누군가는 와인을 “신의 눈물” 혹은 “신의 눈방울”로 부르며 추앙한다. 이는 와인이 갖는 종교적 신성함을 반영함과 동시에 와인이 갖는 순수함과 고귀함을 강조하는 의미가 녹아 있다. 그래서 와인은 때때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의 선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결국 우리가 만든 환상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이처럼 와인이 아무리 고급문화를 상징한고 칭송 하더라도 결국 뿌리를 지키지 못한 품종, 자부심으로 가득했던 맛의 품질조차 밀리게 되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나의 와인에 대한 관심은 분명 와인의 본질이 아니라, 단지 누군가에게 잘난 척하고 싶어 한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태생적으로 맛에 민감하지 않은 나에게는 와인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다. 물론 라벨을 보고 그럴싸한 말들을 할 수는 있었지만 그게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사회에서는 와인뿐만 아니라 수많은 럭셔리한 제품들을 생산한다. 이러한 제품들은 종종 그 자체보다는 그것이 대변하는 지위와 상징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소비된다. 그렇다면 나의 와인셀러 역시 이러한 사회적 현상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현상의 일부일 수 있다. 우리는 종종 물건이나 경험을 통해 타인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어떤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를 중시한다. 와인을 즐기는 것이 나의 허영을 만족시켰던 것처럼, 많은 럭셔리 제품들이 그 자체로의 가치보다는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낭만은 진정성의 반영이어야 한다. 진정으로 와인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낭만적일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다면 허영과 사치에 불과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낭만이 물질적인 소유가 아니라 진정한 만족과 행복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고작 와인 한 병이나 와인셀러는 그래서 내게 낭만이 아니다. 때론 낭만은 소주 한잔으로 나누는 수다로도 충분하다.



작가의 이전글 문해력과 낭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