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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ome Jul 19. 2024

숲속의 사색

숲속의 사색

햇살이 좋은 주말 오후, 나는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수원지를 찾았다. 그곳에는 녹색의 잎사귀가 가벼운 바람에 흔들리고 그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아름다운 숲길이 펼쳐져 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아래서 부서지는 낙엽 소리는 마치 옛 기억을 꺼내놓는 듯하다. 오래된 나무 그늘 아래 놓인 작은 벤치는 쉼을 재촉한다. 나는 벤치에 앉아 숲을 보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정말 숲인지 의문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숲은 단순히 나무들이 모여 있는 장소가 아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숨쉬고, 그들 모두가 서로 얽히고설키며 하나의 생명체를 이룬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의지한다. 서로 다른 생명들이 만들어내는 이 복잡한 관계망은 단순한 합을 뛰어넘는 숲의 독특함을 만들어낸다. 하나의 사건이 다음 사건을 촉발하고 그 결과가 누적되어 복잡한 패턴을 만들어 자신을 완성한다. 그렇게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와 서로 연결된다. 그래서 숲은 종잡을 수 없는 변화가 된다.


누군가 숲의 진면목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그 안에 깊숙이 파고들기보다는 오히려 숲 밖에서 바라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전체를 볼 수 없을 때 생략은 좋은 타협이 될 수 있으니까. 눈에 보이는 것들은 숲의 전체는 아니지만, 자신에게 전부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 전부를 믿어야만 비로소 그 숲의 진실된 아름다움과 마주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자신만의 진실은 언제나 외줄 타기와 같아서, 조금만 균형을 잃어도 모순의 늪에 빠질 것이다.


불교의 경전인 열반경(涅槃經)에는 맹인모상(盲人模像)이라는 말이 있다. 맹인들이 코끼리를 만진다는 뜻이다. 맹인은 코끼리의 배를 만진 후 벽과 같다 했고, 다리를 만진 후 기둥과 같다고 말했다. 그들의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닌 진실이었지만 코끼리가 어떤 모습인지 알고 있는 사람에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알다시피 코끼리는 벽도 기둥도 아니다. 부분은 전체를 대신할 수 없고, 반대로 전체도 부분을 대신할 수 없다. 


그럼 코끼리는 무엇인가? 코끼리는 '사실'이면서도 ‘상상’이다. 변하지 않는, 오직 하나의 실체를 나타내는 객관적인 상태인 동시에 우리의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규정된 전체다. 그렇기에 우리가 무언가를 '이해'하거나 '알고' 있다고 믿는다고 하여 그것이 반드시 사실이 될 수는 없다.


물론 인간은 성찰하는 존재다. 자주 과거의 실수를 깨닫고, 해결책을 찾는다. 성찰은 스스로의 생각, 감정, 행동, 동기 등을 자각하고 평가하는 과정이다. 모든 이는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고, 그에 관해 깊이 생각하며, 자신의 행동과 사고를 조절한다. 그럼에도 내가 숲에서 숲을 보며 숲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잘못된 믿음은 끝없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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