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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슈아 Jul 30. 2022

[Politics] 동성연애를 반대하는 이유

On the Abolition of Homosexualism

본 글의 목적은 동성연애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논증하는 데 있다. ‘동성연애(homosexuality)’란 동성을 향한 성적 끌림(sexual attraction), 동성과의 성관계(sexual behaviour), 동성연애자로서의 성적 정체성(sexual identity)를 포괄한다. 필자가 느끼기에, 동성연애와 관련된 토론은 다른 논쟁거리들에 비해 감정적으로 격양되는 경향이 있는듯 하다. 본 글에선 격양된 열변은 가능한 삼가고, 가능한 차가운 이성으로 동성연애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나는 동성연애가 일반화되는 것에 반대한다. 그리고 동성연애를 사회규범적 측면에서 폐지(abolish)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1) 보건상의 이유, 2) 사회문화적 이유, 3) 철학적 이유가 그것이다.


1. 누구도 아플 권리는 없다


‘건강의 문제’는 동성연애의 일반화를 옹호하는 측이 한사코 침묵하는 분야다. 그리고 반대하는 측에서 가장 “객관적으로” 논증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동성연애 행위는 건강일반에 해롭다. 다시 분명히 말하겠다. 동성연애행위는 건강에 해롭다.


동성연애자가 이성연애자에 비해 ‘덜’ 건강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국제역학저널(The International Journal of Epidemiology)에 따르면, 1987-2002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파악된 AIDS 사망자 중 무려 95%가 남성 동성연애자 혹은 양성연애자였다. 해당 보고서는 20대에 동성연애를 시작한 남성들의 절반이 65세가 되기 전에 사망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북유럽 국가들도 비슷한 실증적 데이터를 제공한다. 2000년대 초에 행해진 연구에 따르면, 덴마크의 경우 이성연애자의 평균수명은 남성과 여성이 각각 74세, 78세였다. 반면 동성연애자의 경우, 평균수명은 51세, 52세에 불과했다. 평균수명에서 무려 ‘23’년이나 차이가 난 것이다 (김지연, 2019: 113-116). 폴 캐머런 연구팀도 2005년에 유사한 결론에 이르렀다. 이들은 「마약 복용, 매춘, 흡연만큼 위험한 동성 간 성행위(Homosexual Sex as Harmful as Drug Abuse, Prostitution, or Smoking)」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동성연애자의 평균수명이 이성연애자에 비해 약 24년 짧다고 발표했다 (Cameron et al, 2005).


동성연애 행위는 사람의 수명을 ‘갉아’먹는다. 동성 간 성관계를 통해 각종 질병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는 후천성면역결핍증, 즉 AIDS가 있다. HIV는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약 7천 만 명 이상을 감염시켰다. 그리고 약 3천 4백 반 명을 죽음으로 몰고갔다. 잘 알려져 있듯, 가장 보편적인 AIDS 감염 경로 중 하나가 바로 ‘성관계’다. 대한민국의 경우 HIV 감염자의 99%가 성관계를 통해 감염되었다 (김지연, 2019: 411).


AIDS와 동성연애 사이의 높은 상관관계는 다국적 통계 자료에 의해 실증적으로 입증되었다. 태국 방콕의 경우, 남성 동성연애자의 3분의 1이 AIDS 감염자이며 (Parry, 2013), 남성 동성연애자의 HIV 감염률은 미국, 스페인, 칠레, 태국, 말레이시아, 남아공, 기타 아프리카 및 카리브해 국가에서 15%를 초과했다 (김지연, 2019: 365). 미국 동성연애자들의 AIDS 역사는 특히 눈에 띈다. 미국 최초의 AIDS 감염자 5명 전원이 동성연애 행위에 매우 적극적인 동성연애자들이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The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에 따르면, 미국 동성연애자는 인구 2% 남짓이다. 하지만 AIDS 감염자 중 무려 70%를 차지한다. 게다가 미국 청소년 AIDS 감염경로의 90% 이상이 남성 간 성관계로 밝혀졌다 (CDC, n/aA; 2001; 2018).


대한민국도 만만치 않다. 국내 18-19세 HIV 감염자의 93%가 다름아닌 동성 간 성행위를 통해 감염되었다. 20-24세는 75%, 25-29세는 66.6%에 달한다 (김준명 외, 2018). 이처럼 한국을 포함해 유럽, 미국, 호주, 일본 등에선 동성연애가 AIDS 감염원인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김지연, 2019: 343; 350; 411). 참고할 만한 동성애-AIDS 관련 통계들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았다.


미국: AIDS 감염자 중 70%가 남성 동성연애자

미국: 청소년 AIDS 감염 경로의 90% 이상은 남성 간 성행위

영국: 남성 동성연애자의 경우 20명 중 1명 꼴로 AIDS에 감염 (이성연애자의 경우 667명 중 1명)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여성 동성연애자 중 9%가 AIDS에 감염

캐나다: 1987-1992년 사이, 밴쿠버 AIDS 사망자 중 95%가 남성 동성연애자 및 남성 양성애자

캐나다: HIV에 신규 감염되는 이들의 절반이 남성 동성연애자

캐나다: 2003년 기준, 남성 동성연애자의 AIDS 유병률 5.4% (전체 인구의 AIDS 유병률보다 67% 높음)

독일: 전체 AIDS 감염자 중 3분의 1이 남성 동성연애자

중국: 베이징 신규 AIDS 감염자 82%가 남성 동성연애자

일본: HIV 감염의 70% 이상 남성 간 성관계에서 비롯됨


이런 통계들은 극우 연구진들의 ‘편견’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성소수자에 대한 음모’인가? 결코 아니다. 동성연애 행위가 AIDS 발병률과 높은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세계보건기구인 WHO는 남성 동성연애자를 언제나 HIV 감염의 핵심집단 1순위로 꼽아왔는데, WHO에 따르면,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남성은 HIV 감염률이 일반 이성연애자에 비해 19배나 달하기 때문이다 (WHO, n/a; McAleenan, 2014).


조병희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동성연애자들이 AIDS와 관련해 주목받는 이유를 항문성교 등, 상대적으로 감염에 취약한 성행위를 구사하는 경향에서 찾았다. HIV는 항문성교를 통해 상대적으로 쉽게 전이된다 (김지연, 2019: 451). 런던대학교(ICL)의 한 연구진도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다. 남성 간 성행위에서 수동적 역할을 하는 행위자는 성관계 1회당 HIV 감염률이 1.4%에 달한다. 정상적인 성관계에서 여성이 HIV에 감염될 확률보다 무려 18배나 높은 셈이다 (김지연, 2019: 346). 미국 질병관리본부도 유사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항문성교시 수동적인 역할을 하는 파트너는 삽입하는 측보다 HIV 감염에 13배 취약하다 (CDC, n/a). 전세계 의대생들의 교과서라 불리는 『해리슨의 내과학 원론(Harrison’s Principles of Internal Medicine)』 이런 연유에서 남성 동성연애자들 사이에서 확산되는 HIV에 주목한다 (Kasper et al, 2015).


방지환 보라매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AIDS가 남성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주로 유행하는 질병이라는 것은 여러 정황상 100% 확실하며 AIDS 전문가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들이 AIDS의 진원지라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남성 동성애자들의 거센 반발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남성 동성연애자들은 AIDS 감염 고위험군이기 때문에 “반드시” AIDS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지연, 2019: 452-453). 길원평 부산대 교수도 방지환 교수와 의견을 공유했다.


“여러 과학적 근거에 의해서 국내 에이즈와 남성 동성애는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는 동성애와 에이즈의 관련성에 대한 보도를 금지시키고, 한국 질병관리본부와 전문가들은 동성간 성접촉이 주요 감염 경로라는 사실을 밝히기를 두려워한다. 한국 질병관리본부은 미국과 일본의 질병관리본부와 같이 에이즈 주요 감염 경로가 동성간 성접촉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국민들에게 알려주어서 에이즈 감염 급증을 막아야 한다 (길원평, 2018).”


맞다. 동성연애 옹호자들이 말하듯, 모든 남성 동성연애자들이 AIDS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 영국, 일본 할 것 없이, AIDS 유병률은 ‘게이들’에게서 가장 높다.


이러한 보건적 경각심은 정책에 반영되었다. 미국식약청과 미국보건복지부는 남색하는 동성연애자들이 헌혈하는 것을 금했다. 이유는 남성 동성애자들과 양성연애자들의 HIV 감염률이 이성연애자들에 비해 도합 60배 이상이기 때문이다 (Verbruggen, 2019). 2019년 기준으로, 남성 동성애자의 헌혈을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금지시킨 나라는 다음과 같다:


독일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벨기에

브라질

네덜란드

홍콩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이스라엘

스위스

일정기간 성관계 하지 않은 경우에 허용: 대한민국, 미국, 호주, 캐나다, 핀란드, 영국, 일본, 뉴질랜드, 스웨덴


동성연애자들이 비단 AIDS에만 취약한 것도 아니다. 이질, 아메바 감염증, 항문암, 매독부터 변실금, 자궁암, 유독성 대장균, 심장병 및 각종 성병에 이르기까지, 동성연애자들이 이성연애자들에 비해 취약한 질병은 종류도 다양하고 심각성도 크다.


간염은 A형, B형, C형 모두 동성연애와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이는데, 한 연구에 따르면 항문삽입 후 구강성교를 펼치는 남성 간 성행위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Gills et al, 1992 254-257). 게다가 게이장증후군(Gay Bowel Syndrome)은 증상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유독 남성 동성연애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질병이다. 이질, 곤지름, 치핵, 직장염, 치루, 치열, 아메바성 이질, 항문소양증, 간염, 임질, 매독 등 정상인이라면 하나도 걸리기 힘든 질병이 한 사람에게 동시다발적으로 관찰되었고, 의료진들은 이를 감염자집단의 공통된 정체성을 따서 '게이장증후군'이라 명명했다 (김지연, 2019: 170). 아래는 동성연애와 관련된 유의미한 의학적 통계들을 정리한 것이다. (동성연애가 이성연애에 비해 비정상적인 건강상태에 이바지 한다는 통계 자료는 이외에도 수없이 많다.)


미국: 2015년 포틀랜드 이질감염 사례 총 103명 중 75%가 남성, 그중 절반이 동성연애자

미국: 2012년 A형 간염 신규 감염자 10%가 남성 동성연애자

미국: 2014년 매독 감염자 83%가 남성 간 성관계 경험자

미국: 샌프란시스코 매독 환자의 90%가 남성 동성연애자

미국: 2015년 샌프란시스코 임질 감염자 중 88%가 남성 동성연애자

영국: 런던 매독 감염자 중 90%가 남성 간 성행위 경험이 있다고 밝힘 (남성 동성애자는 런던 성인 인구 중 불과 2%)

영국: 2016년 7월-2017년 3월, A형 간염 신규 감염자 74%가 남성 동성연애자

영국: 2015년 기준 임질 감염자 중 70%가 남성 동성연애자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 매독 환자의 85%가 남성 동성연애자

캐나다: 온타리오 주 매독 환자의 88%가 남성 동성연애자

일본: 도쿄, 요코하마, 오사카 등 아메바 감염 관련 증후군 환자 58명 중 56%가 남성 동성연애자 (그중 45%는 매독균도 동시에 감염)


남성 동성연애자의 항문암 환자 비율은 이성연애자 남성의 17배

남성 동성연애자의 매독 감염자 비율은 이성연애자 남성의 106배 (여성 이성애자에 비하면 168배)

B형 간염 신규 감염자의 15-25%가 남성 동성연애자


나는 이런 실증적 데이터들에 의존하여 동성연애 폐지론을 주장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방역 사례처럼, 국가에게 공동체에 해가 될 질병을 예방할 의무가 있다면, 동성연애 행위 또한 사회규범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그리고 동성연애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는 놀라운 발상이 결코 아니다. 현재 코로나바이러스 시국에서 마스크를 쓰게 하거나, 식당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거나, 손소독제를 배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동성연애 행위가 그토록 다양한 바이러스에 행위자를 노출시켜 수명을 좀먹는다면, 그리고 특히 권관우 한국에이즈퇴치연맹 상임부회장이 주장했듯, AIDS가 동성연애자에게서 양성연애자에게로, 양성연애자에게서 이성연애자에게로 전이되는 경향을 보인다면 (권관우 상임부회장은 남성 간 동성연애를 AIDS 확산의 진원지로 지목했음 (김지연, 2019: 452-453)), 우리 사회는 동성연애를 규범적으로 폐지해야만 한다.


동성연애는 방역의 대상이다. 그것이 아무리 ‘권리’의 이름으로 서 있을지라도 말이다. 나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피조물이며, 진실로 그러하기에 존엄하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어떻게 사람이 존엄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는가? 무신론과 인권은 모순이다.) 인간은 존엄하기에 분명 권리를 지닌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주장하는 모든 것이 권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사람의 생명이 그토록 소중하다면, 누구에게도 아프게 할 권리, 아플 권리, 건강일반에 해가 되는 것을 권리라 부를 권리는 없다.


2. 엄마, 아빠를 가질 권리


미국의 연방법관 본 리처드 워커(Vaughn Richard Walker)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게이나 레즈비언 슬하에서 자란 아이들은 양성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만큼이나 건강하고 성취적이며 적응력도 좋다. 이 같은 결론을 지지하는 연구는 발달심리학에서 잘 수용된다. (...) 의심할 여지 없이, 증거는 부모의 성별이 아이들의 발달과 무관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Whelan, 2012c).”


워커가 내린 결론, 혹은 ‘내리고 싶은’ 결론은 동성커플 슬하에서 자란 아이나 양성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나, 양육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동성연애와 동성커플 양육권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서구 진보주의자들의 믿음을 반영한다. 다만 문제는 사실과 믿음이 다르다는 것이다.


동성커플의 양육권을 지지하는 측이 “가장 즐겨 인용하는” 논문은 주디스 스테이시와 티모스 비블라즈의 「How Does the Sexual Orientation of Parents Matter?(2001)」와 「How Does the Gender of Parents Matter?(2010)」이다. 스테이시와 비블라즈는 두 번째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출판된 연구에 따르면, 레즈비언 슬하의 자녀들이 양성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 혹은 최소한 전통적인 가정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낫다 (Stacey & Biblarz, 2010).”


하지만 이 “인기 많은” 논문은 방법론적인 측면, 다시 말해 ‘데이터 수집’에 큰 문제가 있다. 위튼 칼리지의 S L 존스는 일찍이 동성애연구에서 가장 큰 취약점이 바로 ‘피연구집단을 모집하는 일’이라 지적한 바 있는데, 오스틴 대학교의 마크 레그네러스는 (스테이시와 비블라즈의 논문을 포함) 친동성애적 결론을 도출한 많은 연구들의 샘플링방식이 지나치게 편향되었다고 주장했다 (Regnerus, 2012).


이들에 따르면 연구진들은 오직 교육받고, 부유하며, 사회적으로 비슷한 위치에 있는 동성커플(레즈비언)만을 대상으로 연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실험의 결과는 사회의 단면, 그것도 상류층 및 부유층만을 대변할 뿐이므로 일반화해선 안 된다. 루이지애나주립대학교의 마크스 로렌 교수도 수많은 친동성애적 연구들이 상류층의 동성커플 가정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는 것을 꼬집으며 일반화가능성을 일축했다 (Whelan, 2012a; 2012b; 2012c).


많은 가정학적 및 사회학적 연구는 오히려 동성커플의 양육이 아이에게 ‘해로운’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레그네러스 교수는 15,088명의 다양한 계층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는데, 이 중 175명이 여성 동성연애자 밑에서, 73명이 남성 동성연애자 밑에서 양육되었다. 레그네러스의 연구에 따르면, 동성커플의 아이들은 양성커플의 아이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적은 시간을 부모와 보낸다. 또한, 성적학대를 당할 확률, 마약에 노출될 확률도 더 높았고, 실업률과 범죄로 체포될 확률도 더 높았다. 자녀가 안정된 아동기를 위해선 부모의 결혼여부가 무척 중요한데, 동성커플의 이혼률은 이성커플의 이혼률보다 훨씬 높다. 레그네러스는 자신의 연구를 ‘동성부모 대 양성부모’의 대결로 바라보지 않았다. 오히려 자녀가 느끼는 ‘안정성 대 불안정성’이라는 틀로 현상을 관찰했고, 동성커플 슬하에서 자란 아이들은 성장과정에서 불안정한 성장기를 보낼 확률이 높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게다가 동성커플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생물학적으로 다른 성, 즉 인구의 절반에 대해 학습할 기회를 자연스럽게 박탈당한다. 레그네러스 교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아동기를 결혼한 양성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이 (많은 기준에서) 성숙한 성인으로 자랄 가능성이 가장 크다 (Regnerus, 2012*).”


*레그네러스 교수는 해당 논문(「How Different Are the Adult Children of Parents Who Have Same-Sex Relationships? (2012)」)으로 인해 동성애 혐오(homophobia)라는 죄목으로 갖은 비난을 받았다. 단지 그의 연구 결론이 동성연애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것만으로 말이다. 이미 동성연애는 서구에서 성역에 가깝다. 과학적 물음의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책망의 대상이 되며, 그만큼 공론화 가능성은 적어진다.


동성연애의 사회적 이슈는 양육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동성연애자들은 높은 이혼율을 자랑한다. (자녀에게 최악의 가정은 편부모 가정이다. 동성커플의 자녀들은 이미 부모들의 높은 이혼율에서 가장 큰 피해자들이다.) 이는 부분적으론 동성커플의 “과도한” 성적 개방성에 있다. 동성연애자는 이성연애자보다 평균적으로 일찍 성관계를 시작한다. 파트너는 훨씬 자주 바뀌고 파트너 간 연령차도 크다. 또 이성연애자에 비해 2-3배 많이 ‘다자연애’ 상태에 놓여있다 (김지연, 2019: 70). 성적 건정성도 떨어진다. 미국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남성 동성연애자 중 4분의 1 이상이 파트너로부터 강간이나 물리적 폭행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양성연애자의 경우 무려 37%) (김지연, 2019: 274-276), 레즈비언들은 일반인들보다 ‘난교’를 즐길 확률이 4배나 높다고 알려져 있다 (Whitehead and Hutt, 2010). 동성연애자들은 복수의 사람들과 성관계 파트너십을 맺고, 그 파트너들은 또다른 복수의 사람들과 중복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김지연, 2019: 312).


그렇다면, 성적으로 “개방된” 사회가 건강하지 않은 사회일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느 사회나 그 중심은 ‘가정’이다. (나는 이를 증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동성연애 커플의 가정은 높은 이혼율, 부모와 아이 간 적은 소통 기간, 지나치게 자유로운 성생활 등으로 양성부모가 꾸린 가정보다 평균적으로 더 불안정하다. 선험적으로 생각할 때, 이런 불안정성은 성숙한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시기인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여러 연구가 밝힌 동성커플 슬하에서 자란 자녀들의 상대적으로 높은 마약 복용률, 체포율, 성범죄에 노출될 확률 등은 이를 후험적으로 입증한다. 나는 이런 연유로 동성연애를 규범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구나 안정된 가정환경, 즉 엄마와 아빠를 가질 최소한의 권리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양부모가정이 완벽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동성애가정은 결과적으로 덜한 안정감을 제공한다. 동성연애를 폐지하는 것이 모두에게 더 나은 양육을 보증하진 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근원적 '해로움'을 진보나 권리의 이름으로 누구도 일반화할 수 없다.


3. 모든 사랑은 정말 사랑일까


이성연애가 ‘보편적’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떤 사회도 이성연애를 부끄럽게 여기고 동성연애를 장려한 사회는 없었다. 고대 그리스 정도가 예외이겠으나, 이것은 법칙을 증명하는 예외일 뿐이다. 이성연애자는 동성연애자에 비해 언제나 압도적으로 다수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성연애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사회구조에 의한 것이 아니라, 번식과 출산이라는 생물학적 요인에 의한 것이다. 사회에서 이성연애가 장려되고, 또 여러 규범들이 이성연애에 맞춰진 것(heteronormativity)은 자연적 본능이 사회에 선재했기 때문이다. 성적 자유화가 본격적으로 만개한 1960년대 이후의 서유럽에서도 이성연애자의 비율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성적 취향에 가장 개방적인 영국, 그중 가장 개방적인 런던에서도 동성연애자 및 양성연애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인구의 2.6%에 불과하다.


물론, 다수임이 옳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규범의 존재에서도 당위를 도출할 수는 없다. 다만 나의 주장은, 이성연애는 적어도 생물학에 기대어 자신의 ‘자연스러움’을 어필할 수 있고, 역사학에 기대어 보편성을 경험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동성연애 및 양성연애는 그렇지 않다. 이성연애는 수천 년 동안 ‘자연스러움’의 영역에 있어왔지만, 동성연애는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배척받은 역사가 길다. 따라서 동성연애가 호르몬 관련 ‘기능장애’가 아님을, 그리고 동성연애가 이성연애만큼 자연스럽다는 것을 증명할 책임은 친동성연애주의자들에게 있다. 색을 분별하는 기능을 상실한 안구나 시신경을 우리는 ‘정상’이라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색각이상’이라는 질환명으로 지칭한다. 동성연애자들은 극소수의 성적 취향이 ‘색각이상’처럼 질환이나 기능장애가 아니라, 어엿하게 정상임을 증명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사랑’ 혹은 ‘사랑이라고 주장되는 것’에 대해 논쟁하고 있다. 에로스적 사랑과 직결되는 성적 끌림(sexual attraction)이란, 성적 욕구를 유발하는 매력(유인)을 말한다. 동성연애자들은 자신들이 동성에 끌리는 현상이 이성에 끌리는 현상만큼이나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사랑은 사랑이다!”라는, (이제는 진부한)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다수를 차지하는 이성연애자의 “폭정”에 항거하는 중이다. 이들은 홍콩심리학회 심리분회 회장인 웨샤오둥이 『하버드 자존감 수업』에서 밝힌 논리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사회학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인이며 남녀 성별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사람에게 더 중요한 것은 사회성이다. 사회성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것은 사람만이 가진 독특한 심리적 성별이다. 사회적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심리적 성별은 생리적 성별에 우선한다. (...) 단순히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나이도 국경도 없는 마당에 굳이 성별의 제한을 둘 필요가 있을까?” (웨샤오둥, 2017: 209)


하지만 친동성연애주의자들의 위선은 다름 아닌 자신의 슬로건에서 온다. 그리고 웨샤오둥이 주장하는 ‘심리적 성’에서 기인한다. 동성연애자 및 양성연애자는 성소수자들 사이에선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데, 이들은 성소수자들 사이에서도 소수에 속하는 다양한 -성애자들을 매우 불쾌하게 여긴다. 마치 이성애자들이 자신들을 불쾌하게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즉, ‘사랑은 사랑이다’라는 구호 아래 결집한 이들이, 그리고 생물학적 성보다 심리적 성을 중요시하는 이들이, 같은 구호와 철학에 의탁하고자 하는 ‘소수자 중의 소수자’를 박해하는 것이다.


동성연애자들은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가장 고심해야 할 위치에 서있다. 보편성을 부인하고 상식에 반기를 들었다는 뜻은, 증명의 책임을 두 어깨로 짊어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작 사랑이 무엇이며 과연 어디까지가 사랑인지에 대해 도무지 아무런 대답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며, 이제는 너무나 진부한 ‘사랑은 사랑이다!’만 앵무새처럼 외치고 있다. 이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론이다. 정통적인 사랑관에 의지하기 위해선 자신들의 성정 취향이 부정당하게 되고, 자신들의 슬로건에 충실하기 위해선 현실에선 도저히 관철시킬 수 없는 (게다가 자신들 또한 구역질 나게 역겨운) 사랑관을 지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사랑관의 이상적인 조건이란 ‘한 쌍의 성인 남녀’다. 그런데 동성연애자들은 이에 반박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사랑에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은 전통적인 사랑관에서 ‘성별’의 영역을 허물고자 한다. 남자는 얼마든지 남자와 교제할 수 있게 하고, 여자는 얼마든지 다른 여자와 성관계를 할 수 있다. 사랑 앞에 성별은 무의미하니까.


그러나 성역을 깨뜨리고 생물학적 성을 심리적 성으로 대체한 대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동성연애자들의 말대로 생물학적 성별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왜 다른 ‘사랑의 기준들’은 그대로 존속해야 할까? 성별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왜 나이, 숫자, 종, 생명체, 실체는 왜 문제가 될까? “사랑은 사랑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는 사람이 소아성애는 어떻게 정죄할 수 있을까? 75세의 남성이 14세 여아를 보고 성적 욕구를 느끼는 게 나쁠까? 진실로 그러하다면, 왜 나이는 문제를 삼아도 성별을 문제 삼을 수는 없는 것일까? 동성연애자는 이에 답을 해야만 한다. (단지 14세 여아가 법적으로 미성년자라서 그런가? ‘미성년’은 법적인 기준이지 윤리적 기준은 아니다. 14세부터 성인으로 인정해주는 국가라고 상정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발짝 더 나아가, 갓 사춘기에 접어든 14세 중학생이 65세 이상 되는 노인들만 사귀고 성적 교류를 한다면 이상한 일일까? 우리는 이들의 호르몬이 정상적으로 기능한다고 믿어야 할까? 동성연애가 정상이라면, 소아성애(paedophilia)와 노인성애(gerontophilia)는 대체 어떤 연유로 비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모든 사랑은 사랑이기에 동성연애가 정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왜 성별은 무관하고 나이는 문제되는지 대답해야 한다. 심리학자들은 소아성애자들이 느끼는 사랑이 이성연애자나 동성연애자가 느끼는 사랑과 차이가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Johnston, 2016). 미국과 캐나다 일부에서는 이미 소아성애 역시 존중받아야 할 성적 취향을 가진 성소수자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김지연, 2019: 56).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 앞에서 성별도 무의미하고, 나이도 무의미하다면, 교제하는 대상의 ‘수’는 문제가 될까? 한 번에 여럿을 만나는 것, 곧 ‘다자연애’라 부르는 것을 우리는 ‘정상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동성결혼이 허용되는 마당에, 왜 일부다처제와 일처다부제는 차별받아야 할까? 2018년 3월,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은 이미 “다자연애도 성소수자입니다. (…) 다자연애에 대한 비판은 차별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김지연, 2019: 56-57). 성별도 무관한 마당에, 도대체 어떤 이유로 파트너의 숫자를 여전히 제한해야 할까? 동성연애자들은 이에 답해야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이제부터다. 성별, 나이, 파트너의 숫자가 사랑의 조건에 무의미하다면, ‘종(species)’은 왜 유의미할까? 세상엔 인간이 아닌 짐승에 성적으로 끌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동물성애(zoophilia)라 부른다. 에로스적 사랑이라는 관념을 조금 넓게 잡으면, 100명 중 2-8명은 짐승에게 성적 끌림을 느낀다고 하는데, 이는 동성연애자 비율을 상회하는 수치다 (Singg, 2017). 영국의 어떤 남자는 말에 대한 엄청난 성적 끌림을 느끼고, 가끔 눈을 감고 (다행히) 사람인 자신의 와이프가 암말이라고 상상한다고 영국 가디언지에 고백했고 (Abrahams, 2011), 미국에 거주하는 샤론 텐들러(Sharon Tendler)라는 여성은 자신의 애완 돌고래와 결혼식을 올렸다 (Yalung, 2011). 우리는 이를 ‘정상적인 성생활’의 범주로 넣어야 할까? 성별이 사랑에 있어 무의미하다면, 왜 종은 문제가 되는가? 동성연애자의 말대로, 생물학적 성보다 심리적 성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사랑은 사랑이지 않은가?


왜 꼭 성욕의 대상은 ‘생명체’여야 할까? 에리카 에펠(Erika Eiffel)이라고 하는 한 미국 여성은 현재도 사물성애(object sexuality)를 정상적인 성적 취향의 범주 안에 넣기 위해 ‘인권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녀는 사람이 아닌 (심지어 생명체도 아닌) ‘사물’에 성적 끌림을 느낀다. 그녀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녀는 에펠탑과 결혼했다고 하는데, 에펠탑과 혼인(?) 전엔 베를린 장벽과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와 열애를 한 경력이 있다. 국내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다. 바로 2010년에 미소녀 캐릭터 ‘페이트 테스타로사’가 그려진 베개와 결혼한 이진규 씨다. (엄밀한 의미에서 베개와 결혼한 것은 아니지만.) ‘에펠 부인’도 이진규 씨도 자신의 사랑은 다른 사랑과 차이가 없는 진정한 사랑이라 말한다. (다른 버전으론, 시체성애(necrophilia)도 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물이든, 사랑은 실체를 대상으로 해야 할까? 왜 애니메이션 속 2D 캐릭터나 홀로그램은 유효한 사랑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할까? 일본의 아키히코 콘도는 하츠네 미쿠(Hatsune Miku)라는 홀로그램과 결혼했다. 그는 자신의 사랑도 사랑이라고 주장하며, 성소수자의 권리를 현재도 주장하고 있다 (Sukheja, 2022). (그 외에도 우리는 2D 만화 캐릭터와 결혼한 비물질적인 대상에 대한 성적 끌림을 ‘Fictosexuality’라 부른다.


나는 지금 과장을 하는 것일까? 결코 아니다. ‘사랑은 사랑이다’라는 논리에 충실할 때, 그리고 심리적 성적 정체성이 전부라고 주장할 때, 논리적으로 포옹해야만 하는 넓은 사랑관을 공유했을 뿐이다. 내가 제시한 묘사는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전부 용어도 있고, 예시도 있는 실제 사례들이다. 소아성애자, 노인성애자, 다자연애자, 동물성애자, 사물성애자, 시체성애자, 비물질성애자는 모두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주장하며, 자신의 성적 취향이 동성연애처럼 새롭게 사회규범 속에 인정받길 원하고 있다. 이들의 논리는 동성연애자들의 논리와 같다.


동성연애자들은 ‘사랑은 사랑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런 슬로건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개념에서 ‘성별’을 빠르게 허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왜 나이, 수, 종, 생명, 실체 같은 여러 기준들이 (성별과는 다르게) ‘차별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답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전통적인 사랑관을 지지하는 이성연애자들은 이에 대해 생물학과 역사학에 기대어 자신의 정당성을 방어할 수 있다. 나에게 대답해 달라. 왜 동성연애까지만 인정되고, 나머지 성적 취향은 ‘정신병’으로 여겨져야 하는가?


게이와 레즈비언들은 아직까지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소수자 중에 다수’라는 신분을 이용해 다른 성소수자들에게 ‘다수의 폭정’을 일삼고 있다. 동성연애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동성 간 사랑은 지지하면서 노인과 소녀, 사람과 말, 사람과 시체의 사랑은 ‘정신병’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낙인은 선대 동성연애자들이 이성연애자들에게 시달렸던 종류의 낙인과 정확히 동일하다.


서유럽이 동성연애에 보편적 혐오감을 갖던 시절, 동성연애는 정신병(mental disease)으로 취급되었다. 가장 유명한 “박해” 사례는 영국의 앨런 튜링일 것이다. 튜링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활약한 암호해독가였는데, 연합군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대단한 공을 세웠다. 그런데 종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동성애적 취향이 폭로되었고, 결국 관습법에 의해 화학적 거세형에 처해졌다. 그리고 수치심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는 불과 몇 십 년 전 일이다. 오늘날 가장 친동성애적 국가인 영국은 불과 70년 전에 전쟁 영웅을 남색의 이유로 거세시켰을만큼 남색을 정신병으로 취급했다. 오늘날 동성연애자들이 자신들보다 소수인 다양한 취향의 성적 끌림을 ‘정신병’으로 취급하는 것은 자신들의 과거를 잊는 것이다. 앨런 튜링이 ‘정신병자 남색자’에서 (영국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 아래) ‘거룩한 순교자’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50년이었다.


앨런 튜링과는 다른 종류의 일화지만, 성적 자유화와 관련해 눈여겨볼 사례가 하나 있다. 바로 미국 가정사에 대한 프라이버시 법이다. 프라이버시 법은 성적 자유화의 (극적일 정도로 빠른) 도미노 효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1961년, ‘포 대 울먼(Poe vs Ullman)’ 사건의 평결은 ‘피임’이 합헌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피임 합법화는 ‘피임약 판매’의 합법화를 야기했고, 피임약 판매는 또 빠른 속도로 ‘낙태’를 합법화했다. 연방대법원장은 낙태를 합법화하는 자리에서 “동성연애의 권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Sandel, 1998). 그러나 잘 알려져 있듯, ‘동성연애의 권리 같은 것’이 합법화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가까운 미래에 동물성애와 시체성애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지난 세기에 미칠 듯한 속도로 진행된 성적 자유화를 보고도, 과연 누가 이를 장담할 수 있을까? 그때가 오면, 우리는 시체성애자들이 시체를 요구할 때, 그들에게 영안실의 문을 열어주어야 하는가? 동성연애에 대한 과거의 차별이 공개적인 비난과 사과와 용서의 대상이 되는 지금, 우리는 과연 어떤 연유에서 소아성애자들을 계속해서 차별할 수 있을까? 이대로 성적 자유화가 진행된다면, 우리는 30년 후에 과거에 동물성애자를 차별하고 베개와 결혼한 사람을 용인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성하라는 요구에 직면할 수도 이다.


소아성애자들과 동물성애자들이 ‘더한 소수’이기에 그들의 성적 끌림을 ‘정신병’으로 취급해야 마땅하다는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동성연애자든 소아성애자든 사물성애자든, 소수라는 측면에서 다른 게 없다. 0.02%나 0.2%나, 2%나 절대다수(98%)를 차지하고 있는 이성연애자들에 비하면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성별이라는 금기를 허물고, 그것에 ‘편견’이라는 옷을 입혀, 성적 자유화를 주장한 것은 동성연애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이다. 선을 넘자고 주장한 것은 그들이다. 그러기에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까지가 정신병인지 선을 긋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왜 자신의 성적 취향“까지만” 정상의 범주 안에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적절한 대답을 주지 못한다면, 동성연애자들은 소아성애자와 시체성애자와 같은 취급을 당해야 한다.


결론


나는 지금까지 말한 이유들에 의거, 동성연애가 사회규범적으로 차별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동성연애는 담배나 술처럼 AIDS를 비롯한 수많은 질병을 야기하여 건강일반에 문제를 야기한다. 코로나바이러스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쓰거나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흡연율을 줄이기 위해 각종 공익 캠페인을 벌이는 것처럼, 동성연애도 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예방 및 방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성연애는 자녀양육에도 커다란 문제를 야기한다. 동성커플 가정이 낳는 불안정한 가정환경은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심리적으로 해가 된다. 동성커플 슬하에서 자란 아이들이 보이는 상대적으로 높은 마약 복용률 및 체포율, 그리고 성범죄에 노출될 확률은 이를 경험적으로 입증한다. 마지막으로, 동성연애자들은 어디까지 ‘정상적인 사랑’으로 불릴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모든 사랑이 사랑이라면, 또 심리적 성이 생물학적 성에 우선한다면, 왜 소아성애자, 노인성애자, 다자연애자, 동물성애자, 사물성애자, 시체성애자, 비물질성애자는 계속해서 차별받아야 하는가? 전통적인 사랑관에서 이탈한 것은 동성연애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다. 그러므로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정신병인지 정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그들이 적절한 대답을 하기 전까지, 이성연애자는 동성연애자를 소아성애자와 동일하게 취급해도 무방하다. 98%에겐 2%나 0.2%나 소수인 것은 마찬가지다. 동성연애자들이 갖는 ‘소수 중의 다수’라는 타이틀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동성연애자는 ‘권리’를 입에 달고 산다. 로널드 드워킨의 말대로, 권리는 법정에서 ‘으뜸패’에 해당한다 (Dworkin, 1984: 153). 즉, 무적의 수다. 그런데 무엇이 권리인지 누가 정하는가? 동성연애도 권리에 해당한다는 것은 단지 그들이 지난 50년 동안 줄기차게 주장해왔기 때문에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동성연애를 즐길 권리 따위, 하늘에서 내려온 적도 없고, 실험으로 증명된 적도 없다. 대중들의 민주적 합의에 이루어진 적도 없고, 공동체가 기른 적도 없다. 그럼에도 동성연애자들은 자신들에 대한 ‘반론’을 차별과 편견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혐오’로 몰아간다. 그들이 ‘혐오’라는 단어를 꺼내든 순간, 논쟁의 프레임은 토론에서 ‘그들만의 성전’으로 바뀐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권리가 있지 않은가? 소수에게만 권리가 있고, 다수에겐 권리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겐 건강할 권리, 엄마와 아빠를 가질 권리, 그리고 괴기한 사랑관에 세뇌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우리의 권리는 동성연애자들의 위협 아래 심한 침해를 당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도 아니고 ‘우리의 권리’에 의거해 동성연애에 반기를 들어야 한다.


동성연애가 선천적인 것인가?”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


'동성에 대한 성적 끌림이 선천적인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2016년 미국 존스 홉킨스대 연구팀은 동성애의 선천성을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Mayer and McHugh, 2016). 동성연애자들은 이에 대한 의문과 연구마저 죄악시하지만, 이는 여전히 '열린 질문'으로 연구와 토론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물론, 설령 동성연애적 기질이 선천적이라고 해서 내 주장과 논리에서 가감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누구도 질병이 선천적이라 해서 건강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나는 동성연애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주요 근거는 다음과 같다 (길원평, 2014; 김지연, 2019: 73-74; Verbruggen, 2019):


1) 동성연애 성행위는 출산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즉, 아이를 낳지 못하는 동성애적 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없다. 동성에 대한 끌림이 유전이라면, 동성연애는 진작에 사라졌다.

2) 동성연애자 비율은 환경과 나이에 따라 다르다. 청소년기를 대도시에서 보낼수록 동성연애자가 될 확률이 높고, 그렇지 않을수록 동성연애자가 될 확률이 적다. 또 20-30대에 동성연애를 즐기다 나이가 들면서 중단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반면에, 한번 이성연애자는 거의 일평생 이성연애자로 살아간다.

3) 돌연변이에 의해 정상 유전자가 손상되어 나타난 이상 현상이 동성에 대한 성적 끌림을 촉진시킨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유전적 결함에 의해 나타나는 유전 질환은 0.25% 미만의 빈도를 가진다. 또 모든 유전적 질환자를 합치더라도 인구의 1% 정도다. 반면 동성연애자는 통상적으로 인구의 2% 정도인데, 이것은 유전적 결함이라고 하기엔 빈도가 너무 높다.

4) 몇몇 사람들은 1993년 (자신도 동성연애자인) D H 해머가 발견한 일명 '게이 유전자' Xq28이 동성에 대한 끌림을 유발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연구는 2005년 다른 누구도 아닌 해머 자신의 연구에 의해 부정당했다. 해머는 스스로 Xq28과 동성연애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다고 깨끗하게 인정했다.

5) 일란성 쌍둥이는 100% 동일 유전자를 가진다. 그렇기에 모든 선천적인 영향을 동일하게 받는다. 만약 동성연애가 선천적으로 결정된다면, 일란성 쌍둥이는 100%에 가까운 동성애 일치율을 기록했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대규모 연구에 따르면, 일란성 쌍둥이의 동성애 일치 비율은 미국에서 고작 18.1%였다. 호주의 경우 남성은 11.1%, 여성의 경우 13.6%에 그쳤고, 스웨덴의 경우 남녀 각각 9.9%, 12.1%에 불과했다. 일란성 쌍둥이의 동성연애자 일치 비율은 고작 10%대에 불과하므로, 선천적 요인이 동성애를 유발한다고 할 수 없다.

6) 동성연애자들은 아델리 펭귄, 청동 오리, 돌고래 등 많은 동물들이 실제로 동성애를 즐기기 때문에 동성연애는 '자연스럽다'고 주장해왔다. 이는 어설픈 주장이다. 동물은 동성연애 외에도 기이한 행동을 많이 한다. 햄스터는 자식을 물어 죽이고, 암사마귀는 교미 직후 숫사마귀를 먹어치우며, 개는 노상방뇨를 하고, 뻐꾸기는 자신의 자식을 키우기 위해 다른 새의 둥지에 자신의 알을 몰래 위탁하고 달아난다. 비둘기는 부부 간 정조관념이 없이 성관계를 즐긴다. 이것들이 전부 동물들이 하는 행동들이다. 그러면 이것들을 인간이 해도 괜찮은 것일까? 동물들이 동성연애를 한다고 해서 인간이 해도 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적다.


동성연애자들은 그동안 생소한 과학용어들을 사용해 동성애에 대한 성적 끌림이 마치 태생적인 것처럼 어필해왔다. 그들이 인용하는 연구는 대부분 1990년대에 출판된 연구들인데, 21세기에 들어 번복된 연구들이 대부분이다. 진실로 동성연애가 선천적으로 습득한 취향임이 확실하다면, 동성연애자들은 위의 여섯 논지에 대한 반론을 재기해야 한다. 귀를 틀어막고, 슬로건을 부르짖으며, 측은지심에 호소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 동성연애가 정말 선천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나의 논리와 주장은 달라지지 않는다. 선천성이 곧 정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도 선천적으로 색을 분간하지 못하는 안구를 ‘정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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