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전자기기를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종류의 전자기기를 욕심 내왔다. 아이들에게는 휴대폰을 사주는 것이 드물던 때에 또래 친구들보다 휴대폰을 더 일찍 가졌고, MP3도 256mb 용량의 자그마한 초기 모델부터 갤럭시 플레이어까지 네 대 정도를 거쳤다. 개인 노트북도 중학생 때부터 사용했고 (요즘은 코로나 시국 때문에라도 노트북이 더 보급되었겠지만 그때만 해도 개인 노트북은 대학생이나 되어야 가지는 물건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PMP, 휴대용 CD 플레이어, 카세트 플레이어 등 온갖 종류의 기기를 사용해왔다. 게임에 대한 사랑도 남달라서 게임을 위한 기기도 꾸준히 사모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에 게임보이 컬러와 닌텐도 64로 포켓몬 블루나 포켓몬 스타디움, 커비 등을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닌텐도 SP와 닌텐도 DS, 3DS, 스위치 라이트를 거치며 포켓몬 시리즈와 젤다 시리즈를 쭉 즐겨왔다. 자취를 하던 때에는 그 좁디좁은 방에 게임이 돌아가는 데스크탑과 데스크탑 모니터에 연결한 플레이스테이션 4까지 갖춰놓았었다. 맥시멀리스트라는 것을 인정하고 살고는 있지만 가끔은 방 곳곳의 서랍 속이나 안 보이는 곳에 숨겨놓은 상자 속에 잠들어있는 과거의 기기들과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기기들을 떠올리고는 민망해지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새로운 기기 광고를 보면 또 갖고 싶음에 몸부림치는 일이 일상이다.
이렇게나 기기를 좋아하는데, 어느 면에서는 오히려 남들보다 고루하다는 점이 스스로도 신기하게 느껴진다.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아직 펜슬로 자유롭게 필기가 가능한 아이패드는 고가의 물건이라 소수의 학생들만이 가지고 있었다. 보통은 노트북으로 필기를 하고는 했는데, 나는 학부 시절 내내 손필기를 고수했다. 졸업할 즈음에는 아이패드로 필기를 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는데 심지어 그때에도 나는 매 학기 초에 문구점에 가서 그 학기 동안 사용할 파일과 노트를 고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처음에는 입시 공부를 할 때처럼 색색가지 펜으로 필기를 하다가, 나중에는 전공 특성상 소설책에 바로 필기를 하는 일이 많아 연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영문학도라면 누구나 한 번쯤 끙끙거리며 들고 다녀봤을 벽돌 같은 위용을 자랑하는 노튼 앤솔로지의 얇고 팔락이는 종이는 자칫 잘못하면 뾰족한 샤프심에 찢어지거나 긁히기 일쑤였다. 앤솔로지가 아닌 일반적인 원서 소설책도 가볍지만 거칠거칠한 갱지로 만들어져 있다 보니 샤프로 줄을 치고 필기를 하다 보면 구멍이 뚫리거나 심의 날카로움에 엉뚱한 방향으로 선이 엇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아마 이건 너무 힘을 주어 글씨를 쓰는 내 나쁜 습관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어느새부턴가 적당히 뾰족하고 쓰다 보면 둥글둥글하게 뭉툭해져서 부드럽게, 조금은 굵게 선이 그이는 연필을 애용하게 되었다. 매일 필통 속의 연필을 점검하여 너무 뭉툭해진 것들을 골라내어 깎는 일이 좋았다. 심이 부러지지 않도록 적당히 힘을 조절하며 연필을 깎다 보면 차분히 공부를 하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는 느낌이었다. 소설책에, 또 내가 고심하여 고른 노트에 글을 쓸 때 사각이는 소리와 감촉도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모두가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로 필기를 할 때에도 나는 끝까지 손으로 필기를 했다. 끔찍한 악필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에는 쌓여가는 발제문과 논문, 프린트물, 필기 등 온갖 수업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물리적으로 보관할 자신이 없어 결국 아이패드를 사용하게 되었지만, 정말 집중을 요하는 텍스트는 기어코 인쇄소에 찾아가 종이로 뽑아 읽었다.
놀랍지 않게도 나는 무려 두 대의 전자책 단말기를 보유하고 있다. 학부 때 크레마 카르타를 첫 전자책 단말기로 구입했다. 수업에 교재로 쓰이는 원서를 국내에서 구하기 힘들거나 학기 시작 한참 후에나 배송을 받을 수 있는 난감한 일이 종종 생겼고, 신작들은 수입이 아예 되지 않거나 해외배송으로만 구할 수 있는 상황도 자주 겪었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분명히 어릴 때의 나는 500페이지에 달하는 책도 앉은자리에서 읽어내던 집중력이 있었는데. 스마트폰은 몇 시간이고 들여다볼 수 있으면서 책은 두어 페이지 읽으면 금방 정신이 다른 데로 팔려버리는 어른이 되어버린 나 자신을 돌아보며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한 기나긴 고민의 결과이기도 했다. 누군가 전자책 단말기의 액정으로 책을 읽으니 스마트폰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집중력을 더 유지할 수 있었다는 리뷰를 보고 혹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전자책 단말기를 샀다. (사용해본 결과 개인적으로는 크게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영어 원서와 국내 책을 모두 읽고 싶어 다양한 플랫폼을 이용할 수 있는 크레마를 샀던 것이었는데, 막상 써보니 크레마에서 따로 다운 받아 사용하는 아마존 어플은 너무나 불편했다. 학부 시절에는 전자책 단말기로 거의 원서만 읽었기 때문에 결국 또 아마존 자체 기기인 킨들을 따로 구매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사용하던 기존의 크레마는 엄마한테 드리고 한동안은 킨들로 만족스럽게 책을 구매하여 읽었다. 그렇게 킨들로 여러 원서를 구매하여 읽었고, 소설을 단순히 읽는 데 더하여 공부도 해야 했기에 전자책 단말기의 단어 검색 기능도 쏠쏠하게 잘 이용했다. (물론 책 자체에 워낙 필기하는 양이 많으므로 실물 책으로 주로 공부를 하고 페이퍼를 쓰거나 시험공부를 할 때 필요한 경우에만 이북을 따로 한 권 더 구매하는 식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는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텍스트의 양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면서 오히려 국내 문학을 읽고 싶다는 욕망이 커졌다. 그러나 내 자취방은 정말로, 그즈음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온갖 기기로 가득 차 있기도 했지만 주기적으로 사들이는 책이 책장과 책상에 쌓이다 못해 바닥에도 산을 이루기 시작한 지 오래였다. 별로 정리정돈에 집착하는 편이 아니고 그 어지러움도 내 나름의 질서과 규칙이 있다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었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그런 나조차도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방이 비좁아졌다. 그래서 국내 책을 읽는 용도로 크레마를 다시 한 대 구입하게 된 것이다. 이런 연유로 나는 전자책 단말기를 두 대 가지고 있다.
전자책 단말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니, 많은 사람들이 오래 소장하고 싶은 책은 전자책으로, 읽고 중고로 팔아버릴 만한 책들은 종이책으로 산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아주 합리적인 이유다. 그런데 나는 완전히 반대의 패턴으로 책을 구매한다. 꼼꼼하게 읽고 싶은 책, 오래도록 소장하면서 보고 또 보고 싶은 책은 종이책으로 구매하고, 가볍게 읽고 넘길 책들을 주로 전자책으로 구매한다. 전자책이 종이책보다 월등히 싼 것도 아니고, 막상 읽어보았을 때 기대에 못 미쳐 실망스럽더라도 팔아버릴 수조차 없지만. 전자책 단말기를 꽤 오랜 시간 사용해보자 확실히 알게 되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물론 작가가 쓴 글, 말 그대로 텍스트의 내용을 읽는 일이기도 하지만, 책을 읽는 경험을 뜻하기도 한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가장 최근 <월요일의 책> 시리즈에서 다룬『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으면서 느낀 바가 컸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책을 사러 갈 시간도 없었고, 온라인으로 주문하자니 그 책 한 권만 주문할 자신이 없었으며 스터디에서 선정한 책이기는 했지만 학술적인 목적의 스터디는 아니었으므로 가볍게 읽자는 마음으로 『올리브 키터리지』를 전자책으로 구매했다. 그리고 이번에 글을 쓰겠다는 생각으로 그 책을 읽으며 뼈저리게 후회했다. 전자책을 읽는 것과 종이책을 읽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종이책을 읽을 때에는 감각적으로 아주 다양한 경험을 한다. 그 책을 들고 읽을 때의 무게, 손에 느껴지는 표지의 질감, 종이를 넘길 때의 느낌, 종이의 색이나 폰트의 크기, 자간, 눈으로 글자를 더듬으며 읽어 내려갈 때 대강 인식되는 문장의 위치, 양손에 느껴지는 책의 두께 등. 종이책을 읽을 때 나는 다시 보고 싶은 문장에 줄을 치고, 그 페이지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책에 직접 메모를 하고, 때로는 페이지를 접는 등 거리낌 없이, 지저분하게 책을 읽는다. 내 나름대로 그 책을 경험하고 소화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너덜너덜해지면 마음이 뿌듯하다. 그때가 되어서야 정말로 "내 책"이 된다. 그러나 전자책을 읽을 때는 경험하는 감각의 폭이 훨씬 좁다. 고정된 액정에 표시되는 텍스트의 내용만 바뀌니 책에 따라 특별히 다른 경험을 하지 않고, 책을 읽는 도중에도 내가 어느 정도 읽은 것인지 직관적으로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전자책 단말기의 액정은 일반적인 전자기기의 액정에 비해 눈의 피로는 덜어주지만 터치에 둔감하여 하이라이트 표시를 할 때에도 답답한 감이 있다. 자꾸 원치 않는 문장까지 선택이 되거나 페이지를 넘어가는 문장을 하이라이트 하고 싶을 때에 넘어가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책을 읽다가 이전의 내용을 잠깐 확인해보고 싶을 때에도 내가 그 부분을 따로 표시해놓지 않았다면 앞으로 돌아가기도 번거롭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전자책 단말기를 두 대나 가지고 있으면서도 종이책을 훨씬 선호한다. 환경을 생각하면 전자책을 소비하는 것이 나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도저히 종이책을 읽는 경험을 포기할 수가 없다. 어제 오랜만에 온라인으로 주문한 책이 도착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택배를 뜯어보면서, 상상만 했던 책의 실물을 손으로 만지고 그 무게를 느껴보면서, 새 책의 쨍한 종이 냄새를 맡으면서 새삼 실감했다. 나는 종이책이 너무 좋다!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대책 없는 악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손으로 많은 것들을 메모한다. 책을 읽으면서도 옆에 독서노트를 따로 펼쳐놓고 좋은 구절을 옮기고 그 구절에 대한 내 생각을 같이 적는다. 컴퓨터로 기록하면 더 빠르고 효율적이겠지만, 오래 걸리고 손이 피로하더라도 연필이나 만년필로 종이를 긁으며 내 손으로 직접 글을 옮기고 쓰는 건 그만의 맛이 있다.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타자로 친 내용은 흐릿하게 남았다가 금방 휘발되는 느낌이라면, 손으로 쓴 글들은 못생긴 내 글씨의 모양 그대로 내 머릿속에 더 깊이 새겨지는 기분이다. 나는 효율성, 경제성, 체계와 같은 단어들과는 거리가 영 먼 듯싶다. 아무래도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선호하는 일꾼이 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무의식 중에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한 번도 대기업의 회사원이 된 내 모습 같은 걸 상상해본 적이 없다는 게 이제 와서 조금 신기하게 느껴진다. 주위 친구들이 취직 준비에 뛰어들 때 망설임 없이 대학원 원서를 냈고, 공부에서 눈길을 돌려보았을 때도 온통 책과 관련된 일뿐이었다. 어떻게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겠냐며, 그건 취미로 가져도 된다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좀 더 꿈을 꾸고 싶다. 내 공간을 종이책에게 내어주고, 비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손이 아프도록 느리고 못생기게 글을 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