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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수 Nov 05. 2023

불안 부추기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나는 학교에 있으면 늘 '다음'을 생각한다. 아침에 도착하면 하루 일과를 컴퓨터 바탕화면 달력에 적는다. 일을 해치우고 일정표의 목록을 하나 씩 지워나간다. 나는 일을 빨리 해치우는 편이라 일정을 거의 제시간에 달성하는 편이다. 수업을 하면서도 내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은 '그 다음은~'이다. 수업 진도를 정해 놓았는데 다 못나가면 짜증이 난다. 중간 중간 아이들에게 이해도를 점검하지만 시간이 모자라면 그냥 넘어가고 아이들 보고 온라인 LMS 플랫폼에 채팅으로 질문하라고 한다. 아이들은 거의 질문하지 않는다. 정기고사 출제기간이 되면 나는 학교에서 제일 빨리 출제 원안을 내는 교사다. 특목고에서 5년 째 근무하면서 평가 출제와 채점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원안을 제일 빨리 내고 수정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시험 문제에 오류가 생기면 자살 충동에 가까운 자책감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방학 내내 진로에 대해 고민했다. 현재 근무하는 학교에서 근무한지 고작 6개월이 되었는데 다음 근무할 학교를 알아보고 있다. (공립학교 교사는 대략 4년마다 이동한다.) 특목고에 두학교째 근무 중인데, 특목고에 근무하는 것에 만족하고 계속 특목고에 근무하고 싶지만 교육청에서 그것이 특혜라고 생각했는지 올해부터 특목고에 두학교 이상 근무할 수 없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그때부터 나는 다음 학교에 대해 걱정했다. 




영어과목을 계속 가르칠 지에 대해 여전히 고민이다. 나는 여전히 영어를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좋다. 수업을 계획하는 것은 여전히 나를 흥분하게 한다. 수업을 짜면서 나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결과물을 보면서 뿌듯하고 아이들의 성장을 보는 것이 기쁘다. 그러나 영어교사로 계속 근무하기 위해 나는 싫어하는 일을 너무 많이 해야 한다. 보상 없는 돌봄 노동인 담임 업무는 무보수로 일하는 여성의 가사 돌봄 노동과 닮아있다. 얼마 전 체육 시간에 다친 학생의 부모가 찾아와서, 수업 시간에 태만했던 체육 교사가 아닌 담임인 나에게 자신들의 불만을 토로하며 장시간 나를 괴롭힌 적이 있다. 나는 엄마의 돌봄 노동을 보면서 어릴 때는 연민하다가, 또 남성의 편에 서서 무시하다가, 또 그것을 해야하는 나 자신을 싫어하게 되었는데, 영어 교사로서 담임은 숙명이다. 무시무시한 '국영수'의 굴레(주요 과목교사가 아이를 가까이 지켜보고 진학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못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꾸준히 글을 쓰는 나는, 생활기록부를 쓸 때마다 거짓된 글을 써서 영혼을 헐값에 팔아 넘긴다. 학생 대학 진학을 위해 장점을 부풀리고 단점을 축소하는 글을 쓰며 조직적인 조작 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내가 싫다. 담임, 생기부, 행정업무가 싫어서 좋아하는 영어 수업을 포기하고 다른 진로를 가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이미 유학까지 가서 영어교육학으로 석사학위가 있는데 또 다른 대학원에 갈 계획을 하고 있다.쓰는 것 만으로도 숨이 차다. 하지만 나 뿐만이 아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현재에 머무르지 못하고 미래를 걱정하는데 에너지를 쓰고 있다. 고속 성장기의 한국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며 대학 진학 만을 목표로 앞을 보고 달린다. 그 다음은 취직이고, 그 다음은 내 집 마련이고, 그 다음은 결혼이고, 그 다음은 출산이고..나같이 자발적 퀴어가 되면서 정상성의 삶의 궤도에서 살짝 벗어난 사람도 삶의 방향성은 같다. 점으로 머무르기 보다, 위로 움직이는 선으로 살아가고 있다. 속도는 제각각이지만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가려는 마음은 같다.




명상을 가르치는 혜안 스님은 마음의 힘은 고요히 한 점에 오래 머무를 수록 커진다고 말한다. 나 자신을 알기 위해 한 점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있어야 화살도 동력을 얻는다. 7월 중순 서이초 교사 사망부터 현재까지 이어오는 교사 집회에 하나의 점으로 참여하면서, 자신 개인의 점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을 하면서 정당한 인정을 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수한 작은 점들이 연대하면서 각자 움직이는 실선으로서 존재하지 않고 큰 바위 덩어리로 한 목소리를 내었다. 각자 도생의 시대 일수록 점이 되어 고요히 그 자리에서 머무르며 나 자신을 알고, 또 옆에 있는 다른 점과 연대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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