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케미스트리>를 읽고
"팀이 성공하려면 모두 평등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해야 한다" p.66
팀 케미스트리는 절대적으로 꼭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구성원들이 모두 자신의 역할에 맞는 본분을 지키고, 구성원은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지며, 도움이 필요할 때 서로 도와주는 마인드를 가진다면 그것이 곧 일반적인 팀이 될테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이 AI가 아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성격, 다른 가치관, 다른 이해관계가 충돌하다 보면 1+1이 2가 되지 않고 1.5에서 멈출 때가 생긴다. 개인주의 성향이 짙은 미국 문화에선 더욱 스포츠에서 팀 케미스트리가 필요한 상황이 한국보다 더 많았을 것이기에, 이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꽤 유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관점에서 다소 팀 케미스트리가 미국만큼은 덜 중요해보이는 이유는 일찌감치 몸과 마음으로 체득해있는 수직적 체계와 위계질서 등 집단에 대한 구조 덕분이다. 아무리 실력 좋은 선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깽판'을 용납하지 않는다. 삐뚤어지는 선수가 보인다 싶으면 코칭스태프가 개입해 어떤 방식으로든 제압한다. 이 역시 프로 단계에선 점점 색이 옅어지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할 것은 못 된다. 우리가 늘 당당했다면 시범경기에 조금 부진했다고 게토레이 마시는 것을 눈치보는 한국인 메이저리거는 없었겠지. 상대적으로 한국 선수들이 착하다. 그래서 팀 케미스트리의 저점이 전반적으로 높다.
팀을 구성하는 데 있어 일단은 '세이버'로 칭해지는 실력 위주의 선수단 구성이 먼저 토대에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팀 케미스트리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슈퍼교란자는 없는 것이 당연히 좋고, 팀에 대한 위해를 끼칠 수 있는 행위 역시 그 '세이버'의 한 항목에 들어가야 한다. 양키스처럼 반드시 수염을 깎아야 팀 케미스트리가 올라간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플레이 도중 화를 참지 못해 주변의 기물을 파손하는 행위 등은 팀 케미스트리를 떨어트리는 명확한 팩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결격사유가 없는 선수들끼리 잘 꾸렸을 때 팀 케미스트리를 올리려고 노력하는 것은 필요할까? 전제가 완성됐다면 '선택적 사항'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 역시 디테일한 팀 운영의 하나니까. 책에서는 그 역할을 해주는 특정 선수들의 에피소드들이 많이 나오는데, 한국에서는 소통능력 좋은 코칭스태프나 주장 선수가 이를 보통 대신하곤 한다. 그래서 코치나 주장의 색깔에 따라 팀의 분위기가 좌우되곤 한다.
좋은 예시로 떠오르는 것은 (야구 이야기는 아니지만) 22-23시즌 프로농구단 LG 세이커스의 사례다. 시즌을 앞두고 새롭게 부임한 조상현 감독은 직전 시즌 9위팀을 이끌어야 했는데 단 하나의 전력보강도 없었다. 주전 선수단 중 올스타급 선수는 없었고, 슈퍼 유망주도 없었다. 적당한 실력에 고집만 세고 인기 반짝 누려봤던 베테랑 선수들은 자신이 A+급 선수라고 생각하고 출전시간을 마음껏 부여받아 누적스탯만 잘 쌓고 있었다.
조상현 감독은 이 베테랑 선수들에게 주목했다. 그리고 소통했다. 그들이 잘하는 점과 못하는 점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팀이 더 높은 곳에 있기 위한 효율적 경기 운영안을 제시했다. 결국 효율적인 경기 운영을 하게 되면 기존 베테랑 선수들의 출전 시간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감독의 명확한 비전 속에 모든 선수들은 자신의 롤을 부여받았고, 무색무취였던 팀이 카멜레온 팀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단순히 베테랑 선수들에게 '세대교체'라는 구실 좋은 명목으로 내치는 것이 아니었기에 모두의 팀 케미스트리를 살리고 팀 역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반대의 예시도 있다. 과거 전지훈련을 떠난 KBO리그 한 팀은 해외에서 치르는 연습경기에서 패를 거듭하고 말았다. 경기는 당연히 승패가 나뉘기 때문에 질 수 있고 연습경기면 더더욱 과정이 더 중요하지만, 경기 내용이 너무 좋지 않았다. 감독은 비시즌 동안 몸이 너무 만들어지지 않은 일부 베테랑 선수들에게 불만이 있었지만 좋지 않은 경기력에 대한 추가 훈련은 선수단 전원의 몫이었다.
저연차 선수들은 평소에도 개인 스케줄이 아닌 팀에서 제시하는 훈련량을 '선택의 여지 없이' 모두 소화해야 함에도, 베테랑 선수들의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한 추가 훈련의 희생양이 됐다. 이렇게 저연차 선수들은 차마 말은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팀의 코칭스태프, 베테랑 선수들과 마음적으로 멀어지게 됐다. 한 번 마음이 멀어지면 형식적인 소통 제의도 먹히지 않는다. 우리들도 꼰대로 인식하는 부장님이 저녁 먹자고 하면 도망가는 것 처럼.
한 가지만 쓰려고 했는데 또 생각났다. 팀의 주축으로 뛰었던 당시 A 야수는 수비율이 썩 좋지 않아 팀에서 고민이었다. 그렇지만 A는 지명타자가 아닌 수비로 경기에 나서야 타율도 잘 나오곤 했다. 그래서 구단에서는 이 A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팀의 4, 5선발 투수가 나오는 경기에 한해서만 수비 출장을 시켰다. 팀의 에이스인 외국인 선수들이 불만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었는데, 이런 사실에 대해 4, 5선발을 맡았던 어린 투수들에게 제대로 소통하는 과정이 없었다. 이들도 똑같이 불만을 마음 속으로 가졌지만 저연차라는 이유로 어디 하소연하지도 못했다. A 야수가 직접 저연차 선수들에게 지시한 사항이 아님에도 이들은 점점 더 마음의 거리가 멀어지게 됐다.
우리나라는 대놓고 팀 케미스트리를 해치는 폭력 및 인사불성, 근무태만 등의 행위가 앞으로도 많진 않을 것이기에, 더욱 끈끈한 관계의 팀을 만들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서도 말했듯 이는 넓은 범위의 팀 케미스트리 영역이라 선택적 사항이다.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것이 나으니까. 점심시간에 업무 얘기 안하고 사람 사는 얘기 할 수 있을 정도의 유대관계는 분명 필요하다.
소집단. 개인적으론 이 키워드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되서인가, 이제 운동 선수들이 절대 운동만 24시간 하지는 않는다. 그들도 업무 외 시간에는 개인의 취미생활을 즐긴다. 어린 선수들이 많은 팀에서는 출근길에 전날 협곡에서 있었던 재밌는 일에 대한 후토크를 하는 것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서로 더 친해지고 분위기가 유쾌해진다. 꼭 업무 끝나고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안하면 조직에 융화할 의지가 없는걸까? 알콜 없이 원정 숙소에서 10명씩 짝지어 PC방에서 정해진 시간까지 스트레스 푸는 것이 더 팀 케미스트리를 높이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누구나 저마다의 취향에 맞는 소집단이 있다면 한층 더 팀에 빠르게 녹아들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팀의 관리자 혹은 캡틴 누가 되도 좋다. 너무 빠르게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는 만큼 조직 안에서도 이를 캐치하고 팀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더욱 강하면서 오래갈 팀이 탄생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