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만큼의 고통
해피 아워 (2015)
타인의 고통은 측정할 수 없다. 가늠할 뿐이다. 나는 네가 느끼는 고통만큼이 아니라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너의 고통'만큼 너를 연민한다. 그러므로 공감과 연민의 크기는 상상력의 크기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상상력은 주로 직간접적인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지므로, 너의 고통을 내가 최대한 가까이 이해하려면 경험해봐야 한다. 삶으로부터 직접 겪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가 서로의 고통을 열심히 설명하거나.
<해피 아워>는 조금 힘든 영화였다. 장장 328분(인터미션 10분 포함)이라는 러닝타임 때문만은 아니다. 이 영화는 러닝타임이 길기 때문에 여느 영화들이 생략하는 것들을 생략하지 않을 수 있다. 긴 호흡으로 보여주는 워크숍이나 낭독회 등의 장면은 장면이라기보다 체험으로 다가온다. 정성일 평론가의 표현처럼 <해피 아워>는 영화에서 사용하는 '씬'보다는 연극의 '막'에 더 가까운 형식을 사용한다. 출연진들이 전문 배우가 아니라는 점도 이 영화를 현실 내지는 일상에 더 가깝게 한다.
<해피 아워>가 힘든 이유는 이 영화가 이토록 관객에게 가깝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안정과 속박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막막함, 가장 해야 할 말은 하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고 있는 스스로/혹은 타인에 대한 답답함, 손을 써보려고 하면 할수록 자꾸 엇나가기만 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는 관계, 어느 날 생각해보니 내가 죽었다거나 이 사랑이 끝났다거나 하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의 절망과 희망 같은 것들. 영화와 관객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관객은 그 마음들을 상상해버리게 된다. 아카리, 사쿠라코, 후미, 준 혹은 그 밖의 다른 인물들이 품고 있을 고통을, 관객은 각자가 상상할 수 있는 만큼 느낀다. 그리고 <해피 아워>는 관객의 상상을 슬그머니 돕는 영화다. 일단 그들의 고통에 공감을 해버리면 그들의 행동을 함부로 재단할 수 없게 된다.
네 친구가 같은 옷을 입고 네모난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 처음 뵙겠습니다- 인사를 하는 시간들, 준이 여행 중 만난 타인과 버스에서 햇볕을 받으며 대화하는 시간들, 그런 순간들이 있어서 이 영화를 계속 볼 수 있었다. 삶이 그런 순간들로 지탱되는 것처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시선을 통과해 바라본 한 조각의 세상에는 살다 보니 어느새 곁에 있는 불행과, 그 불행을 끼고도 때로 웃음 짓고 대화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것을 지켜보는 일이 때로는 묘하게 위안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