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좋지 않으면 기획도 어려워요. 좋은 곡 부터 찾아야죠.
요즘은 음원만 듣고 즐기는 시대가 아니다. 특히 아이돌은 퍼포먼스까지 함께 봐야 온전히 곡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음악을 듣는 시대에서 음악을 보는 시대로 변한지 너무 오래 됐다. 그러니 볼거리가 많을 필요가 있다. 볼거리가 많기만해서는 안되고, 보기 좋아야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어야 한다. 아이돌은 우선 예쁘고 잘생기고 봐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돌에게 곡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부터 해야할 것 같은데, 5방신기라고도 불리는 동방신기의 초창기 그룹 콘셉트는 아카펠라 댄스 그룹이었다. 아이돌이라고 데뷔를 했는데 데뷔곡이 발라드고, 아카펠라 사운드로 화음을 어마어마하게 쌓았단다. 게다가 얼굴도 잘생겼다. 동방신기는 모든게 좋았고 그렇게 그시절은 전설로 남게 됐다.
https://youtu.be/ItwTg3Cm7oU?si=q0iA28e4h9lrA5BQ
이후 빅뱅, 소녀시대, 원더걸스 까지 이들의 성공은 모두 ‘곡'이었다. 예쁘고 잘생기고, 퍼포먼스를 잘하는 것 뿐만 아니라 곡이 먼저 좋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그때 당시의 표현으로 ‘메가 히트'를 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히트곡을 만든 작곡, 작사가들의 인기도 몸값도 올랐다. 그때는 그랬다. 앨범의 콘셉트가 우선이 아니라 곡이 우선이었다. 히트 작곡가들에게 좋은 곡을 받기 위해 더 많이 노력했고, 따라하기 쉬운 안무에 적당한 비주얼 세팅을 곁들여 앨범을 만들어 방송 활동을 하며 활동해 곡을 띄웠다. (그러다보니 라디오에 나가서 홍보하는 일이 더 많았다.)
아마도 엑소의 등장이 이 판도를 바꾸지 않았을까 싶다. 엑소는 ‘미지의 세계에서 온 초능력이 있는 아이돌'이라는 콘셉트로 ‘세계관'을 도입해 성공을 이룬 첫 아이돌 그룹이다. 얼굴 잘생긴 애들이 무작정 작곡가가 만든 수많은 곡들 중의 하나를 들고 나와 군무를 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과 방향성을 담은 가사의 노래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데뷔했다. 세계관이 딥한데 반해 엑소의 곡은 대부분 대중성이 있는 곡이 주였다. SMP 스타일의 곡은 데뷔곡 ‘MAMA’와 ‘늑대와 미녀' 정도를 제외하곤, 의외로 타이틀 곡이 좋다. 그 시작은 ‘으르렁'이다. 엑소는 생각보다 메이저한 곡을 많이 들고 나왔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아직도 재 컴백을 소취하는 팬들이 많은 ‘Love Me Right’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https://youtu.be/BDfL-CNzcuY?si=qcZ1wZZu2LEC9REP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엑소의 성공이 세계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티스트가 성공한 이유를 찾다 보면 그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에 집중하게 될 수 밖에 없다. 모두가 하고 있는 것은 차별점이 될 수 없으니까 말이다. 마찬가지다. 엑소가 제대로, 꾸준히 세계관을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의 이유를 세계관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것. 하지만, 나는 엑소의 성공은 여지 없이 곡이라고 말한다. 여전히 엑소의 옛날 노래를 든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해도 증명되지 않을까. (물론 그때 엑소의 비주얼도 만만치 않은 인기 요소이긴 했지만서도…)
방탄소년단도 마찬가지다. 방탄소년단이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하는 ‘화양연화' 시리즈는 모두 곡이 좋다. ‘I Need U’, ‘RUN’, ‘Young Forever’, ‘불타오르네' 등 지금까지 발매해온 모든 타이틀곡이 거를 타선이 없다.
엑소와 마찬가지로 방탄소년단의 성공도 화양연화 시리즈를 만들며 세웠던 세계관이 한 몫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방탄소년단은 세계관을 내세운게 아니라, 본인들의 서사를 내세웠다. 화양연화 시리즈는 어떤 특정 세계관이 아니라 그룹의 서사를 스토리화 시켰을 뿐이다. 이 서사는 곡에서부터 시작됐다. 방탄소년단은 본인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을 뿐이다. 방탄소년단이 데뷔 전 공개했던 믹스테이프나, 이후 발매하는 앨범의 수록곡의 가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자신들의 직접 서사를 담은 곡을 듣고 찾아본 에피소드들이 바로 방탄소년단의 팬이 되는 것을 선택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https://youtu.be/NMdTd9e-LEI?si=EfTn_TK055LdKVcd
별안간 스타들이 등장하면 어떠한 영웅적 서사를 만들어 이를 마치 성공 공식인 것 마냥 푸시한다. 하지만, 끝내 본질을 찾아보면 모두 곡이 좋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아이돌은 노래를 부르고 그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요즘 조금 아쉬운 그룹이 있다. 아니 어쩌면 조금 오래 전 부터 아쉬운 그룹이 있다.
있지의 데뷔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곡, 퍼포먼스 뿐만 아니라 비주얼까지 그간 걸그룹에서 느끼기 어려웠던 ‘시원시원함'이 있지에겐 있었다. 군더더기 없는 트랙에 내가 알아서 하겠다며 시원하게 직설하는 가사, 깔짝대지 않는 파워풀한 춤, 터프한 와이드 카고 팬츠 까지 요소 하나하나가 다른 팀들관 달랐고 이는 성공적인 데뷔라는 타이틀을 갖게 만들어줬다.
그간 있지가 데뷔곡 ‘달라달라'와 ‘WANNABE’의 명성 이후 이렇다 할 임팩트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곡'이다.
있지의 곡는 문제점이 두 가지 정도 있다고 본다. 첫 번째는 노래가 편안하지 않다. 멤버 절반 이상이 째지는 보컬을 가지고 있는데 그룹의 방향성에 어울리게 설정된 피치를 멤버들이 억지로 짜내어 불러내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다. Stage Practice 영상을 보면 있지의 실력은 증명된다. 다만 그런 곡을 멤버들이 해내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있지가 해낼 수 없는 피치의 높은 음만 부르고 있느냐 그건 아니다. 있지의 곡은 대부분 온전히 메이저도, 마이너도 아니기 때문에 어중간하게 떠있는 느낌이 들어 편안하게 들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만큼 있지의 곡은 더이상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계속 ‘듣고 싶은' 곡은 아니게 된 것이다. (신나긴 하는데 묘하게 불편하달까…)
https://youtu.be/zugAhfd2r0g?si=G0R4a8-5_aBq5d7y
두 번째는 가사다. 있지는 데뷔곡이 끝이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달라달라’는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을 정도의 온도로 자신들의 자신감을 보여준다. 이후 ‘ICY’와 ‘WANNABE’도 마찬가지다. 굳이 돌려 표현하지 않는데 메시지가 매우 단순하고 쉽게 다가올 뿐 촌스럽지 않다. 그게 있지의 매력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나온 앨범의 곡의 가사가 이들을 촌스럽게 느껴지게 한다.
이번 앨범 선공개곡 ‘BORN TO BE’는 메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퍼포먼스 맞춤형 곡'이라고 하더라도, 퍼포먼스를 보지 않으면 들을만한 곡이 아닐 만큼 매력이 없다. ‘누가 뭐라해도 내 방식대로 살겠다’는 메시지는 심플하고 좋으나, 가사가 문제다. 타이틀곡 ‘UNTOUCHABLE’이랑 엮어서 이야기 해야한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있지를 있지대로’ 바라보며 있지의 영역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도 ‘자신들을 건드리지 못한다, 나를 막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더 신랄하게 표현하자면 왜 아직도 발악하고 있냐는 것이다.
https://youtu.be/5e3rKInegeU?si=nEGjLvjj6shykEyX
그렇다, ‘달라달라'는 데뷔한 있지를 소개하는 곡이었다. 그래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마 나는 너네랑 다르니까.’ 라는 메시지가 당당하고 솔직하다고 느껴질 수 있었다. 있지가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들은 그들을 설명하기 충분했다. 이제는 친절하게 인사하며 명함을 내밀지 않아도 모두가 있지를 알 수 있다.
있지를 소비하는 이유는 당당함이었다. 모두가 어떠한 편견에도 당당해질 필요가 있고, 자신의 것을 할 필요가 있다는 건강한 메시지를 주는 그룹이었기 때문에 좋았다. 그럼 그 다음에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있지는 데뷔한지 5년이 다되어 가는데, 아직도 넥스트 아젠다가 없다.
있지의 노래를 팬이 아닌 대중이 과연 얼마나 다시 듣고 있을까. 있지는 좋은 그룹임에는 틀림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중요하니 이제는 어떤 춤으로, 어떤 비주얼로 나오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음악으로 나와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설명하고자 가장 최근에 발매한 앨범들 중 고른 것이 있지라 그렇지 꽤나 음악이 매력적이지 않은 그룹이 많다. (매번 있지의 앨범을 기대하며 기다리나, 늘 실망하기 때문에 더 아쉽기도…)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으면 일단 주목 받는 요즘이지만, 우리가 아이돌을 좋아하고 소비하는 이유는 그 근본의 음악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