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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ㄲㅔ팝 Mar 25. 2024

그럼에도 불구하고 ; 06 진입장벽을 낮춰야 하는 이유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PLAVE)

최근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에 입덕하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면 다들 놀란다. ‘어떻게 너가 플레이브 입덕 선언을 할 수 있냐면서, 오래살고 볼일’ 이라고 한다. 나는 웹툰, 웹소설, 애니메이션 등 흔히들 이야기하는 2D 콘텐츠를 전혀 소비하지 않는다. 그냥 개인적인 취향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도 SF, 판타지, 히어로물 등을 거의 본적이 없고 드라마도 판타지 장르를 본 기억이 없다. 우스갯소리로 판타지물 뭐 좋아해? 라고 지인이 물어본 것에 나는 ‘도깨비(드라마)'라고 대답할 정도니까. 그런 내가 2D 그림체로 등장하는 플레이브를 좋아하게 됐다는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요즘 최대 관심사 플레이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플레이브는 (어쩌면 소속사 블래스트는) 진입 장벽을 낮추고자 노력했던 것이 핵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버추얼 아이돌이 진입 장벽이 낮냐 하겠지만, 플레이브는 버추얼 아이돌로 데뷔를 해야했기에 많은 부분에서 진입 장벽을 매우 낮췄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로는 콘텐츠다. 플레이브가 보여주고 있는 콘텐츠는 주 2회씩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라이브다. 플레이브는 이 라이브 콘텐츠를 십분 활용하여 팬들과 꾸준한 소통을 진행하고 있다. 기존 아이돌들처럼 주 4회 이상 음악 방송을 할 수 있을 만큼 방송과 공연에 자유로운 편이 아닌데다 일반 유튜브 콘텐츠에도 출연하기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라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라이브 방송을 위주로 활동하고 있는듯 보인다. (보이는 라디오가 아닌 라디오 프로그램에는 꾸준하게 출연을 하고 있다.) 


이 라이브 콘텐츠는 회사에서 작업한 자막이 있는 콘텐츠가 아니기 때문에 팬들이 직접 2차 가공(편집)한 영상과 쇼츠들이 부가적으로 많이 생성된다. 콘텐츠 홍수 속에 플레이브가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된 것은, 단순한 댄스 챌린지가 아닌 ‘쇼츠 콘텐츠'다. 한 번 플레이브 콘텐츠를 보기 시작하면 끝을 볼 수 없는 무한 굴레에 갇히게 만드는 포인트이다. 기술적인 오류로 인해 발생하는 송출 오류 모음이나 버추얼 아이돌 세계관을 잠시 잊은 본체 모먼트, 멤버들 간의 케미 등 자연적으로 발생한 ‘플레이브 소개서’가 진입 장벽을 낮췄다고 생각한다.


https://youtu.be/6IFzC_mBQq4?si=mDZV5PSjMFpuxFVh


다시 말하자면 플레이브의 콘텐츠를 보고 AI 기술의 불쾌한 골짜기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여느 아이돌과 같이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있다는 말이다. 사실 이 말이 매우 역설적이긴하다. 버추얼은 본체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플레이브는 2D 그림체를 뚫고 나오는 본체들의 매력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유쾌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해줬다. 그리고 점차 기술이 발전하면서, 플레이브 본체의 모습(표정, 행동 등)을 디테일하게 담아내 정말 ‘그 자체'로 볼 수 있게 되는 것도 한 몫 했다.


두 번째는 음악이다. 자체 프로듀싱을 하고 있는 플레이브는 작사 작곡 뿐만 아니라 안무까지 직접 창작하여 앨범을 만들고 있다. 뮤직비디오 말미에 나오는 크레딧을 보면 일반적인 엔터테인먼트의 부서들과는 다른 점이 많다. 흔히 있는 A&R 팀이나 제작팀이 중심에 있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자세한 회사 체계는 모르겠지만, 앨범 제작에 있어서 많은 부분에 플레이브 멤버들이 직접 관여를 하고 있다는 것이 짐작이 가는 지점이다. 


https://youtu.be/FxB6_qaqHlY?si=uXSb1SIHD39q4jv1


멤버들의 자작곡이기 때문에 곡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플레이브의 음악에는 그들의 비주얼(버추얼 외형)에 딱 어울리는 감성이 있다. K-POP 중에서도 애니메이션 OST나 청춘 영화 OST에서나 들을 법한 사운드가 있는 장르의 곡은 탄탄한 팬층을 모아왔다. (예를 들면 세븐틴의 ‘지금 널 찾아가고 있어’가 있겠다.) 플레이브의 음악이 바로 이런 느낌이다. 덕후의 심장을 뛰게하는 음악이랄까?


밴드 사운드의 트랙에 가슴 벅차는 가사, 상대를 향해 호소하는 듯한 느낌의 탑라인(보컬)까지 완벽한 공식을 갖춘 플레이브의 타이틀곡들은 섭외된 가수가 부른 단순한 ‘OST’가 아니라 주인공이 부르는 곡의 몰입감을 준다. 덕분에 특정 팬덤을 타겟팅한 것에서 더 나아가 기존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조차 마음이 동하게 만드는 요소가 됐다. 실제로도 콘텐츠를 보거나 소비하는 팬들이 아니어도 음악이 좋아서 플레이리스트에 넣어서 듣는 타팬들도 많다고 한다. (나 역시 플레이브라는 존재를 인식한 이후 음악을 먼저 들었고, 음악이 좋아서 콘텐츠를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입덕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매거진을 시작하면서 첫 글이 ‘음악이 중요한 이유' 였던 것이 이런 것 때문에 그렇다. 좀처럼 관심을 갖지 않고, 떠먹여줘도 보지 않았던 아티스트에 관심을 갖고 신뢰를 갖게되는 계기가 바로 음악이다. 생각해보자, 버추얼 ‘아이돌' 이라고 데뷔한 팀이 유튜브에서 웃기기만 하면 이정도 까지 인기를 끌 수 있었을까? 단언하지만 아니다. ‘아이돌'로서의 기본적인 요소를 충족하기 때문에 이뤄낸 성과라고 생각한다. 음악이 또 한 번 진입 장벽을 낮췄다. 


https://youtu.be/Rb92-wFteQE?si=bAtRt_IwXLgKMurN


세 번째는 멤버다. 플레이브는 연습생 기간도 있었고, 멤버가 한 번에 공개된 것이 아니라 예준을 시작으로 한명씩 공개된 관계로 정식 데뷔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멤버들이 직접 이야기한 영입 스토리를 들어보면 멤버들은 원래 서로 알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믿기로 했다는 것에서 시작한 팀의 서사가 매우 자연스러우면서도 청춘물 소재와도 같다. 앞서 음악이 그들의 비주얼(버추얼 외형)에 어울리는 감성이라고 한데 팀의 서사도 더해야 한다.


아직 플레이브가 퍼포먼스를 하는 것은 조금 부자연스럽다. (어쩌면 이정도의 불안정함이 딱 좋은 것 같기도 해서 더 발전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퍼포먼스는 둘째치더라도 이들의 보컬 실력은 탄탄하다. 플레이브가 이런 장르로 음악을 할 수 있는데 이들의 보컬 실력이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본체가 실력이 좋다는 말을 이렇게 장황하게 했다. 뭐가 됐든 아이돌이 실력이 좋으면 끝내 진입 장벽이 무너지기 마련이다. 


https://youtu.be/jDQ4-C4AHmA?si=w2e33sgjW7QKjPou


블래스트는 엔터테인먼트부터 시작한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여느 IT 회사 같은 모습이 보이거나, 팬 커뮤니케이션 하는 모습에서 서툴거나 어수선한 모습이 많이 보일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엔터테인먼트들도 여전히 서툴고 어수선하긴 하다.) 하지만 팬들의 의견을 듣고 사소한 지점들에서 수정을 거듭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일반적인 엔터테인먼트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을 하는 모습도 보여주며 회사를 운영해 나가고 있다.


‘콘서트장 규모 제한으로 인해 멤버쉽 대상 온라인 스트리밍 이용권의 판매 가격을 대폭 할인하여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4월에 진행되는 플레이브의 첫 팬콘서트 온라인 스트리밍에 대한 공지다. 얼마나 가격이 저렴하길래 이런 문장으로 강조를 하지 싶었다. 요즘 아이돌 콘서트 값이 너무 많이 올라서 상대적으로 싸다고 느껴지는 걸까 싶긴 하지만, 그래도 정말 저렴하다. (오프라인 콘서트 티켓비도 다른 팀들에 비하면 매우 저렴한 편이다.)


과한 평가이긴 하지만, 이또한 진입 장벽을 낮추는데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공연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지만, 플레이브는 공연장에 가서 실물을 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아티스트는 아니기 때문에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해 공연을 보더라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생각하면 이용권 가격을 이렇게 까지 저렴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물론 공연장에 가서 팬들이랑 함께 응원봉 흔들며 보는 것은 매우 다르지만서도, 이용권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플레이브를 간잽하고 있던 사람들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 온라인 콘서트를 봐야겠다는 마음 먹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https://youtu.be/cFm8fTRW_so?si=Y9g0SvHvD5MInLDG


플레이브는 아직 폭넓은 대중을 아우를 수는 없지만, 조금씩 ‘버주얼 아이돌이라는 새로운 장으로 진입할 수 있게 문을 열어준 팀'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플레이브 성공 이유에 대해 더 멋있게 소개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나는 플레이브를 평범하게 소개하고 싶었다. ‘버추얼'이기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그냥 한 번만 보라고, 이런 장르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 이렇게 까지 진심으로 이들을 소비하고 있다고 그냥 일상적인 아이돌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어쩐지 이들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시작이, 어쩌면 재시작이 어려웠을 플레이브에게 끝이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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