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산업엔 ‘정도(正道)’가 없다.
내가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아티스트의 주체성'이다.
전제를 깔고 가자면, 요즘 엔터테인먼트는 예전과 다르다. 무작정 회사가 결정한대로, 시킨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많은 부분에서 ‘아티스트’로서의 존중과 ‘사람'으로서의 존중, ‘회사 직원'으로서의 존중 모두가 기본적이며 이전처럼 모든 것들이 회사의 결정으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고 봐야하는게 맞다. 이유는 ‘아티스트 가동성'의 의존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더 쉽게 말하면, 아티스트가 하고 싶지 않으면 프로젝트가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와 아티스트의 ‘신뢰 관계'가 일방적인 저연차 때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이후에는 긍정보단 부정의 시선이 최선보다는 차악의 선택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아직도 아티스트를 ‘피조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대게 그런 사람들은 요직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회사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이직을 하고, 아티스트는 계약 기간이 지나면 소속사를 이적한다. 결국 이해 관계가 다른 사람들이 만든 환경을 떠나고 싶은 것이다. 서로가 ‘일방적인 존중’만 받고 싶어서라고 인정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아티스트에게 어떤 이슈가 발생했을 때 팬과 대중이 보기에 회사가 잘못한 것 같고,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겠지만 나는 결코 10의 10이 모두 회사의 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알고 보면 그렇게 볼 수 없다.
https://youtu.be/bNKXxwOQYB8?si=kDcSP34c_GcYpNMw
아이돌 산업이 크게 성장하다 보니 아이돌 주변에 사람이 많아졌다. 잘하는 선생님들이 많아졌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아이돌은 그 선생님들이 만들어 놓은 매뉴얼에 따라 포장된다. 그러나 그 포장을 한겹만 벗겨내면 알맹이가 없었다는 것을 삽시간에 알게된다. 자신이 단단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여러 선생님들의 손길에 포장된 겉면에 자만하는 것이다.
내가 어느 회사에 근무를 할 때의 이야기다. 입사한지 한 달 정도 됐을까 뮤직비디오 촬영장을 갔는데 뭔가 이상했다. 뮤직비디오의 대부분이 퍼포먼스로 이루어져있는데, 멤버들이 ‘모니터해도 될까요?’, ‘플레이백(Play Back) 부탁드립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현장에 퍼포먼스 디렉터가 있으니까 그런가 싶었다. 그렇게 앨범이 발매가 되고 음악 방송 현장을 갔다. 사전 녹화가 끝나고 대기실에 들어온 멤버들 중 그 누구도 모니터 영상을 찾지 않았다. 사전 녹화가 이미 끝난 대기실이기 때문일까? 대기실에서 자신들의 모니터 영상을 보고 서로 무대에 대한 피드백을 하지 않았다. 너무 충격을 받은 나는 상사들에게 물었다. “멤버들이 대기실에서 모니터를 안하네요?” 돌아온 답은 “사녹 끝나서 모니터 안할거에요. 얘네 모니터하는거 잘 못 봤어.” 나는 곧장 이런 생각을 했다. 모니터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을 떠나서,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그렇게 수많은 음악 방송을 진행하는 동안 이들의 무대는 발전이 없었다.
내게 찾아온 또 다른 형태의 불행인가 싶었다. 그날 이후 고민이 깊었다. 많은 아이돌들의 무대를 찾아봤고 분석했다. 그렇게 깨달았다. 꽤 많은 아이돌들이 자신이 왜 노래를 하고 춤을 춰야하는지, 어떤 생각과 마음 가짐으로 팬을 대해야하는지, 앨범과 무대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고 있다. 그냥 입력값을 출력해낼 뿐이다.
내가 작년에 엔터테인먼트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돌 산업을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까닭은 아이돌 산업에 ‘정도(正道)’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돌 산업은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이기 때문에 정해진 바이블이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엔 ‘제 2의 어떤이’가 없다는 말이다. 이전 글에도 이야기 했듯이 어떤 아티스트의 대체재로 다른 아티스트를 찾지 않는다는 것. 그저 각자가 각자의 몫을 해내면 된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아이돌에게는 ‘주체성'이 필요하다. 자신들이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은지, 어떤 노래를 들어야하는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자신들의 취향을 찾아야한다는 말과도 같다. 하지만 어떻게 처음부터 많은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겠는가 주변 사람들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고, 찾아 나가고 있는지를 보면서 배워야 한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좋은 직원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직원은, 아티스트가 무대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생각을 확장할 수 있도록 질문해주는 사람이다. 장소를 막론하고 기나긴 대기 시간을 함께 보내며 실없는 가십 거리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티스트가 아티스트로 성장할 수 있게 함께 고민하는 시간으로 만들어 나가야한다는 것이다.
아티스트가 건강한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본인도 건강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직원이 되어야 한다. 요즘 아이돌은 2년도 채 안되는 시간동안 연습하고 데뷔를 하기 때문에 데뷔를 하고도 2-3년 정도 성장통을 겪기 마련이다. 일반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 기간을 거쳐 첫 회사를 들어가고 직급을 달기 전까지 수많은 성장통을 겪는 것이랑 똑같다. 시작점으로부터 2-3년간 어떤 것들을 쌓아왔느냐에 따라 그 이후가 다르다.
이제 팬들도 다 알고 있다. 더이상 맹목적으로 응원하는 팬이 되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가수로서 어떤 의의와 비전을 가지고 있느냐를 따져보고 응원하고 사랑한다. 아티스트가 자신의 몫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동기부여를 얻고 부끄럽지 않은 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래서 자신이 봤을 때 아티스트가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기회가 없다 느껴지면 직접 움직여 홍보한다. 아티스트와 팬덤의 관계는 보다 고도화됐다고 할 수 있다.
https://youtu.be/KNexS61fjus?si=7vAlwysaXgDZzukm
하루 전, 이런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 생각하자마자 하이브와 어도어 간의 이슈가 발생했다. 그러면서 어떤 커뮤니티에서 K-POP에서 하이브는 아이돌이 아니라 시스템에 투자를 하고 있다는 시각으로 쓴 글을 읽었다. 적극 동감한다.
단적인 예시로 하이브의 위버스(Weverse)가 있다. 아티스트와 팬의 소통 창구라는 개념에서 새로운 플랫폼을 개발한 것과 마찬가지인데, 나는 여기서 소통 창구가 없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소통 창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성'을 아티스트들이 모두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기술의 발전이 더해지면서 예전과 다르게 아티스트와 팬은 실시간으로 소통이 가능하다.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아티스트에게 집착적으로 일상을 묻는 경우가 발생하고, 잘 모르기 때문에 즐길 수 있었던 것들이 점점 사라지고, ‘소통'이 의무가 되면서 아티스트가 느끼는 부채감이 심해진다. 이번주에 버블(DM)을 몇 번 했는지, 라이브를 몇 번 켰는지, SNS 게시글을 몇 개 올렸는지, 사진을 몇 장 올렸는지 등 ‘숫자'로 아티스트의 직업적 소명을 묻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러다보니 아이돌은 팬을 유지한다는 입장에서 시간 내서 위버스(또는 유튜브, 인스타) 라이브를 켠다. 그리고 밥은 먹었는지, 오늘은 뭐했는지, 내일은 뭐할건지, 다른 멤버들은 뭐하는지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언제 어디서든 쉽게 할 수 있는 라이브를 어렵게 콘텐츠와 대본을 짜서 진행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소통 창구들이 정말 의미 있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나는 그런 부채감으로 소통을 할 시간에 연습을 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 언제 어디서든 안정적으로 노래를 할 수 있고 보다 완성도 있는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항상 준비된’ 아티스트로서 자신을 발전시킬 시간을 더 많이 가지라고 하고 싶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디테일을 잡아나가는 데는 이를 가려줄 수 있는 선생님(디렉터)과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활동기 아니면 볼 수 없는 우리 아티스트”라는 수식어가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K-POP 시장이 이미 양산형 콘텐츠를 만들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것엔 동의하겠다. 그러나 어떤 그룹이 대성을 하게 된 이유를 발라내어 ‘공식’으로 대입 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시스템에 투자를 해서 어떠한 체제를 만드는 사업적 측면에서만 이 산업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좋은 것을 보여주면 반드시 좋게 돌아오니까. 이제 사람들은 좋은 거를 사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