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의 1콘텐츠 2팬
줄곧 하이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이유는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팔리는 아티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돌, K-POP 시장의 흐름이 바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음악이 우선이 아니더라도 소비하는 팬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내가 이를 이해하고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본업부터 잘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소비자(팬)이 있다는 것을 알고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어쩌면 궤변 투성이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이브가 더이상 플랫폼 기업이 아닌, 좋은 아티스트를 배출하는 진짜 K-POP 엔터테인먼트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하겠다.
하이브를 소개하는 문장은 이렇다. [하이브(HYBE)는 “We believe in music”이라는 미션 아래 음악 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하는 기업입니다. 하이브는 음악에 기반한 세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기업을 지향합니다. 글로벌 트렌드를 이끄는 '콘텐츠'와 우리의 고객인 '팬'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높은 기준과 끊임없는 개선으로 고객을 만족시키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1번 음악 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하는 기업 이라는 문장과 2번 엔터테인먼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기업을 지향한다는 문장이다. 하이브는 ‘음악' 산업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수단으로 비즈니스 사업을 하겠다는 회사다. 하이브는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를 배출해내는 회사가 아니라 콘텐츠를 생산해 내고 이를 판매하는 회사다.
그렇다. 하이브는 1아티스트 2팬이 아니다. 1콘텐츠 2팬이다. (하이브에 입사하게 되면 제일 처음 듣는 카피가 1콘텐츠 2팬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확장되면서 주요 대형 기획사들은 음악(아티스트) IP를 토대로 다양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수익을 얻어가며 회사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SM, YG, JYP 엔터테인먼트의 회사 소개를 보면 음반 사업 뿐만 아니라 OSMU, IP 콘텐츠 확장 등 다양한 사업을 이어나가겠다며 큰 포부를 밝힌다. 하이브 설립 전, 부가 가치 사업을 가장 많이 진행한 회사가 SM인 만큼 이미 많은 부분에서 산업이 확장되고 발전되어 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껴왔던 사람으로써 음악(음반) 사업이 아닌 다른 사업을 하는 것에 대한 부정 의견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이브가 콘텐츠(+플랫폼) 사업을 하기 위해 아티스트(음악 IP)를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CJ ENM과 함께 빌리프랩을 설립해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론칭하고, 쏘스 뮤직과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면서 예상하건데, (당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자사 아티스트 이외에 팬덤 구매력이 있는 아티스트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얕게 보면 아티스트 스펙트럼을 넓히고자 선택한 다양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결국엔 IP 콘텐츠를 생산해낼 수 있는 ‘팬덤 구매력 높은 아티스트'가 필요했던 것이다.
6-7년의 텀을 두고 아티스트를 데뷔시키며 회사를 키워온 SM과 YG, JYP와 다르게 ‘부가 가치 사업'을 확장시키기에 시간의 축약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성공 사유가 정확하진 않지만 아티스트의 유명세를 ‘유명해서 유명한 전략'으로 포장하고 회사의 안정성이라 이름 붙여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게 아닐까.
그렇다면 하이브는 아티스트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출연자'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하이브 비즈니스는 세 분류로 나뉘어져 있다. 레이블, 솔루션, 플랫폼. 만약 하이브가 ‘음악 산업'을 먼저 발전시키고 솔루션과 플랫폼을 뒤따르게 만들고 싶었다면, 음악 퍼블리싱과 관련한 회사들을 인수하거나 풀을 넓히려는 노력을 먼저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이들은 ‘위버스' 어플리케이션을 런칭하는 것이 1번이었고, 그 이후 레이블을 설립하거나 영입했다. 기존 엔터사들과는 순서가 다르다는 것이 여기서부터 드러난다. 아티스트 풀을 먼저 넓히지 않고, 플랫폼을 먼저 만들고 아티스트를 넣은 것. 그렇다보니 첫 시작이었던 아티스트에게 다양한 사업적 시도가 이루어졌고, 이는 팬덤의 부정 이슈를 동반할 수 밖에 없었다. 아티스트도, 회사도, 직원도 ‘경험치가 높은' 누군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초창기부터 하이브는 신입 직원을 채용하지 않고, 모두 3년차 이상의 경력직만 채용한 것처럼 말이다.
지금부터 이어지는 글들은 아티스트를 비방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이브가 ‘플랫폼화' 시켜버린 아티스트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다.
하이브 아티스트에게는 ‘아티스트 장르'가 없다. 더 정확하게는 아티스트별 음악적 장르가 없다.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하이브 아티스트는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장르의 곡을 넓게 소화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외형적 요소 빼고는 어느 그룹이 어떤 노래를 하더라도 괜찮다는 뜻이다. 그럼 여기서 의문이 들 것이다. 하이브 아티스트 저마다의 색깔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왜 플랫폼화 되어있냐고. 모두 음악이 그룹의 컨셉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비주얼과 카피라이팅이 컨셉을 결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하는 곡 제목과 소년물에서 등장할 법한 그림체의 비주얼(자켓 이미지, 의상 등)을 가진 팀. ‘-(하이픈)’으로 연결되는 곡 제목과 뱀파이어 세계관을 담은 비주얼 이외에 장르적 특징이 없는 팀. 애너그램으로 만든 팀명처럼 두려움 없이 제 갈길 가는 천사들이라는 세계관 아래 부정문 단어로 이루어진 곡명 이외에 특정 음악 장르가 없는 팀 등 하이브는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비주얼과 곡 제목 이외에 느낄 만한 요소가 전혀 없다.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 중에 예외는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다행스럽게도 ‘아티스트'가 프로듀싱을 하고 있다.)
방시혁이 프로듀싱한 그룹이 그렇다. 그룹에 음악적 특징이 있는게 아니라, 그룹에 부여된 특정 서사(세계관)가 있으며 음악은 이를 뒷받침 해주는 단순한 Background Music일 뿐이다. 그러니까 노래나 춤을 특출나게 잘하지 않아도 선생님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보여줄 수만 있으면 데뷔시키고 마는 것이다. 그에게 방점은 이제 노래나 춤이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작사, 작곡가가 만든 곡을 사올뿐 아티스트가 이를 온전히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서포팅 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여진다. 그룹이 성장하게되면 궁극적으로 더 큰 무대에 서야하는 순간이 오는데 이는 외부적인 요소(LIVE AR/MR, 편곡, 댄서, 편집 등)로 포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지 오래니까. 그리고 그 기회는 회사의 자본이 쉽게 만들어줄 수 있으니까. 음악 프로듀서 출신이었던 그가 갑자기 왜 사업 확장에 방점을 찍게 됐을까. 왜 더이상 플레이어이고 싶지 않았던 걸까.
직전에 나는 이런 문장을 썼다. 단순히 사업 확장의 수단(IP)으로써 K-POP을, 아이돌을 바라보지 말고 다른 의미를 빠른 시일 내에 찾길 바랄 뿐이다. 애석하지만, 이미 하이브 아티스트들은 막대한 수익을 창출해내고 있다. 아티스트 마다의 영향력은 날이 가면 갈수록 커져가고 이는 곧 회사의 힘이 되어간다. 아티스트를 좋아해서 소비하고 있는 팬덤을 향한 쓴소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티스트를 사랑하는 이유는 따로 있을테니까 말이다.
아티스트가 오롯이 아티스트일 수 있는 순간은 무대다. 무대 위의 아티스트는 진심일 것이다. 자신들을 향해 환호성을 보내주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무대를 할 것이고 그것을 통해 자신들이 존재해야하는 이유를 깨닫는다. 그러나 팬들은 그 무대를 보기 위해 굳이 겪지 않아도 될 기분 나쁜 경험을 한다. 아티스트의 콘텐츠를 구매하는 경험에 있어서 오히려 허들이 높다고 느끼게 되는 지점이 많아지게 된다. 듣고 보는 것에서 부터 긍정 경험을 해야하는데, 이제는 듣고 보는 것에서 부터 부정 경험을 많이하고 이에 대한 보상은 극히 적다. 팬이 아니더라도 관심 갖고 지켜보고 싶은데 조금만 깊게 들어가면 피곤해지니까 시도조차 안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더 K-POP 시장은 팬덤 중심적으로 생태계가 변해가고 좁아지는 것 같다.
대형 기획사가 시장을 장악해 나가면서 회사의 역량은 이전보다 중요해졌다. 아티스트들 또한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고, 회사의 역량에 기대어 자신의 발전을 도모하지 않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아티스트도 자신의 IP로 더 ‘좋은'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이를 통해 진정한 음악이 주는 힘을 발휘하려는 노력이 간절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