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아이돌 팬덤 감수성
플레이브로는 두 번째 글이다. 지난 3월 이후 두 달만인가보다. 그 사이 온라인 콘서트도 시청했고, 매주 하는 라이브 방송도 시청하며 플레이브의 활동을 지켜봐왔다. 그러나 보다보니 이들에게는 벌써 과도기가 온 것 같다. 섣부른 판단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내가 직접 목도했던, ‘엔터테인먼트에 문법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을 모르는 이들’을 또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라 이 시점에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었다.
회사(블래스트)가 ‘버추얼 아이돌의 고유성’은 지키고 ‘엔터 문법(또는 아이돌 팬덤 감수성)’을 더 배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어떤 특정 아티스트에게 관심을 갖게 되면 적어도 두어달 이상 미친듯이 팔로업해서 모든 정보를 습득(?) 하는 병이 있다. (집착적으로 찾아보고 분석하는 까닭으로 병이라고 하겠다.) 그렇다 두어달 이상 지켜 본 플레이브의 운영 방식은 꽤 많이 아쉽다.
주변에 게임 업계에서 일하는 지인도 있고, 2D 업계에서 일하는 지인도 있기 때문에 종종 그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연결 고리가 있는 플레이브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이정도로 플레이브는 성공했다. 아직 완전한 성공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그래도 괄목할만한 성적을 냈으니까 성공이라 하겠다. 나는 이쯤에서 플레이브의 이분법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는 버추얼이다. Virtual은 가상이다. 플레이브가 정확히 ‘버추얼’ 아이돌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가상의 이미지, 가상의 목소리, 가상의 움직임 등 플레이브가 등장하기 전, 불쾌한 골짜기에 있던 때에 등장했던 버추얼 휴먼들이 진정한 버추얼이 아닐까 싶다. 면밀하게 뜯어보면 플레이브는 온전한 ‘버추얼’ 아이돌이라고 할 수 없다. 실질적으로 이들은 모두 본체를 가지고 있고, 본체를 송출하는 화면이 가상의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는 점 이외에는 모두 일반적인 아이돌들과 동일하다.
내가 처음 플레이브에 대해 ‘플레이브의 콘텐츠를 보고 AI 기술의 불쾌한 골짜기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여느 아이돌과 같이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있다. 플레이브 본체의 모습(표정, 행동 등)을 디테일하게 담아내 정말 ‘그 자체'로 볼 수 있게 되는 것도 한 몫한다.’고 했다. 사실상 플레이브는 ‘버추얼 외형'을 가진 아이돌이다. 그래서 이들의 방점은 캐릭터를 적극 활용한 콘텐츠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 것에 찍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주 2회 진행하는 라이브 방송이 가장 우선이 되는 실행 계획이 아닐까 싶다. 버추얼 시스템을 활용한 활동을 가장 먼저, 자주 보여줘야 한다. 속된말로 아이돌은 껍데기로 먹고 사는 직업이라고 할 정도로, 비주얼이 주는 임팩트가 우선이 되는 시장에서 특장점을 가지고 있는 팀인 만큼 이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일반 아이돌이 MD를 제작하면서 일상친화적인 상품을 제작해 더 많은 판매율을 기대할 때, 오히려 플레이브는 반대로 비주얼(외형) IP를 가지고 다양한 MD를 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아이돌들과는 시스템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날이 가면 갈수록 부담스러워 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본체가 장비도 착용해야 하고, 이를 기술적으로 운영해줄 수 있는 기술진도 필요하고, 방송이나 콘텐츠를 기획하는 기획자(작가, PD)도 필요하고, 이를 모니터링하는 마케팅 직원도 필요하고 품이 많이 드는 일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은 있지만 그렇기에 새로운 형태의 아이돌(아티스트)이지 않을까 싶은게 내 생각이다. (일반 아이돌도 절대 다르지 않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직업이기에 사람들이 많이 필요한 것은 동일하다.)
두 번째는 아이돌이다. 아이돌 산업은 민감하다. 민감하다기 보다는 예민하다고 하는게 맞겠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산업이기 때문에 예민한 것이다. 나는 종종 일을 하면서 팬들이라고 하지 않고 소비자라고 칭할 때가 있다. 아티스트의 IP를 구매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른다. 팬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콘텐츠를 돈주고 살만큼의 구매력을 자극할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회사의 능력이 나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회사 입장에서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구매를 할 것이라 기대하지만, 팬들의 심리는 쉽게 파악하고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당한(어쩌면 호구 맞은) 대가를 주고 콘텐츠를 구매하는 사람인데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나”라고 본다면 팬들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심리와 목소리를 선별해서 받아들일 필요는 있다. 그리고 선별하는 것도 회사가 해야하는 일이다.
아티스트와 아이돌은 팬덤(또는 대중) 안에서 이슈가 발생하면 전면에 나서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매니지먼트’ 개념에서 직접 나서면 안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계약 사항 아래 제공하는 매니지먼트 시스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인데, 이는 회사도 지키는 일이고 아티스트도 지키는 일이다. 그러나 회사의 여러 의사 결정으로 인해 대응하지 않고 넘어가거나, 최소한의 대응만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어 팬덤이 답답하거나 불안정한 상황이 발생하면 결국 아티스트가 전면에 나선다. 예전 같았으면 아티스트와 팬의 실시간 소통이 불가능했기에 빈도가 잦지 않았지만, 결국 버블이나 위버스 DM, 개인 인스타 계정 등을 통해 실시간 소통이 가능해졌기에 일시적으로 불거진 이슈에 대해 불안해진 아티스트가 직접 해명하는 일이 자주 생기기 마련이다. 팬들을 달래는 목적에서 소통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아티스트가 직접 대응한다는 것은 최후방에서 해야할 일이라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입장이다. 그렇다고 모든 대응을 회사가 하게 되는 것도 옳은 것은 아니다. 필요하다면 아티스트가 직접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아티스트가 실시간으로 당장의 잡음을 바로 잡을 필요는 없다.
게임 업계에서 유저들과의 인터렉티브를 위해 기획자, 개발자가 직접 등장하거나, 메이저 플레이어가 직접 소통하는 경우들이 더러 있어서 그런가, 생각보다 플레이브는 멤버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껴진다.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라 아닐 수도 있다.) 게임 업계 지인 또한 당연한 일이기에 이상할리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런 부분은 ‘아이돌'에 방점을 찍는다면 부조화가 올 수 밖에 없는 것.
더불어 버추얼 ‘아이돌'이기에 플레이브 멤버들 또한 노력해야하는 점도 분명 있다. 사소하게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은어 줄이려고 노력을 한다던가, 소통의 빈도와 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던가, 단순히 시스템에 가려져 간과한 느슨한 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한다던가 조금 더 ‘요즘' 아이돌들의 정도를 배울 필요가 있다. (이들이 알아차릴 수 있도록 회사가 많은 피드백을 줘야겠지만…)
그리고 팬들은 이들이 아이돌이기 때문에 기대하는 모습들이 있다. 이는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훨씬 더 많이 보길 바라는 ‘본업'에 대한 갈증이다. 플레이브가 콘텐츠로써 성공한 것이나 다름이 없지만, 이전 글에도 언급했듯 플레이브의 ‘음악'을 듣고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버추얼이기 때문에 딥하게 덕질할 수는 없어도, 노래는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두면 쉽게 빼지는 않는 팀이 된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멤버들의 니즈는 가득한 것으로 보인다. 회사가 앞으로 이러한 부분에서 어느정도 서포트를 해주느냐에 따라서 진정한 ‘버추얼 아이돌'로서 성패를 가르지 않을까 싶다.
내가 그간 직접 경험해본 결과 아이돌 팬덤에게는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단어(문법)들도 있고, 그들이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도 있고, 무조건적인 긍정 반응 또는 부정 반응을 받을 상품도 있다. 어쩌면 회사가 큰 생각 없이 적었던 공지문 하나, 해시태그 하나, 소개 자료 하나 등에 팬덤은 크게 요동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침착하게 대응하고 처리해야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혼란한 환경이다. 초반에는 플레이브는 게임 업계의 팬들, 2D 업계의 팬들, 아이돌 업계의 팬들을 모두 끌어다 모을 수 있는 팬덤 확장성이 남다를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이 삼자간의 이해 관계는 너무나 다르다. 덕질의 기본 목적은 자신의 현생을 잊을 수 있게 해주거나 위로와 치유가 가능하게 해주는 것에 마음과 돈을 쓰는 것이다. 어느 누가 자신이 즐거우려고 하는 일에 쓸데 없이 화내고 짜증을 내는 것을 취미로 삼는 사람이 있을까. 결국 일말의 즐거움으로라도 버텨보려다 지친 나머지 그 판을 떠나고 마는 결말은 똑같을 것이다.
외람된 말이지만, 플레이브를 좋아하는 일부 팬들은 어쩌면 본체를 덕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플레이브는 ‘버추얼 외형' 아이돌 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일부는 본체를 온전히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고 있을 수 있다는 예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갑자기 본질을 흐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더욱 버추얼과 아이돌 모두에 방점을 찍고 팀을 운영해 나가야한다는 말이다.
플레이브는 ‘버추얼' 아이돌이기 때문에 그룹의 방향성과 회사의 행동 강령이 일반적인 엔터테인먼트와는 달라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애초에 버추얼 ‘아이돌' 사업을 하겠다는 사업적 목표가 있다면 엔터테인먼트가 가지고 있는 문법과 팬덤 감수성에 대한 이해가 기반이 된 인력들을 배치해서 회사를 이분법적인 사고로 팽팽하게 이끌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K-POP을 좋아하는 개발자, K-POP을 덕질했던 마케터들이 아니라는 소리다. 내가 이렇게까지 타켓 삼아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전에 일했던 회사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 내부에서 신규 사업이랍시고 진행했던 ‘아이돌 IP’를 사용한 콘텐츠(유사 온라인 MD) 팔이 경험에서 차오르는 은은한 PTSD다. 두 가지 자아가 충돌하는 마치 인생 극장과 같은 고민과 예측 가능한 부정 반응,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행해야 하는 물리적 한계 등이 도처에 깔려 있는 사업이었다. 사실 나와 다른 환경에서 일해 온 사람들과 다른 문법으로 이야기하는게 가장 어려웠달까. 플레이브를 제작하는 환경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나마 경험이라도 해봤으니 다시 그 환경에서 일하라고 하면 중간 지점을 찾으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그곳의 과도기는 꽤 길 것이라고 감히 예측한다.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반영하려고 노력한다면 참 좋을텐데…
나에게 온전히 저런 마음(팬덤 감수성을 챙기는 마음)으로 일했느냐라고 묻는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아니라고 대답하겠다. 업무는 현실이고, 내가 말한 것은 모두 이상향에 가깝다. 회사와 환경의 의사 결정에는 절대적인 사유는 없다. 그러나 상부(또는 다수)의 결정이 무조건 암묵적인 동의를 하게끔 깔끔하진 않기 때문에 늘 복잡한 생각을 갖고 살아왔다. 그래서 이런 글도 쓸 수 있지 않나 싶다.
바이너리(Binary)는 0과 1로 이루어진 이진법을 의미한다. 모든 것들이 정말 0과 1로만 이루어져 Y/N를 명확하게 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바이너리 개념이 들어온지는 꽤 됐지만, 사람의 마음을 사는 산업이기에 이러한 개념은 온전하고 완벽하게 자리잡을 수 없다. 스모그처럼 깔려 오랜시간 유지된 이들의 감수성을 애써 가르며 지나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