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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h Choi Oct 14. 2023

선생님께 꼭 전하고픈 말이 있어요

학대아동보호 쉼터 원장님과 아이들

  "제가 키운 것도 아닌데 대견하고 뿌듯하네요. 원장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나는 울먹이며 겨우 수화기를 붙잡고 이 말을 전했다. 형용할 수 없는 뿌듯함과 서러움 사이에서 울고 있던 건 수화기 저편의 원장님이기도 했다.

  내가 원장님이라고 부르는 그분은 학대아동피해 쉼터를 운영하시는 분이셨다. 오십 대 정도 되어 보이는 선하고 편안한 인상을 가진 분이라 기억한다. 우리가 얼굴을 본 건 사 년 전 단 삼십 분 남짓의 짧은 시간이었다. 원장님은 일 년의 한 두 번 나와 연락을 하는데 정확히 내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시고 계신다. 나도 굳이 내가 그때 누구였는지를 명확히 밝히고 있지는 않다. 우리 사이는 그렇게 사 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사 년 전, 당시 우리 반이었던 아이가 한국인 새아버지로부터 학대당한 정황을 알게 된 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은 일사불란하게 매뉴얼대로 경찰에 신고를 취했고 새아버지는 경찰 조사를 받게 되었다. 아이는 즉각 보호자와 분리조치 되었고 병원 진찰과 심리치료를 받고 학대아동피해 쉼터로 옮겨졌다. 갑자기 수업에 나오지 않는 아이를 이상하게 여겨 행방을 묻는 학생들에게 나는 적당한 말로 둘러대야 했고 아이의 새아버지의 반 협박성 메시지를 읽고 분노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러던 중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함께 아이의 속옷과 내복, 먹을 것 몇 가지를 사서 쉼터에 방문했었다. 아이가 유독 나를 잘 따르고 좋아해서 나도 참 예뻐했던지라 그렇게나마 얼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선뜻 사회복지사 선생님을 따라나섰다. 아이는 마침 병원 진료를 받으러 간 상황이라 아이는 볼 수 없었고 우리는 쉼터 곳곳을 둘러보고 원장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이대가 다양한 남자아이들이 모두 비슷한 사정으로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 했다. 여자 아이들의 쉼터는 다른 곳에 역시 비공개로 설치 운영되고 있다. 남자아이들이라 김치나 쌀도 금방 동이 나고 쑥쑥 자라는 아이들이 옷가지도 챙겨주기 쉽지 않다고 했다. 교양 있고 점잖은 어투셨지만 힘든 사정을 숨기지 않으셨다. 비공개로 운영되는 시설이라 많은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고 기부를 받아도 어디 홍보해주지도 못하니 기부자가 거의 없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 방문하기 전까지 이런 곳이 이런 모습으로 있을 거라고 생각도 해 본 적이 나 조차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줄곧 한 달에 한 번 20KG의 쌀을 보내고 있다. 큰 도움이 아님에도 원장님은 매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신다. 그러다 작년 말쯤 전화가 걸려왔다. 쌀이 제때 안 갔나? 생각을 하며 전화를 받았는데 이번에도 역시 원장님은 먼저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선생님 매번 너무 감사드려요."

  "아니에요. 큰 것도 아닌데요. 매번 감사 인사 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 이번에 저희 아이 중에 의대에 간 아이가 있어요."

  "정말요? 어머! 너무 잘 됐네요!"

  "네, 힘든 상황에서도 열심히 공부했죠? 선생님 덕분입니다."

  "아니, 제가 뭘 한 게 있나요..."

  "그리고 이번에 공무원 합격한 아이도 있답니다."

  "진짜 잘 됐네요. 너무 뿌듯하시겠어요."

  "네! 우리 아이들 힘든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정말 열심히 잘하고 있어요. 선생님께 꼭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저희가 이런 아이들이 있는데도 비공개 운영이라 어디에 자랑도 못해요. 일반 센터면 현수막도 붙이고 할 텐데요."

  아쉬움이 묻어나는 원장님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나도 더 참기 어려웠다. 각자의 말을 채 잇지도 못하고 울먹거리며 안부를 묻고 통화는 끝이 났다.  


  언젠가 딸아이가 학교에서 읽었다는 책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엄마, 아기들은 천국에서 내가 태어나고 싶은 엄마를 고른대. 난 엄마가 예뻐서 골랐어. 근데 다른 친구는 자기 엄마가 울고 있어서 골랐대."

  "왜 우는 엄마를 골랐을까?"

  "글쎄? 위로해주고 싶었나?"

  아이의 말대로라면, 아니 그 책대로라면 아이들은 천국에서 자기가 태어날 부모와 가정을 골랐을 것이다. 쉼터의 아이들에게 고약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부모가 아닌 다른 존재들을 만나 더 단단해지고 아름다운 구슬을 채워나가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쉼터의 아이들도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위로와 사랑을 받으며 예쁜 구슬들을 채워나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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