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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h Choi Jan 09. 2023

토끼의 도시


  며칠 째 희부윰한 안개가 도시 전체를 덮고 있었다. 북방에서 갑자기 남방으로 내려 온 나는 한동안 C 도시의 더위에 쉬이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에 안개라니. 그렇다고 더위가 식은 것도 아니었다. 숨 막힐 듯 높은 기온에 부연 안개까지 더해져 나에게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일이 끝나면 무작정 집을 향해 갔었다. 그런데 오늘은 하릴없이 길거리만 배회하고 있었다.     

  내가 성급히 내려 온 C 도시는 중국에서도 거의 남쪽에 있는 비교적 큰 도시였다. 최북단 H 도시에서 공부하던 나는 마침 이 곳에 일자리가 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전화 면접을 보자마자 비행기를 타고 내려 온 것이다. 하지만 처음의 설렘과 기대감은 알 수 없는 이질감과 두려움에 조금씩 물들어가고 있었다. H 도시와는 달리 한국인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이 곳, 북방 사람들이 계산적이고 속물이라고 비난하던 사람들이 바로 남방 사람들이었다. 그 사이에 생경하게 내가 서 있었다.     


  나를 고용한 회사의 사장은 당분간 취업비자를 내주긴 어려운 실정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전화 면접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그리고 내 손에 쥐어준 가벼운 열쇠 하나. 회사에서 십 오 분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허름한 아파트 열쇠였다. 쿨렁, 하는 소리와 함께 1층에 내려 온 엘리베이터를 타고 22층까지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와 습습한 온도가 살갗에 끈적끈적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조도가 낮은 조명이 어둑한 집을 겨우 밝히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집. 검은 가죽 소파와 먼지가 가득 내려앉은 유리 탁자. 거실을 따라 가운데 방으로 들어섰다. 회사 직원 말 대로였다. 바로 쓸 수 있게 청소를 해 두었다는 가운데 방에 커다란 침대와 반듯한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책상 위에 커다란 중국 지도. 사람들은 늘 세상이 참 좁다, 라고 말을 하지만 나는 곧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H 도시에서 C 도시까지만 해도 비행기로 다섯 시간이나 걸렸다. 누구에겐가 도망칠 일이 있다면 충분히 도망쳐 숨어 살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아주 잠깐 했었다. 그리고 옆을 보았을 때 방과 연결 된 베란다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토끼였다.     


  한참을 배회하다 문득 어둑해진 거리에 혼자 서 있다는 걸 자각했다. 하는 수 없이 느린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분명, 죽었을 거야. 죽었겠지. 혼자 수 십 번 입엣 말을 하며 가는 그 길이 한국보다도 멀게 느껴졌다.     

“토끼는 원래 설사하면 죽는 거예요. 몰랐어요? 에휴, 전에 일하던 직원이 급히 한국 가는 바람에 토끼를 못 치운 게 화근이지. 곧 죽겠네…….”     

  토끼는 커다란 베란다의 절반을 제 집으로 쓰고 있었다. 전에 있던 사람이 손수 만들어 놓은 천장이 뚫린 넓은 집이었다. 내 전에 살던 사람이라고 해 봤자 그 사람이 머문 건 이주가 채 되지 않는 기간이었다. 그 짧은 기간에 어디에서 어떻게 토끼를 구해와 기른 건진 몰라도 여전히 체구가 작은 걸로 보아 그리 건강한 토끼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런 토끼와의 동거기간 동안 나는 토끼를 방치 해 두었었다. 아니, 무서웠다. 티 하나 없이 하얀 털을 가진 손바닥만 한 짐승이 빨간 눈으로 나를 쳐다본 다는 것 자체가 어딘가 꺼림칙했다. 좀처럼 환해지지 않는 집안의 조명과 토끼의 사부작거리는 소리,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 창문 밖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가 불면의 밤을 지속시켰다. 요즘 비자 단속이 심해지고 있는 모양이니 밖에 다닐 땐 조금 조심하고. 말을 마친 회사 관리자가 어안이 벙벙해 있는 나를 일별하고 사라졌다. 잠이 오지 않는 낯선 도시의 여름 밤, 눈을 깜빡 할 때마다 회사 관리자의 땅딸막한 뒷모습이 한 발짝씩 멀어지곤 했었다.     

  거친 쇳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그리고 서서히 방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섰을 때 급작스런 한기로 온 몸에 오소소한 소름이 돋았다. 하루 종일 제가 싸 놓은 설사에 뒹굴었는지 하얗던 털에 온통 똥칠을 한 토끼가 눈에 들어왔다. 아침에 설사를 한 토끼를 보았지만 시간이 촉박해 치워주지 못하고 나왔었다. 눈도 떼꾼해진 것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힘이 없었다. 그때 맥없이 한 발짝 내딛던 토끼가 제가 싸놓은 설사에 미끄러져 풀썩 주저앉는 것을 보았다. 더 볼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후 마음을 다잡고 당근과 오이 하나 씩을 던져주었다. 한참 후에 알게 된 것인데 토끼에게 원래 오이같이 물기가 있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의외로 토끼는 당근이 아닌 오이를 먹었다. 그리고 나는 엄청나게 먹이를 탐하는 토끼의 매서운 눈과 마주쳤다. 곧 죽을 것 같던 토끼는 기다란 오이 위에 자그마한 두 발을 올려놓고 사납게 나를 노려보며 게걸스럽게 그것을 갉아 먹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한국에 있을 때 인터넷으로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제주도에 사는 어떤 사람이 감나무인지 배나무인지 몇 년 째 열매가 하도 열리지 않아 철사로 나무 기둥을 꽉꽉 동여맸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무 숨통을 조여 놓고 이듬해 보면 열매가 풍성하게 잘 열렸다는 이야기였다. 그건 그 나무가 마지막 죽을힘을 다해 자기가 맺을 수 있는 열매는 모조리 다 맺어 놓고 죽는다는 거였다. 잔인해. 글을 읽고 나서 좀처럼 찜찜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었다. 문득 그 예전에 읽었던 글이 떠오르는 건 우연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눈을 떠 보니 벌써 낮이었다. 침대 옆에 어제 먹다 남은 과자며 초콜릿 따위가 서로 엉겨 있었다. 유일하게 쉴 수 있는 날은 일요일 뿐 이었다.      

  "사장님이 참 마음에 들어 하십디다. 여기 온 직원들 대부분이 밤이면 그렇게 술을 마시러 다녀, 요즘 비자 때문에 가뜩이나 예민한데 말이지. 응?"     

  능글맞게 웃으며 사라지는 관리자의 작지만 단단한 등을 맥없이 바라봤다. 나는 다른 직원들과 달리 대개 일이 끝나면 그 길로 집으로 갔다. 가는 길에 작은 마트에 들려 이것저것 먹을 걸 잔뜩 사오는 게 전부였다. 그럴 필요까진 없었으나 비자 때문에 모든 것이 조심스럽기만 했다. 누군가 말을 걸어도 부러 모른 채하고 서둘러 오기 일쑤였다. 그런데 어제는 하루 종일 근무를 하고 저녁 늦게 까지 바깥을 돌아다녔으니 피곤했었나 보다. 깨지 않고 열 두 시간 넘게 잠을 잤다. 이곳에 온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상체를 일으키고 정신이 깨고 잠시 후, 갑자기 토끼 생각이 났다. 침대에서 내려 가 가만히 토끼집을 훔쳐보았다. 휑하니 빈 공간. 날이 밝으면 병원에 데려갈 요량으로 어제 직접 토끼를 철장에 옮겨 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돌려 철장을 내려다보았다. 분명히 철장의 문들을 잘 잠가 놓았었다. 그런데 철장 문의 작은 틈새가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토끼는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주변 바닥에 선명하게 찍힌 토끼 발자국을 보게 되었다. 설사가 토끼 발자국 모양으로 꾸덕하게 말라 길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발자국을 따라 서서히 발길을 옮겼다. 놀랍게도 그 발자국은 베란다를 지나 내 방으로, 내 침대를 지나 방 맞은 편 화장실로 향하고 있었다. 중간 중간 미끄러진 듯 길게 뭉그러진 발자국도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만 소스라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열어놓은 화장실 타일 바닥에 축 늘어져 죽어있는 토끼가 있었다. 놀라운 건 조금만 더 가면 그곳은 수세식 변기가 있는 구멍이 있었다는 것이다. 남방의 화장실은 대부분이 좌변기 시설이 아니었다. 처음 왔을 때 의아하고 불편하던 것이 바로 이 화장실이었다. 나름대로 아파트 안에 있는 가정식 변기라고는 하나 거의 바닥만 파 놓은 형체였다. 그런데 토끼가 거기까지 기어 간 것이었다. 이전에 토끼는 제 집 밖을 다녀 본 적이 없었다. 전의 주인이 어떻게 길렀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의 몸을 잡아 본 적도, 밖으로 내 놓아 본 적도 없었다. 도대체 왜 나온 것일까,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것일까.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한때는 생명체였던 이미 죽어버린 토끼의 몸뚱아리를 멀찌감치 선 채로 바라보았다. 한 번도 눈을 뜨고 처음 볼 수 있는 것이 무언가의 혹은 누군가의 사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땅에서가 될 것이라고는 더 더욱이.     

  모든 생명체에는 그마다의 본능이 있는 것일까. 한때 살아있던 모든 것에는. 나는 죽을힘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토끼는 간밤에 아마 마지막 죽을힘으로  철장을 비집고 밖을 향해 기어 나왔을 것이다. 단지 죽기 위하여. 나는 처참히 누워있는 토끼의 몸뚱아리를  바라볼  없어 고개를 돌렸다. 한동안 자욱했던 안개가 걷히고 다시 찌를  눈부신 햇살이 끼쳐 들어오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는 여전히 도시의 소음과 윙윙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멀리 굳게 닫혀 있는 어두운 조명 가운데 우뚝  있는 철문이 보였다. 그리고  모든  조용해졌다.     




*짧은 형태의 픽션임을 밝힙니다. 차후에 조금 더 긴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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