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고통과 슬픔
순간 뇌의 회로가 막힐 때가 있다. 멈칫하는 찰나의 순간 아이들의 눈을 빠르게 살핀다. 전원이 꺼진 기계처럼 아이들의 동작이 그대로 정지된 채 나를 응시하고 있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니 내 지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들이 내 앞에 있다. 나는 빨리 생각해내어야 한다.
선생님이 수업 준비를 하셔야죠.
언젠가 한 선생님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한동안 자괴감에 사로잡혀 헤어나오지 않았던 말이었다.
힘이 드네요.
투정처럼 지나치던 내 말에 사랑으로 아이들을 대하라던 충고를 했던 선생님이었다.
강사라는 직업 특성이 그렇겠지만 특히 한국어 강사라는 직업군이 동료라는 인식이 크게 요구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랫동안 나는 주로 혼자 일을 해왔다. 프리랜서라는 직업군이라는 이 일이 특히 그럴 것이고 내가 맡고 있는 중도입국청소년 한국어교육 소속이 나 혼자 꾸려가고 있는 것이어서 그런 것인지 소통의 창구 없이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한 채 일을 해왔다.
물론 센터에서 나를 인정해주고 전적으로 도와주시는 여러 센터 직원분들이 계시긴 하지만 말이다. 같은 직업군으로서 소통이 가능한 동료는 없었다. 센터 아이들이 수시로 나이 제한(8세~23세이긴 하지만 차이가 커서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국적 제한, 학력 제한(고등학생 나이여도 사정상 본국에서 초등학교조차 다니지 않은 아이도 있다), 한국어 능력 구분도 없이 들어왔다. 그 모든 몫은 오롯이 교사인 나 혼자 감당해야 했는데 한 교실에서 초급 회화를 가르치고 있는 상황에서 예고도 없이 한글도 모르는 아이가 2교시에 들어오면 갑자기 그 아이에게 한글 입문도 가르쳐야 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또 다음 날 다른 아이가 들어오면 모든 게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교사인 나 혼자 한 교실에서 세 단계 이상의 각기 다른 수준의 한국어를 예닐곱 명의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이런 상황에서 매일 골머리를 썩이며 수업 준비를 해가도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였고 버려지는 수업 자료도 많았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두 시간 동안 그중 몇 명의 중간 단계 아이들만 데리고 수업을 해주는 선생님을 고용해 주셨는데 그 선생님이 네 시간 중 앞 두 시간 수업을 하다 가시면 나머지 두 시간을 그 아이들까지 다 맡아 내가 가르쳐야 하니 내 입장에서는 결국 두 시간의 임시방편인 것이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감사해서 커피도 사 드리고(나도 월급 받는 입장이면서) 했었다. 그러다 코로나가 끝나고 아이들이 수시로 들어오는 수가 더 늘어나고 초급을 맡고 있는 내 입장에서 우리 교실은 교실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정신 없는 수준이 되었다. 기존 아이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관리가 힘들었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그 선생님께 선생님 반 아이들이 우리 반으로 넘어오는 시간에 할수 있을만 한 과제를 좀 더 내주실 수 있을까란 부탁을 드렸을 때 그 이야기를 들었다.
제가 선생님 보조는 아니잖아요. 선생님 수업 준비는 선생님이 하셔야죠. 저도 제 수업 진도가 있는데 그런 부탁을 하시면 곤란해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다며 돌아서는데 귓불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마치 내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수업 현장에 나온 무책임한 강사처럼 느껴졌고 무능력하고 한심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선생님이 나를 보며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세요”란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를 보는 시선의 의미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사이도 그럴 시간도 없었다. 나는 늘 많은 아이들에 싸여있었고 쉬는 시간도 없이 아이들을 케어해야 했다. 한국말을 하나도 못 하는 어린 아이들의 경우는 선생님의 시선이 벗어나면 곧 위험과 직결되는 것이어서 특히 더 그랬다. 화장실 갈 틈도 없이 이 단계 아이들 과제를 봐주고 저 단계 아이들 과제를 봐주다 겨우 물 한 잔 마시러 선생님과 마주쳤을 때 내가 '너무 힘드네요' 한 마디 건넸을 때 선생님이 난데없이 한 말이었다.
서너 명의 같은 수준의 아이들에게 단일 교재로 수업하면서 진도를 나가는 선생님과 나의 상황이 얼마나 다른지 그 상황에서 내가 그 선생님에게 얼마나 무리한 부탁을 한 것인지. 혹자는 내가 하는 일이 무리한 것이며 그런 상황을 센터에 말해 개선하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내가 그 일을 그만두는 것이 어떤지에 대해 조언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현실적인 상황이라는 것이 있고 우선 육 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 안에, (매년 바뀌지만) 아이들과 나 사이에 형성되어 오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스토리가 있다.
그리고 한동안 그 선생님의 말이 나를 자괴감에서 헤어나오지 못 하게 한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나는 수업 시간에 내 모든 것을 쥐어짜고 나와 가정에서 일상을 살고서 남은 시간에 다시 만일에 만일을 준비해 수업을 나갔다. 물론 모든 아이들의 상황에 대비할 수는 없었고 여전히 임기응변으로 하루를 보내고 왔고 변함없이 힘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선생님이 나를 찾았다.
선생님 저 너무 힘들어요. 아이들이 정말…너무 힘드네요.
아이들이 수업을 방해하는 이야기, 규칙을 지키지 않는 이야기, 기본적인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 등 내가 이미 겪어 왔던 이젠 너무 당연한 수업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한동안 선생님을 바닥까지 떨어트려 놓았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저 이해한다고만 했다.
언젠가 중국에 있을 때 중국 출신 한국어 강사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한국에 있는 국립대에서 학업을 마치시고 교직에 계시다 중국에 오신 분이셨는데 한국어 강사의 삶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시다가 “왜 훈장 똥은 개도 안 먹는다고 하잖아요.”하는 말에 잠시 벙쪘던 기억이 있었다. 내 세대에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속담이었지만 충분히 짐작 가능한 말이었다. 이 일을 하면서 나는 그 말을 항상 생각한다. 수백 번 설명해도 아이들에게 가닿지 않는 내 말의 의미, 돌아서면 바닥에 버려지는 내 말들을 다시 주워서 아이들에게 건네줘야 할 때의 내 심정을. 그래도 웃어야 하고 따뜻해야 한다는 걸.
이번 주에도 새로운 아이들이 왔다. 가차 없이 밝은 아이 둘과 조용하고 믿음직스러운 아이 하나. 아이 둘은 사정이 있어 일주일에 한두 번은 엄마를 따라 타지역을 가느라 결석이 불가피하다고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제 엄마를 통해 그랬단다. 선생님과 수업이 너무 좋아서 결석하고 싶지 않으니 엄마 혼자 다녀오라고.
나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나를 보는 아이들에게 빨리 지시를 내린다. 한 모둠의 아이들에게는 대화 연습을 시키고 한 모둠의 아이들에게는 미리 알려 준 단어를 외우게 한 뒤, 나머지 한 모둠의 아이들에게는 모음 글자를 가리키며 발음을 따라 하게 한다. 그제야 아이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한국어 교실이 아이들의 말소리로 활기차졌다.
*다문화센터에서 중도입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실제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수기를 작성했습니다. 실제 내용을 기반으로 했으나 등장인물이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은 임의로 각색하였음을 밝힙니다. 다양한 곳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분들이 계십니다. 처우가 좋든 나쁘든 모두 각자의 사명을 가지고 매순간 최선을 다해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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