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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Apr 07. 2022

어질러진 무언가를 정리하는 방법 / 박브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방법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 그렇게 어질러져 있진 않지만 방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물론 이 때의 ‘어질러짐’의 기준은 지극히 상대적이고 개별적일 것이다). 뭐가 문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마침 시간은 많고, 이 상황을 해결 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알고 있다. 필요한 건 조용한 결심 뿐이다. 의자에 잠시 앉아서 조금 숨을 고르고, 몸을 움직인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그럼 일단 <강철의 연금술사>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한다.


  누군가 재미있게 본 만화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꼭 대답으로 들어가는 작품 중의 하나가 아라카와 히로무의 <강철의 연금술사>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연금술'이라는 요소가 중요하게 기능한다. 설정 상으로는 지각 에너지 등을 특정한 방법으로 여러 에너지로 변환시켜 대상의 물리적 형태나 화학적 성질을 바꾸는 기술이다. 아무것도 없는 듯 보이는 흙바닥 속의 금속 성분을 이용하여 칼을 만들어 낸다거나, 공기 중의 산소와 수소를 연소시켜 폭발을 만들어낸다거나 하는 것이 그 예이다. 주인공을 비롯한 작품 내의 연금술사들은 각자 자신만의 전문분야가 있고, 진리의 발견이나 권력에 대한 욕심,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등 저마다의 이유로 스스로의 연금술을 연마, 연구해 나간다.


  연금술은 물론 작품의 세계관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구의 기술이다. 그래서 다른 판타지 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법이나 마술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나름의 체계적인 법칙과 한계가 분명하다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연금술로는 물질의 본질적인 속성을 바꿀 수 없다. 금속을 나무와 같은 유기체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일정량의 물질을 연성하기 위해서는 그에 준하는 질량만큼의 재료가 필요하다. 1kg의 철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암석에서 1kg 이상의 철을 연성할 수는 없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희생해야 한다는 '등가교환의 법칙'은 연금술의 기본적인 이치로 여겨지며,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작품 내에서의 연금술은 '분해', '이해', '재구성'의 3단계를 거쳐 발동된다. 먼저 대상에 에너지를 가해 분자 또는 원소 등의 단위로 '분해'한다. 이렇게 분해한 물질의 종류와 양을 정확하게 '이해'한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연성하고자 하는 대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연금술의 기본적인 원리이다. 이 세 단계 중 하나라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절대 원하는 물질을 연성할 수 없다. 연금술사들이 현실 세계의 과학자와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어느 정도 까지 분해할 지, 그렇게 나뉘어진 물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조합할 지를 알아야 하기에 연금술에 있어 지식은 필수적이다.


  다시 어질러진 방으로 돌아와, 무언가를 정리할 때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 바로 이 연금술의 3단계 이다. 우선 방 안에 있는 모든 내용물을 끄집어내어 ‘분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고나서 방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면밀히 ‘이해’한다. 버려야 할 것과 남겨야 할 것을 구분하여 무엇을 어디에 둘 지까지 정하고 나면, 이제 ‘재구성’의 시간이다. 계획했던 대로 차곡차곡 방을 채워 넣으면 깔끔한 방이 ‘연성’된다. 물론 이 방법으로 짐이 가득한 방 하나를 정리하는 것은 꽤나 고된 작업이지만, 단위를 작게 하면 굉장히 요긴하다. 옷장 하나, 서랍 한 칸, 가방 한 개를 정리할 때도 마찬가지 이 세 단계를 거치면, 다소 수고스럽긴 할 수 있으나 결과 자체는 보장할 수 있다. (물론, 옷을 개는 방법이나 물건을 효율적으로 분류하는 방법 등은 일종의 ‘지식’에 해당한다.)


  작품 속의 판타지스러운 기술에서 얻은 흔해보이는 지혜지만, 일상에서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할 때도 꽤나 덕을 보고 있다. 현실에서의 연금술과 비슷한 구석이 많은 요리에서도 거의 늘 비슷한 단계를 거친다. 글을 쓰면서 막힐 때도 일단 멈추고 문장, 단어 단위로 뜯어보다보면 좋은 실마리를 찾게될 때가 있다. 이쯤되면 <강철의 연금술사>에서의 연금술은 일상에 대한 절묘하고 치밀한 은유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떤 하루를 보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연금술사들의 고민과 맞닿아있다.


  다 치워진 방을 보고 있자니 어딘가 안정된 기분이다. 사실 정리하면서 보니 그렇게 어질러져 있지는 않았다. 어쩌면 내가 연성한 것은 깔끔한 방이 아니라 차분하게 정돈된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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