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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미 Nov 11. 2023

시력이 나빠도 잘 보는 방법


 나는 시력이 나쁜데 안경은 안 쓴다. 중학교 때, 안경을 쓰는 친구가 똑똑하고 멋있어 보여 안경이 쓰고 싶었다. 눈이 잘 안 보인다고 하자 엄마는 안과부터 데려갔고 검사결과는 매우 좋음이었다. 안경은 필요 없단다. 포기하지 않고 친구의 안경을 재미 삼아 빌려 쓰고 깜깜한 곳에서 티비를 보고 책을 읽었다. 그러자 눈이 잘 안 보이는 것 같았고 드디어 안경을 맞추게 되었다. 처음 맞춘 안경은 레오파드 무늬의 B사감 선생님 안경 같은 뿔테였는데 지금 그때의 촌스러운 사진을 보면 불태워 없애고 싶다. 그리고 안경이 쓰고 싶어서 눈이 나빠지기를 노력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찾아가 철 좀 들라며 뒤통수를 한 대 때려주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시력이 점점 떨어져 이젠 안경을 써야 보이는데 반대로 거의 쓰지 않는다. 외출 준비를 할 때, 화장을 다하고 마지막에 안경을 쓰면 왠지 모르게 준비가 덜 된 사람 같다. 렌즈는 주변 사람들이 하는 걸 보고 귀찮아 보여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도 안 보여서 좋은 점이 두 가지가 있다. 우선 내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 않아서 좋다. 세수만 하고 외출할 때 거울에 얼굴이 너무 잘 보이면 깜짝 놀라서 괜히 위축되어 모자를 쓰거나 마스크를 찾는다. 그런데 시력문제로 뿌연 효과를 주는 자체 필터가 가능하여 스스로 덜 못나 보이는 건 좋은 일이 분명하다. 자체 필터로 당당할 수 있어 자존감이 높아 보인다.  

 두 번째는 모르는 사람들도 잘 보이지 않는다. 잘 알거나 자주 보는 사람들은 대충 실루엣이나 스타일로 알 수 있지만 인사만 하는 정도의 사람 얼굴은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다. 이것이 좋은 점인 이유는 인사만 나누는 사이는 “안녕하세요~~~” 하고 나면 딱히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스몰토크가 어려운 내향형 인간이 아닌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에 반에, 불편한 건 한두 개가 아니다. 하루는 혼자 지나가는 길에 바닥에 토사물을 보고 더럽다며 호들갑을 떨며 피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노란 페인트였고, 바람에 나뒹구는 검은 비닐봉지를 보고 쥐라며 꺄~~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랑 헷갈려 모르는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했다가 무안하기도 하고 멀리서 이상한 물체가 보여 호기심에 굳이 가까이 가서 로드킬 당한 고양이 시체를 자세히 보고 며칠 동안 생각나 괴롭기도 했다. 이 밖에도 큰 아이 태권도 대회에서 남의 아이를 우리 아이로 착각하여 열정적으로 응원하고 정작 우리 아이가 하는 것은 보지도 못한 적도 있고 학부모 참관 수업에는 실눈을 뜨고 아이를 관찰하느라 눈에 경련이 일기도 했다. 


 사람의 얼굴을 약 15초간 뚫어질 듯 보아야 얼굴을 알아차릴 정도의 시력이 되자 부담스러워서 사람을 잘 안 보게 되었다. 그러자 자연스레 주변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었고 그만큼 나의 시야도 좁아졌다. 최근 들어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주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뭐 쓸거리 없나 생각하며 여기저기 둘러보니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였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데 옆 테이블의 남녀가 눈에 들어왔고 대화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서로의 하는 일, 좋아하는 일, 관심사 등의 내용으로 보아하니 소개팅을 하는 자리인 것 같았다. 남녀가 서로에게 집중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고 새로운 커플의 탄생을 상상하며 혼자 설렜다. 

 며칠 전에는 운동을 마치고 스타벅스에 가서 혼자 아침을 먹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서 한 남자가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너덜너덜한 책을 읽고 있었다. 중국어를 소리 내어 읽으면서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걸 보니 호기심이 생겨 인사를 건네고 짧게 책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상에서의 낯선 사람과의 대화는 다른 나라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행지에서는 누구와도 친구가 될 용기가 생기지 않는가. 


 세상을 보는 눈은 시력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관심을 가지면 보이는, 마음력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눈이 안 보인다고 지나쳤던 대부분의 것들은 사실 귀찮아서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핑계였다. 우주에서 보면 작은 지구에 살고 있는 점 하나에 불과한 우리가 홀로 살아간다면 지구에 다녀간 흔적조차 남길 수 있을까. 그래서 사람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 같다. 마음을 나누는 다정한 행위들이 남아 이 시대에서 사라져도 대대손손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우리가 지구에서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흔적이 아닐까. 

 요즘 마음으로 세상을 선명하게 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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