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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선 Dec 18. 2020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 요조, 임경선

선을 넘을 듯 말 듯 다정한 침범을 기다려본다.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요조, 임경선作)




요즘 즐겨 듣는 팟캐스트 듣똑라의 한 기자가 추천한 책이다. 듣똑라를 듣게 된 계기가 30대 직장인 여성들의 삶을 재미있고 현실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는 기자들의 이야기가 인상 깊어서. 그들이 그렇게 직장인으로서 최소 5년이 넘는 시간들을 버티게 만들어준 데는 저마다의 버팀목들이 있는데 그게 좀 와 닿았다. 그게 요즘의 나에게는 나와 비슷한 30대를 살아가는 30대 직장인 여성들의 삶이었고, 그들 중 한 명에게는 이 책이었다.


뭔가 인생의 가장 눈부시다고 생각했던 20대가 지나고 30대를 맞이하면 끔찍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불안정한 20대보다 안정과 나의 페이스를 찾은 30대가 너무 좋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앞으로의 30대를 어떻게 하면 내 인생의 전성기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고, 20대 때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방황과 혼란 속에서 이것저것 발을 담갔다면, 꽤나 안정적인 30대의 요즘의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매력을 느끼는지도 정확히 알고, 그걸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는 게  꽤나 아깝다고 해야 하나, 배우고 싶지 않아도 무언가를 계속 배우고 머릿속에 주입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20대 때와는 다르게 지금 나는 내가 스스로 배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도 되는 멍청해지려면 끝도 없이 멍청해질 수 있는 시기를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같은 일상을 조금 더 열심히 사는 누군가로부터 자극을 받고 싶고, 내가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롤모델을 심히 갈망하는 되는 게.


나이가 30이면 이립(而立)이라고, 사전적인 의미는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나이"라 한다. 뭐 도덕적인 것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30대는 중심을 찾고 서게 되는 나이가 아닐까 싶다. 딱히 막 완전히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바람 앞의 촛불 같던 20대 때와는 다른, '나'를 알고 나의 중심을 세울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것들만이 아닌 내 안의 내면적인 것들에 있어서도. 내가 요즘 느끼는 것들을 나와 비슷한 시기를 살아가는 이들과 공감하고 싶었다. 요조도 서문에서 말하지 않는가.

"우리에게는 확실히 타인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보며 우리가 모든 배의 키를 조절한다. 저렇게 살아야지, 혹은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면서 말이다.(p8)"라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꽤나 큰 울림을 주었다. 책을 쉬지 않고 뚝딱 읽어냈고, 덮은 순간 "아, 좋다. 나도 저렇게..."라는 말을 내뱉었던 책.




#. 다정하고 감동적인 침범

책의 구성은 참 특이하다. 30대 요조와 40대 임경선의 우정 이야기. 서로의 생각에 대하여 교환일기를 쓰면서 서로에게 "다정하고 감동적인 침범"을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키워드가 바로 "다정하고 감동적인 침범"이다.


요즘 내가 가장 고민하는 것. 어느 정도 사회생활도 하고, 더 이상 순수하고 아름답게만 세상을 바라보지도 않게 되면서 우리는 상호 간의 '선'을 지키는 것이 몸에 배는 것 같다. 딱히 배우지 않아도 서서히 체득되는 것 같은데  영화 기생충에서도 나오듯이 "선을 넘을 듯 말 듯" 그 아슬한 경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너와 나 사이의 선, 또 누군가와 다른 누군가와의 선이 각자 다르고 누구는 이 선까지, 또 다른 누구는 저 선까지, 그 경계를 미묘하게 정하고 상대가 이 선을 넘지 않기를, 무례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나 또한 상대에게 그 선을 지키기 위해 적당히 가면을 쓰고 적당히 속을 감추고,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친구'라는 이름과 '장난'이라는 이름 아래의 무례함을 극히 경계하면서. 사실은 '친구'니까 어느 정도의 무례함으로 선을 침범할 수 도 있는 건데 말이다.


어렸을 때는 생각이나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였는데 나이 들면서 사회생활의 태도가 몸에 배어서 그런가 어느 순간 친구도 어렵고, 막상 속을 터놓고 말의 필터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존재들이 생각보다 별로 없다. 아니 거의 없다. 그걸 한번 느끼기 시작하니까 더 어렵게 느껴진다. 상호 간의 예의를 지키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이렇게 적당히 감추면서 각박하게 선을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가 싶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선을 지켜야 한다고들 하지만 가까운 사이니까 경계가 때로는 허물어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역설이 오히려 더 당연한 명제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냥 오늘 친구가 입은 옷이 안 어울리거나 화장이 이상하면 "야 오늘 이상해"라고 아무렇지 않게 지적도 해주고, 그런 지적을 받았을 때도 "아 진짜!? 그렇게 이상해?"라고 쿨하게 받아주거나 "네가 더 이상하거든"이라고 깔깔거리거나 하는 이런 막역함이 쉽지 않다.

매일 회사에서 적당히 가면을 쓴 사람들 속에서  "괜찮습니다" 하는 별 관심도 없이, 별 생각도 없이 나오는 말들이 많아서 그런가,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는 나를 많이 느낀다. 직설적이고 솔직한 성격은 사회생활하는데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기 때문에? 굳이 내가 내 의견을 솔직하게 말해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에. 그냥 적당히 맞추고 적당히 칭찬해주고, 적당히 티 안 내고 숨기고.  

조심스러운 내가 힘들다고 느껴질 때 나의 선을 마구 침범하는, 대신 '반드시 다정해야 하는' 침범이 그리울 때가 많다. 진짜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들이 나에게 살찌니까 그만 먹으라고 하는 침범, 진짜 나를 위해서 해주는 친구들의 진심 어린 충고, 진짜 나를 알기에 하는 애정 어리고도 무례한 장난들. 그런 침범들이 참 그립다. 나이 들수록.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와 '오늘 대화가 잘 안되네'라고 느끼면서 집으로 오던 길, 오늘 왜 대화가 매끄럽게 되지 않았는지 곱씹어보면서 왜 내가 이 친구랑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을까를 서글퍼했던 날. 함께한 수많은 시간 동안 항상 대화가 잘 될 수만은 없었을 텐데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요즘에는 내가 그런 걸 인지하고 고민하게 된 거였겠지. 우리가 너무 서로에게 배려를 한다는 게 어쩌면 서로에게 그만큼 거리가 생겼다는 뜻일 수도 있다는 걸 슬프게 느끼면서. 배려한다는 것이 꼭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꼈던 순간들.

요조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친구가 "네가 딱 좋아할 맛이야" 라며 커피집을 데려가서 요조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맛임에도 불구하고 "맛있지, 맛있지! 딱 네가 좋아하는 맛이지?"라고 했던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저를 오랫동안 지켜봐 오고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던지는 이런저런 저에 대한 장담들은 때론 맞고 때론 틀리기도 하지만요. 맞고 틀리고랑 관계없이 매번 저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분명해요. 더군다나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요즘의 인간관계를 생각해보면 더 그래요.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입는 것도 싫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은 조심스러움을 저는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것이 가끔 무미건조하게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잖아요. 특히 스스로 많이 나약하고 고독해졌다고 느껴질 때 '야, 너 바쁜 거 아는데 그래도 나랑 이번 주말에 카레를 먹으러 가야 해. 거기 카레 완전 네 스타일이야' 같은 연락은, 쭈뼛쭈뼛 간만 보다 끝나는 것 같은 세상 속에서 참으로 다정하고 감동적인 침범이에요." (p148)  / 요조. 참 좋은 표현이다. "다정하고 감동적인 침범" 이란 말은.



이에 경선은 이렇게 말한다.

"요새는 몸과 마음을 '사리는' 시대잖아.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너무들 예민해지고 조심스러워하고 쉽게 상처를 받고, 너무 가까워지면 과한 기대를 한 만큼 실망도 클까 봐 지레 겁을 먹고, 내가 마음을 준 만큼 돌려받지 못하면 억울해하고.... 그러다 보니 일종의 인간관계 처세술처럼 적절한 거리를 둬서 나를 지키겠다, 같은 강박이 생기는데 그게 또 역으로 보면 그만큼 개입하진 않겠다, 식의 발뺌처럼 느껴져서 서운하고 외롭기도 하지." (p151~152)

"이쯤 되면 지금 이 시대엔 아무 생각 없이, 언제라도, 아무 말이나 건넬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정겹고 기쁘고 소중한 일인지 몰라! 나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전전긍긍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뜻하지 않게 상대에게 상처를 주었다 해도 상대가 그것에 대해 바로 내가 투정할 수 있고, '나는 저 사람한테는 상처 받아도 돼!'라고 생각할 수 있는 관계, 그런 관계에서 비롯되는 신뢰감은 무척 귀한 거야." (p151)

"서로에게 '언제라도,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말이나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될 것." (p153) / 경선




# 솔직과 가식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분명한 해나 민폐를 끼친 게 아니라면, 세상의 기준이나 타인들이 만들어내는 잡다한 소음에 휘둘릴 필요가 없더라. 또한 완연한 어른이 되어 솔직하기로 작정한다는 건, 그만큼 리스크를 져야 한다는 것과 동의어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 하지만 감당해야 할 그 모든 짐을 감수하고서라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솔직함'은 살아가는 데 장기적으로 '옳은 방법'인 것 같아. 솔직함을 포기하면 당장의 불편함이나 위기는 모면해도 가면 갈수록 근본적인 만족을 못 느끼고 '얕은 위안'으로 '겨우 연명'하거든. 난 그런 거 싫어" (p17~18) / 경선


"우리가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더욱 깊게 느끼는 공허함이라고 하는 이 허무의 실체가 사실은 늙어가는 나와 늙을 수 없는 나 사이의 갭일지도 모르겠다는 것" (p22)

" '현대인은 하루 종일 '리액션'이란 것을 하면서 산다. 리액션은 타인의 욕망에 응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이 행위에 몰두하면 할수록 나 자신의 욕망은 점점 거부되고 잊힐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자는 리액션을 하지 않는 시간을 꼭 확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리액션하지 않는 시간. 타인의 욕망에 응하지 않는 시간. 아마도 언니가 이야기하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 위한 태도'와 같은 말이겠지요." (p23)  / 요조



리액션 부자라는 이야기도 많이 듣고, 솔직하다는 평도 많이 받는 나는 어느 쪽일까.

여태까지 나는 리액션이 일종의 '예의'라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누군가 이야기를 하는 데 열심히 들어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고, 적당히 반응해주는 것이 예의라고. 그렇게 하지 않은 누군가를 보면서 예의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특히나 이 리액션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참 필요한 것이니까. 하지만 과연 그럴까? 꼭 그렇게 예의 차리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 정체되어 있다고 느끼는 요즘

" 저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참 좋아해요. 그리고 그 말이 정말 어려운 말이라는 것도 알아가는 와중이에요. 늘 깨어서 세상을 바로 보고 옳은 편에 서야 하지만, 옳은 편에 서 있으면서도 깨어 있어야 해요. 옳은 편에 섰다고 안심하면서 내가 뭘 잘못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옳은 편이라는 명분에 취해서 옳지 않은 편에 선 사람들보다 더 깜깜한 혐오 속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 나 자신을 의심하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p117 / 요조)


정말 맞는 말이다. 내가 옳다고 지향하는 신념이 항상 정답은 아닌데, 나이 들수록 고집만 세지고 남 말은 잘 안 듣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은 나와 다른 의견과 나와 다른 사람들도 폭넓게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얻는 피곤함보다는 늘 보던 편한 사람들을 더 자주 보면서 위안을 얻고 싶어 한다. (적어도 나는) 늘 보던 편한 사람들은 주로 오래 봐왔던 친구들이고, 세월 속에 다져지고 정제되면서 어떻게 보면 떨어져 나갈 사람들은 떨어져 나간 세월의 검열을 거친 사람들인데, 그 안에 계속 있다 보면 당연히 심적으로는 충만함을 느낄지라도 자꾸만 생각이 굳는달까. 공통분모가 완전히 다른 사람을 점점 수용할 수 없게 될 수도.


근데 경선은 또 이렇게 말하기도. " 젊었을 때는 상대가 내 기준에 미달하면, 내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하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하며 부들부들 떨지만 나이가 들어 다양한 경험을 거치면서 자기 자신의 불완전함을 깨닫게 되니, 상대에 대해서도 조금 관대하고 너그러워질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 나이 들면 확실히 열정이 넘치거나 푹 빠지는 일은 줄어들지도 모르지만, 그 대신 상대의 선하고 아름다운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이나 상대의 결핍을 이해하는 능력은 깊어지니까. 아니 정확히는 깊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p181 / 경선)


정확히는 상대의 선하고 아름다운 지점을 발견하고, 상대의 결핍을 이해하는 능력이 깊어져야 한다. 결국 열려 있는 태도를 의미하겠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 것, 내가 믿는 나만의 완전한 기준에서 벗어나서 관대하고 너그러워진다는 것. 나이 들수록 왜 이렇게 어렵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었기에 더더욱 반드시 필요한 삶과 타인에 대한 태도랄까. 알면서도, 지향하면서도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 인생의 어떤 한 시기와 작별

일단 나의 요즘 심경을 어떻게 정리할 수가 없었는데 딱 이 말이 정리해주는 기분이 들었달까. 와 어떻게 이런 표현이 나올 수 있지 싶었던. '어떤 한 시기와의 작별'이라...

"인생의 한 시기가 끝나고 문이 닫혀버리면, 내 앞에 다른 문이 또 새로 열리게 될 거라는 사실을 우린 오랜 경험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이런 진실의 말들이 먹먹하게 들릴 때가 있다." (p156 / 경선)


나는 지금 인생의 어떤 한 시기와 작별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것도 매우 큰 작별이랄까. 생각해보면 언제든지 다시 돌아가서 그 하루를 살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완전하게는 아니다. 결혼한 지 꽤 시간이 흘렀고 적응도 완벽히 다 했지만 가끔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사무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젯밤에도 생각했다. 엄마가 갑자기 아파서 내 이름을 부르던 날의 밤을 떠올렸다. 갑자기 무서웠다. 우리 엄마가 밤에 아픈데 아빠가 없는 밤이면 엄마는 우리의 이름을 부르지도 못하는데 나는 당장 달려가더라도 3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에 있고, 엄마가 아팠는지도 모르는 날의 밤이 많아지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 결혼하기 전 미혼으로 엄마 아빠와 함께 살던 시기와 나는 작별했다.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까지는 아직 아닌 것 같지만 동생집에 손님으로 가면서, 동생이 나한테 아무것도 못 치우게 하는 것을 보면서 느낀다. 우리는 이 시기와 작별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슬프지만 사람은 어느 한 시기에만 오래 머무를 수는 없는 법이라는 것도.



#. 나의 30대

꽤나 안정적인 시기를 살고 있는 나의 30대. 남은 30대를 어떻게 하면 더 잘 보낼 수 있을지를 많이 고민하는 요즘.


"노력하는 사람이 왜 멋진 줄 아니? 다른 멋진 사람을 보고 '멋지다'라고 순수하게 감탄하고 인정할 수 있어서 그래. '나도 저렇게 멋지고 싶다.' 하고 기분 좋게 동기부여를 받아 자신의 에너지를 무의식 중에 끌어올리는 힘이 있어. 본인이 노력하면서 살고 있으니까 이런 반응이 가능한 거야. (중략) 하지만 30대 중반 이후쯤 되어서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다른 사람을 두고 '저 사람은 참 운이 좋네'라고 쉽게 단정 짓는 것은 너무 게으른 기만이야. 그 어떤 조건과 배경을 가진다 해도, 한 사람의 인생에서 삼십몇 간을 아무런 부침 없이 사는 건 불가능한 일이거든." (p272~273 ) / 경선


" 40대가 되어 자신의 핵심 가치를 추리면 그것을 단단한 베이스로 두고 새로운 가능성과 변화를 모색해볼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돼. 사소하게는 평소 안 가본 장소에도 가보고, 안 입어본 색깔의 옷도 입어보고... 물론 사람이 단번에 변화를 수용하긴 힘들 수도 있겠고 억지로 할 필요까진 없지만, 새로운 시행착오에 도전해 볼 수 있는 시기도 40대라고 생각해. (중략) '담금질'을 통해 언제까지나 자기 자신을 놓아버리지 않겠다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기분을 소중히 한결같이 유지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 " (p 208-209) / 경선



임경선이 40대에 느끼는 것들은 왜 나는 지금 느끼고 있는가. 요즘의 나는 시간이 넘쳐서 그런지 새로운 것을 자꾸만 지향하는데 근데 생각해보니 나는 원래 좀 그런 사람이었지. 하고 있는 것에 금방 싫증을 내버리고 바로 다른 새로운 것을 찾고. 또 금방 흥미가 떨어지고. 아무튼 그런 과정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까 내가 금방 싫증을 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좋아하는 무언가를 몇 가지 찾은 것이 있고, 이제 그것이 어떤 건지 확실히 알게 된 요즘.


그것이 나의 베이스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핵심 가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앞으로 나는 이 베이스 위에 다른 것을 찾아 나가겠지. 하는 생각.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생각과 감상을 나누고 싶어 하는 내가 뭔가 스스로 젠체하는 것인가도 싶었는데 어느 순간 나는 책 노트를 만드는 나 자신을 발견했고, 손이 아파서 이 공간을 파게 되었다. 그리고 책을 읽고 뭔가 적지 않으면 찝찝하고 좋은 글귀를 만나면 얼른 접어두고 밑줄 치고 빨리 필사하고 싶어 하는 나를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깨닫는다. 아, 나는 이것을 좋아하는구나! 이 짓을 가끔씩이라도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을 보니 나는 이걸 계속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언젠간 글을 쓰고 싶다는 다짐도 여기서 비롯된 거겠지.


인스턴트 음식을 찾지 않는 식습관은 건강식에 대한 관심으로 나를 이끈다. 초록 초록한 채소들을 씻을 때의 행복과 밥상을 건강하게 차릴 때의 뿌듯함이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한다. 내가 이런 걸 좋아하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점점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을 찾아 하게 되고, 귀찮아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면서 이게 연관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명상하고 호흡하고 생각을 정리해주는 차분한 운동과 그런 취미들이 좋고.

예전에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새로운 성향들. 내가 바뀐 건지 원래 그랬는데 발견을 늦게 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지금의 나는 이런 것들을 기반으로 두고 있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그런 걸 깨달은 요즘의 내가 좋은 것일 수도.



요즘의 나를 참 많이 대변하고 있는 책. 왜 요즘 이렇게 좋은 책을 못 만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 시점에 딱 찾아왔다. 오랜만에 좋은 책. 잔잔하게 일렁일렁거리게 하는 따뜻한 책이었다. 요조의 톡톡 튀는 문체와 필력이, 임경선의 단단한 글과 내공이 굉장히 조화로웠다.

어느 날에 다시 꺼내서 한 페이지를 읽어 내려가고 싶게 만드는 책이랄까.

추천하고 싶다. 이 다정하고 감동적인 침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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