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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Nov 10. 2024

남도 기행(3) 달마산과 달마고도

@수행 고행 해탈의 길


남도 기행의 두 번째 목적지는 달마산(達摩山)과 달마고도(達摩古道)다. 친구들의 성화에 이른 아침 일어나서 땅끝마을 해변에서 다도해 위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했다. 남해와 서해를 가르는 기점인 땅끝 탑 서편 송호해변에 자리한 B 기사식당에서 아침밥을 들었다. 백반에 전복 간장게장 조개젓갈 등반찬 딸려 나오는 남도 밥상의 면모가 남다르다.  


달마산은 해남군 송지면과 북평면의 경계를 이루며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송지면 해원 저수지를 휘돌아 미황사(美黃寺)로 드는 길, 어느새 태양은 능선 위로 떠올랐고, 산록에 자욱이 낀 안개는 산비탈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땅끝마을 일출


주차장에 도착하여 배낭을 챙겨 들고 탐방을 시작한다. 달마고도는 1300년 고찰 미황사의 옛 12개 암자를 잇는 순례 코스로, 중국 선종을 창시한 달마대사의 법신이 상주한다는 믿음으로 선인들이 걷던 옛길을 복원한 산길이라고 한다. 달마산 미황사에서 출발하여 큰바람재, 노지랑골, 몰고리재 등을 지나며 달마산 자락을 한 바퀴 도는 17.74km 탐방 소요 시간은 예닐곱 시간이라 한다.  

 

<달마고도 코스별 개요>

제1코스 출가길 (2.71km) 미황사~큰바람재

제2코스 수행길 (4.37km) 큰바람재~노지랑골

제3코스 고행길 (5.63km) 노지랑골~몰고리재

제4코스 해탈길 (5.03km) 몰고리재~너덜~ 미황사


우리 일행은 달마고도 2~4구간과 달마봉, 관음봉, 도솔암 등 달마산 주 능선을 거치는 콜라보 코스를 구상했다. 미황사의 일주문에서 여덟 시 반경 산행을 시작한다. 미황사는 해남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489m) 서쪽 기슭에 자리하는데, 신라 경덕왕 때인 749년에 의조 화상이 창건한 사찰이다.  

 

일주문에 걸린 ‘달마산 미황사라(達摩山美黃寺)’라는 독특한 한자의 현판은 전북 부안 출신으로 화가이기도 한 박방영(朴芳永, 1957~) 교수가 쓴 글이라고 한다. 그림이나 글씨 속에 사람과 꽃 등을 함께 그려 넣는 상형산수화 개척자가 쓴 글씨답다는 생각이 든다. 일주문에서 천왕문으로 오르는 길은 세상 고뇌를 다 벗어던지고 들어오라는 듯, 계곡의 물소리와 함께 108 계단이 인도한다. 미황사는 겨울을 앞두고 여러 당우의 보수공사와 개축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천왕전 우측에는 새 당우 건축이 진행 중인데, 목공이 지붕 위에서 내림마루 골조를 자귀로 쪼아 다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천왕문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달마산 자락으로 접어들었다. 우리 일행은 예정대로 큰바람재로 난 달마고도 제1코스 대신에 달마봉으로 방향을 잡았다. 자연석으로 반듯하게 놓은 돌계단 길에 이어 너덜 바위 지대의 가파른 비탈길이 나타난다. 미황사에서 달마봉까지는 1km 남짓 짧은 거리이지만, 해발 180여 m에서 해발 489m까지 고도를 300여 m 높여가는 만만찮은 산길이다. 한 손으로 스틱을 짚으며 다른 손으로는 앞사람이 밟고 지나간 바윗돌을 짚으며 산정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달마봉에서 바다 쪽 조망


땀이 몸에  배고 이마에 맺힐 즈음 해발 489미터 달마봉 능선에 올라섰다. 허리가 끊겨 두 동강이 난 것을 포개어 세워놓은 달마봉 표지석이 비스듬히 서서 산객을 맞이한다. 표지석 지척 북쪽에 제단처럼 돌로 높이 쌓아 올린 터에 원추형 돌탑이 자리하는 곳이 달마산 최고 지점이다. 그곳에 ‘남도의 금강산’ 달마산과 다도해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자리한다. 짧은 시간에 달마봉 정상에 올라서서, 아침 태양에 황금빛으로 물든 해면, 바다 위 양식장의 특이한 모습, 크고 작은 섬들이 흩어져 있는 다도해 등 황홀한 전경을 조망하는 기분이 남다르다.  

 

달마산 주 능선을 따라 북쪽의 관음봉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산죽 숲 사이에 자리를 튼 키 작은 나무들은 옹골찬 줄기와 가지를 세찬 해풍에 꼿꼿하게 드러내 놓고 있다. 남해와 서해를 아울러 조망하면서, 공룡의 등처럼 날카로운 바위투성이 능선을 따라 거대한 암봉 관음봉을 지난다. 안부를 지나며 뒤돌아본 관음봉은 미황사 쪽 산기슭으로 금방이라도 쏟아 내릴 듯 수많은 암봉을 위태롭게 곧추세우고 있다. 그 모습은 마치 수천수만 불상인 듯, 미륵을 기다리며 깨달음을 얻으려는 수억의 인간 군상을 보는 듯도 하다.

 

달마고도 제3구간 ‘고행의 길’도 크고 작은 바윗돌이 예리한 모서리를 드러낸 바위설 능선 길보다는 낫지 않을까 짐작된다. 마지막 암봉은 수정골 사거리 쪽으로 급경사의 너덜 바위 길을 100여 미터 내놓는다. 너덜 길이 끝나고, 산죽이 숲을 이룬 폭신한 흙길이 미황사에서 2.6km 지점인 달마고도 제1구간의 끝 지점인 수정골 사거리로 인도한다.

 

달마고도 코스 서변 산록으로 돌아드니 산새들이 돌림노래 부르듯 유쾌한 목소리로 맞아준다. 오전 11시경 관음암 터 삼거리를 지나며, 달마고도 인증 스탬프 첫 도장을 사이버 저장소에 꾹 눌러 찍었다. 스마트기기 활용에 능한 M의 도움으로 일행 모두 무사히 인증에 성공하고, 달마고도 제2구간으로 접어든다.  


 

참나무 낙엽이 깔린 평탄한 길에 밀려들고 밀려나는 파도 소리처럼 해풍에 나뭇잎이 흔들리며 수런거린다. 수행의 길이 이처럼 평온하고 호젓하기만 하다면 깨달음과 해탈의 길도 괴롭고 아픈 길만은 아니지 싶다.  둘레길은 2~3번째 인증 지점인 문수암터와 미라골잔등을 거며, 달마산 능선에서 거친 파도처럼 쏟아져 내린 너덜바위 지대를 두세 번 지난다. 세 번째 인증 지점인 노지랑골을 지나며 달마고도 세 번째 구간인 ‘고행의 길’로 들어섰다. 각자 바윗돌에 걸터앉아서 빵과 감 등으로 허기를 달래고 걸음을 이어간다. 힘든 길을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려는 듯 선두의 발걸음은 빠르기 그지없다. 해발 250여 미터 5부 능선을 따라 난 달마고도는 만곡부와 잔 줄기를 휘돌고 넘으며 이어진다. 발아래서 때론 낙엽이 사각대고 때론 자갈이 서걱 거린다.


네 번째 인증장소인 도시랑골을 지나고, H의 제의로 달마고도를 벗어나 능선 위에 자리한 도솔암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B는 도솔암으로 오르는 가파른 비탈길을 ‘고행의 길’ 보다 더한 ‘지옥의 길’이라 푸념한다. 올라선 능선 너머 우측 암봉 뒤에 도솔암이 은자(隱者)처럼 보일 듯 말 듯 자리하고 있다. 좌측에는 타오르는 불꽃 형상의 거대한 바위가 병풍처럼 호기롭게 펼쳐져 있다. 천 길 낭떠러지 가장자리에 가슴 높이로 쌓아 올린 도솔암의 돌담장 아래를 굽어보니 아찔해지고,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은 마음속 한 톨 티끌까지 말끔하게 날려버릴 태세다. 미륵보살과 천인들이 머무는 천상의 정토 도솔천(兜率天)에 오른 느낌이 이런 것일까. 오늘 탐방의 백미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땅끝 고을의 ‘하늘 끝 암자’ 도솔암을 뒤로하고, 달마고도 3구간으로 다시 방향을 잡았다.


도솔암에서의 조망
달마고도 제4구간 '해탈길'
미황사 기왓장 그름, 당우,  편액
미황사 달마상과 법종각
미황사의 신축 중인 당우
장흥 관산읍 소읍천을 지나며

도솔암 주차장을 거쳐 포장도로와 숲길을 차례로 지나 달마고도로 내려서니, 달마고도의 최남단인 몰고리재 인증지점이 나타난다. 능선 위 도솔암과는 달리 내려선 달마고도는 폭풍이 지나간 잔잔한 바다처럼 바람소리도 하나 없이 고요하고 발자국 소리만 다닥다닥 들린다. ‘해탈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너덜’에서 마지막 인증 스탬프를 챙기고, 솔봉과 귀래봉 사이 능선 아래로 수 백 미터 쏟아져 내린 바위 너덜을 건너고, 숨길도 지난다. 각종 나무들이 종류별로 숲으로 조성된 아늑한 길에 바람만이 쉬지 않고 숲을 흔들어 대고, 나무는 해탈한 듯 번뇌처럼 무성한 잎을 바닥에 떨궈 놓았다. 굴참나무 붉가시나무 졸참나무 서어나무 광나무 사람주나무 편백 등 각종 나무들은 줄기에 명패를 하나씩 달고 사이좋게 어울려 섰다.


달마고도 마지막 네 번째 구간은 미황사 측면 뒤편으로 내려며 끝을 맺는다. 미황사 당우 곳곳은 ‘묵언 수행 중’이라는 푯말을 내걸고 고요에 잠겨 있다. 종무소를 지키고 있던 젊은 보살님이 국보로 지정된 응진전을 보고 가라고 귀띔해 준다. 이광사가 완성한 동국진체를 계승하여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신동국진체의 대가 학정 이돈흥(鶴亭 李敦興, 1947-2020) 선생이 쓴 자하루(紫霞樓)와 만세루(萬歲樓) 현판 글씨는 고졸한 해학미가 엿보인다.


주인 없이 버려진 채 100년이 흐른 1989년 즈음, 지운, 현공, 금강 세 스님이 미황사에 들어 퇴락한 법당을 일으켜 세우고, 흔적만 남아 있던 여러 당우를 하나씩 복원하여 ‘땅끝 마을의 아름다운 절’로 소문이 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침 탐방을 시작할 때, 목공이 내림마루 골조 다듬기를 하던 신축 중인 당우의 지붕 위에는 기왓장이 수북이 올려져 있다. 저렇듯 역사는 하루하루의 지극한 정성과 공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미황사를 뒤로하고 장흥 관산읍에 도착할 즈음 어둠 온전히 사방에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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