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서 시설붕괴, 대규모 정전, 다중추돌, 도로 통제, 열차 지연에 따른 출근길 대란 등 폭설로 인한 피해와 그 여파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다. 경기도에서는 이틀간 '눈 폭탄'에 따른 사고로 5명이 사망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방한복과 장갑으로 무장을 하고 산책 삼아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눈이 그쳤지만, 기온은 0도 부근에 머물고 있어 공기가 냉랭하다. 도로에는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얼어붙거나 질퍽거려 통행에 많은 불편을 주고 있다.
탄천운동장 앞을 지나 탄천으로 내려서서 여수대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탄천 한가운데에서 백로 한 마리가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다. 산책로와는 달리 너른 둔치는 내린 눈이 녹지 않아 햇빛을 반사하여 눈이 부시다.
분당수서고속화도로 여수육교 아래 긴 터널에서 노숙자 한 분이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늦은 기침을 하고 있다. 서울역 지하차도에서 보던 노숙자의 모습을 이런 곳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연이어 나타나는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여수 2교 부근 길가에는 버스 여러 대가 주차해 있다. 그중 어떤 버스의 짐칸을 바람막이 삼아 그 속에 쭈그리고 앉아 버너와 코펠로 라면을 끓여 먹고 있다.
모란 민속오일장 장터 너머 멀리 흰 눈을 이고 있는 청량산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마침 장날을 맞은 모란장은 사람들로 북적일 것이다.
시청 청사 옆 스위트한 팝송 음악이 흐르는 시청공원의 화장실은 깨끗하고 포근하다. 유리창 벽면이 인상적인 번듯한 시청 건물 앞을 가로지른다. 성남시청은 연면적 7만 4천452㎡에 지하 2층, 지상 9층 건물로 건축비 1천610억 원 포함 총 3천2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컨벤션 센터 같은 확 트인 로비, 3층까지 오가는 에스컬레이터, 수입 화강석과 대리석으로 덮인 바닥과 벽, 의원 개인 사무실을 갖춘 청사는 2009년 이맘때쯤 개청 당시 지나치게 호화스럽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청사 앞마당 한편에는 맨손 맨발의 '평화의 소녀상'이 쌓인 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꼿꼿하게 바른 자세로 앉아 계절과 역사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다. 왕복 10차선 성남대로 위에 걸린 시청육교를 건너 여수동 여수울 공원 쪽으로 향했다.
인적이 드문 여수울공원에는 눈 폭탄을 맞아 가지가 부러진 노송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여수초교에 접한 길옆에 '여수동 유래비'가 마을의 내력을 얘기해 주고 있다.
"여수동(麗水洞)은 조선 초 1392년에 돌마면 가차곡(加次谷) 갓골 율리(栗里)로 불렸다. 이 고장은 물 맑은 여수천 동경(東境) 내 양편에 방수림이 있었는데, 맑고 고운 물과 어우러져 이를 여수울(麗水鬱)이라고 부른 데서 이름이 지어진 마을이다.
조선시대의 지명은 광주부(廣州府) 돌마면(突馬面) 여수골이었고, 1914년에 돌마면 여수리로 변경되었다. 1975년에는 성남시 돌마출장소 관할, 1989년에는 중원구에 편입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2006년 여수동 택지개발 때 여수동 일대에서 삼국시대의 유적이 발굴되어,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의 선조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곳임을 알 수 있다. 2009년 11월 여수동 200번지에 성남시청 새 청사와 150번지 일대에 신도시가 조성됨으로써 마을 전체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망덕산에서 길게 뻗어 내린 산줄기 가장자리에 조성된 여수울공원과 여수동공원을 거쳐 여수천(麗水川) 천변 산책로로 내려섰다. 천변의 버드나무 여러 그루도 습설(濕雪)에 폭탄을 맞은 듯 가지가 작살이 나 있다.
여수천이 탄천으로 안겨드는 곳 둔치에 누군가 눈사람 하나를 만들어 세워 놓았다. 모레면 갑진년 한 해도 마지막 달로 접어든다. 바야흐로 가을인가 싶던 계절은 뭐가 그리 급한지 시나브로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