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로의 출국 당일 새벽같이 일어나서 서현 공항버스 정거장에서 05:50 발 리무진을 타고, 약 한 시간 만에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항공편 출발 1시간 전에 도착한 것인데, 이른 시간대의 리무진 버스표가 동났기 때문에 그나마 겨우 예약할 수가 있었던 터였다. 국제선 비행기를 탈 때는 적어도 이륙시간 2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하면 시간에 쫓기며 마음을 졸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온 공항의 출국장은 수많은 인파로 붐비고 있다. 온라인으로 사전 좌석 배정과 온라인 티켓팅을 했지만, 보안 검색대를 거쳐 무인 자동 출국심사대를 통과하기까지 40여 분이 소요되었다. 탑승구를 향해서 달리듯 발걸음을 재촉하여 승객 중 거의 마지막으로 항공기에 탑승하여 좌석에 앉으며 한숨을 돌렸다.
이른 아침 출발이라 비행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실제 비행시간 한 시간 반 남짓 만에 상하이 푸동공항에 착륙했다.도심에서 약 30km 떨어진 상하이 푸둥 국제공항(Shanghai Pudong International Airport)은 중국 3대 복합거점 공항 중 하나로 1999년 9월 16일 개장했다. 2023년 말 현재 T1 터미널 34.6만 m², T2 터미널 48.6만 m², 탑승대 331개를 갖춘 푸동공항은 연간 여객 8천만 명, 화물 570만 톤, 항공기 653만 대의 처리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호되게 겪은 탓인지 무인기를 이용한 자동 지문 등록, 핵산 검사를 위한 구강 가검물 채취, 입국심사, 캐리인 화물 엑스레이 검색 등 세관 통과 등 푸동공항 CIQ 절차는 치밀하고 엄정했다. 10시가 넘어서 공항 입국장을 빠져나왔다.
푸동공항에서의 구강 가검물 채취
자동 지문 채취 증표
상하이 전철 노선도
상하이 난징동루 전철역 플랫폼
상하이의 전철 노선은 18개의 시내 노선과 세 개의 교외선 등 사통팔달 거미줄처럼 촘촘히 깔려 있다. 탑승은 일회용 티켓, 충전카드, 알리페이나 전용 앱 등을 이용해서 자동 개찰구로 들어가고, 하차하는 역에서 지불하는 방식이다.
예전에 사용하던 공공교통 카드 몇 장을 한국에서 챙겨 갔는데, 한 장만 잔액이 남아 있어 자동 발매기에서 일회용 티켓을 한 장 뽑았다. 푸동공항에서 출발하는 전철 2호선은 상하이 시내를 동서로 가로질러 홍차오 공항과 홍차오 기차역까지 연결한다.
소위 '소강(小康; 샤오캉)' 사회와 시진핑의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거쳐, 궁극적으로 공산 사회를 지향하는 중국은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 요금이나 공공요금 등 '인민'의 기초생활과 직결되는 비용이 저렴한 편이다. 지하철 요금은 시내 구간의 경우 3~4위안인데, 푸동공항 역에서 한 시간여 만에 도착한 난징동루 역까지는 7위안이다.
난징동루(남경동로; 南京東路) 역 출구가 있는 빌딩 1층에 자리 잡은 삼성 휴대전화 매장은 예전처럼 너른 보행가를 사이에 두고 애플 매장과 마주 보고 있다. 전철역에서 150여 미터 남짓 거리의 호텔에 도착한 후, 프런트 직원에게 여권을 제시하여 예약확인 등 체크인 절차를 마치고 키를 건네받았다. 단출한 짐이라 정리할 것도 없고 점심때가 된 터라 호텔을 나와서 근처 식당에서 훈툰(馄饨)으로 간단히 점심을 들었다.
*훈툰(馄饨)은 고기나 야채 속을 얇은 밀가루 반죽으로 싸서 국물에 끓여 나오는 음식이다.
지하철 2호선에서 1호선을 갈아타며 상하이 마시청(马戏城; 서커스)에 도착했다. 도착 당일 시간을 허투루 허비하지 않으려고, 출국 전 한국에서 상하이 현지 한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S 여행사를 통해서 14:00에 시작하는 서커스 공연 티켓을 예매해 두었던 터였다.
자료에 따르면, 1999년에 완공된 상하이 마시청(马戏城)은 총면적 2.25헥타르로 금빛 찬란한 돔형 지붕을 가진 곡예장, 리허설 보조 건물, 동물 방, 문화 상업 구역, 기타 지원 시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1,638개 객석의 곡예장은 첨단 조명과 다채널 다중 음향 시설, 회전 무대, 복합 승강 무대, 액자형 무대, 곤돌라, 공중곡예 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1951년경 창설된 상하이 서커스단(上海杂技团)은 1980년 미국 뉴욕 등 6개 도시에서 중국 최초의 상업 공연을 한 이래, 다양한 장르의 서커스 예술을 선보여 왔다. 2005년 상하이동방미디어그룹, 중국대외문화그룹, 상해서커스단/서커스 시티 등 3개 사 공동출자로 '상하이 시공간 여행 문화발전유한공사'로 새로이 발족한 상하이 서커스는 '시공간 여행(时空之旅)' 제하의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상하이 서커스 공연장
상하이 서커스 e-입장권
싸늘한 바깥과는 달리 공연장 안 공기는 조금 덥게 느껴졌다. 공연 시간이 다가오자, 텅 비었던 객석은 무대 정면과 마주한 VIP 좌석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채워졌다. 공연은 공중에 매여 길게 널어뜨려진 천을 이용한 묘기, 막대를 이용한 공중제비 묘기, 구형 철망 안에서 펼치는 오토바이 타는 묘기, 공중그네에 매달려 비둘기들과 펼치는 묘기, 막간의 짧은 용춤 공연, 남녀 한 쌍이 펼치는 공중그네 묘기, 널뛰기를 이용한 공중제비 묘기, 자전거와 굴렁쇠 묘기 등 중간의 15분 휴식 시간을 전후하여 약 90분간 이어졌다.
남녀 공연자들의 섬세하고 절제된 몸동작 하나하나는 치밀한 타이밍이 반영되어 있다. 공중 줄타기와 공중그네 묘기, 널뛰기와 탑 쌓기 기계체조를 접목한 묘기의 멈추고 띄고 동료를 떠받치는 동작 등에는 강인한 체력과 과감한 결단력이 읽힌다. 자그마한 여성이 비둘기 떼와 함께 펼치는 공중그네 공연자의 묘기는 대담하면서도 섬세하고 미려하다.
직경 10여 미터 좁은 구형 철망 안에서 예닐곱 명의 바이커가 엉겨서 모터사이클을 질주하는 묘기는 아찔하기 그지없다. 단호한 결기가 느껴지는 모든 묘기에는 오랜 시간 힘든 연습을 이겨낸 피땀 어린 고통이 어려있을 것이다. 무대 뒤에서 조명, 음향, 공연 장비 등을 치밀하게 작동하고 조절하는 기술자는 공연의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다.
모든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함께 무대로 나와서 관객들에게 손을 흔드는 30여 명 공연자들의 얼굴에서 안도와 만족의 표정이 읽힌다. 상하이에서의 특별한 추억을 선사한 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과년한 자녀들의 신상 명세서를 널어 놓은 모습
상하이 인민광장 전철역 지하도
마시청을 뒤로하고, 전철로 인민광장 역으로 이동하여 인민공원을 가로지르고, 푸저우로(福州路)를 따라 황푸강변 와이탄(外滩)까지 걸었다. 일요일 오후의 인민공원, 정작 주인공은 없이 부모끼리 노총각 노처녀 자녀들의 상대를 찾는 '샹친지아오(相親角)' 거리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예전의 모습과 달리 발 디딜 틈이 없이 인산인해다.
와이탄은 다른 날 둘러보기로 하고, 난징동루 보행자 거리에서 갈라진 곁가지 좁은 골목의 식당에서 쌀밥에 가지볶음, 돼지고기 고추볶음, 청경채 볶음을 반찬으로 맥주를 반주 삼아 저녁을 들었다. K는 어제 인천공항의 캡슐에서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저녁 일찍이 호텔로 돌아와서 상하이 방문 첫날의 일정을 마감했다.
호텔 창밖으로 황금빛 나뭇잎으로 성장을 차려입은 은행나무 고목과 높은 십자가 첨탑을 드러낸 성삼위일체 기독교당, 그 뒤로 화려한 조명을 밝힌 고층 빌딩이 얼굴을 들이밀며, '상하이 환잉 닌(上海欢迎您)'이라며 굿 나이트 인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