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는, 신사 양반,
이미 삶이 아니라 죽음의 시작인 셈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
도스토예프스키는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통해 러시아에 침투하기 시작한 서구 계몽 사상가들의 계몽주의 사고와 유토피아 주의를 비판한다. 지하생활자는 사회를 '합리적으로' 재구성하려는 계몽주의의 강요된 행복 대신 지하 독방에서의 주체적이며 고독한 삶을 선택한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과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기 파괴적인 길을 가기도 한다. 진정한 자유는 불안감과 내부의 분열로부터 성장한다는 것이다.
나의 거처는 곧 나의 은신처이며
나의 껍질이며 나의 상자여서, 나는 그 속에서
온 인류를 피해 숨어 살고 있었던 것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
페테르부르크는 가장 추상적이고 계획된 도시로서 비극의 무대다. 지하생활자는 그 비극적 풍경의 희생자로서 자신을 냉혹한 어둠 안에 가두고 있다. 백야와 미궁의 혐오로 가득 찬 이 도시는 고통으로 인간을 압도하며, 인간을 모욕하고, 인간의 이상을 왜곡시킨다.
지하실은 움츠러들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의식의 내면세계다. 이곳에는 세계에 대한 인식이나 명백한 자기 이해가 없다. 단지 과장과 합리화와 환상이 있을 뿐이다. 지하실은 한 인간 안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내면적 삶이다. 지하실은 이성과 논리의 감옥이며 ‘정상적인’ 인간 세계로부터의 도피처다. 즉 고독과 인간 소외와 반항의 상징이다. 지하생활자는 ‘합리적’ 휴머니즘에 도전하는 ‘비합리적’ 고독을 원동력으로 살아간다.
인공 낙원 대신 진실의 사막을 걷겠다.
- 슬라보예 지젝 외,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발터 카우트만은 이 작품을 ‘실존주의를 위한 최고의 서곡’이라 찬사했다. 실존주의자들은 존재에 어떤 내재적인 목적이나 잠재된 의도가 없다고 본다. 세계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안과 더불어 그것이 함축하는 자유와 책임이 있을 뿐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실존의 진실은 우리의 환상을 파괴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우리의 정체이자 본질이며,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 삶의 본질을 직시하며 진실의 사막을 걸을 것인지, 계속 인공 낙원에서 달콤한 꿈을 꿀 것인지 실존적 선택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