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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성 Apr 04. 2023

마음 놓고 쉴 권리

사람 사는 냄새

머릿속이 복잡하고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 문득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가장 가기 쉬운 곳은 집 밖에 없다. 내가 잘 알고 10여 년을 살아왔던 곳. 내 마음이 가장 편안한 곳으로 가기로 한다.


본가로 향하는 발걸음은 늘 가볍다. 모든 마음의 짐을 서울에 내려두고 왔으니까. 당분간 본가에 있는 동안은 아무것도 생각 안 하기로 한다.


[나와의 약속]

1. 일에 대한 고민하지 않기

2. 계획 세우지 않기. 즉흥적으로 행동하기.

3. 하고 싶은 대로 하기. 먹고 자고 싸고 마음껏 먹고 마음껏 자기! 본능에 충실하자.



이 세 가지를 다짐하고 본가에 간다. 도착하자마자 냉장고를 열었다. 두부조림을 발견하고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두부를 들기름에 부쳐서 우리 엄마방식으로 한 빨갛게 한 두부조림. 아 진짜 이건 밥도둑이다. 그렇게 도착하자마자 밥을 한 그릇 뚝딱. 냉장고에 파인애플도 있다. 자취하면서 가장 구경하기 힘든 게 과일인데. 열심히 잘라서 맛있게 먹었다. 냉장고에 오렌지, 사과, 포도, 배 정말 없는 과일이 없다. 풍족한 냉장고를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구나.




고향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익숙한 우리 동네의 어느 카페에서 중학교 동창 친구 둘과 만나 수다를 떨었다.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건 함께 나눌 추억이 있다는 것. 옛날 철없던 얘기부터 지금 사람 사는 얘기까지 재밌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냥 사소한 것 하나에도 빵 터지고 웃고 이것만으로도 정말 행복이다. 나보고 예전이랑 똑같다는 친구.


사람은 안 변해 늘 똑같지. 너네도 항상 한결같아. 그래서 좋아하잖아 내가. 늘 한결같아서. 한결같은 사람이 좋다. 늘 그 자리에 머물러주고 내 옆에 있어주는 친구들. 그래서 항상 고마워.



내 방이 없어지고 나서 본가에 올 때마다 언니방에서 같이 잠을 잔다. 생각해 보니까 진짜 어렸을 적 유치원 때 이후로 같이 방을 쓴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같이 자니 새삼 기분이 이상하다. 어색한 것도 아니고 그냥 뭔가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랄까. 안 그래도 본가 오면 항상 동심이 된 기분인데 더더욱 그렇다.


매일 혼자 자다가 옆에 누군가 있다는 거 참 이상하고 알게 모르게 마음이 편안하다. 피곤한 날에도 쉽게 잠에 못 드느편일정도로 잠에 진짜 예민한데 이 날은 정말 편안하게 잠들었다. 본집이 주는 편안함, 내 옆에 언니, 따뜻한 이불. 역시 본가는 따뜻해. 맞아 이게 그리웠었어. 사람사는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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