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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냥 Aug 27. 2020

칭찬이 나를 피해갈 때

비교가 숙명인 쌍둥이의 이야기

만 6개월, 환이가 일어섰다. 엄마 배를 타 넘는 걸로 아침을 시작하더니 결국 일어서버렸다. 엄마 배 뿐만 아니라 원이도 타 넘으며 연습했다. "으앙~" 원이의 울음소리가 나서 가보면 10번중 6번은 환이가 올라타있더니 일어서고 싶어서 그랬나보다.


여보 환이가 일어섰어!


카메라 어딨지 카메라? 기특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셔터를 누른다. 맨날 누워있던 아이가 일어섰다니! 육아서에서 6개월에 일어섰다면 엄청 빠른거라 그랬는데 어쩜 저렇게 벌써 일어났을까, 너무 빨리 서서 관절에 무리가 가면 어떡하지, 아니야 우리 환이는 다리가 튼튼해서 괜찮을거야 등등 분주한 생각을 하며 비슷한 사진을 수십장 찍는다. 초보 부모에게 아이의 성장을 눈으로 본다는 건 난생 처음 겪는 일이니까.


쌍둥이 중 한명인 원이는 배밀이로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꼬물꼬물 배로 밀며 방안을 기억다니는 아이의 궁댕이가 참 귀엽지만, 환이의 첫 배밀이와 엄마 아빠 반응은 다르다. 환이가 처음 배밀이를 했을 땐 너무 신기해서 이거보라며 남편을 부르고 동영상을 찍었는데, 원이의 배밀이에는 환이만큼의 호들갑은 없다. 조용히 사진찍고 응원의 미소만 보낼 뿐. 느린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다만 초보 엄마아빠의 경험치 때문에 먼저한 만큼의 주목을 못받는게 안쓰러울 뿐이었다. 한 살 아이는 아무 생각 없었겠지만.



두 아이의 비교는 날 때부터 숙명적이었고, 아이가 다섯살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원이를 안아주고 나면 환이가 "엄마, 나도 똑같이 안아줘" 하고, 환이가 사탕을 하나 먹으면 원이도 "엄마, 나도 사탕 하나 줘"라고 한다. 내가 똑같이 행동하고 배분해서 끝나는 문제면 상관없을텐데 피부색과 혈액형도 다른 우리집 쌍둥이들은 타고난 성향과 재능도 달라서 어려웠다. 체격이 좋고 모양과 색에 민감한 환이는 처음 본 운동도 곧잘 따라하고 신발짝도 잘 맞춰서 신으며, 퍼즐맞추기를 잘한다. 원이는 영리하게 문제를 풀고 숫자에 민감하여 엘레베이터 안의 숫자들을 먼저 읽더니 현관 비밀번호를 외워 문을 스스로 연다.


서로 칭찬받는 부분이 다르다 보니 같은 상황에서 칭찬을 못받는 아이가 꼭 생긴다. 똑같이 칭찬하려고 노력하지만, 처음 새로운 걸 한 아이에 대해 떠는 호들갑은 잘 가려지지 않는다. 환이가 자기이름을 종이 가득 써왔길래 깜짝 놀라서 진짜 대단하다며 언제 이렇게 글자를 배웠냐고 요란을 떨었는데, 열심히 색칠공부에 집중하던 원이도 조용히 방에 들어가 벽에 있는 한글을 보고 자기 이름을 써서 나온다. 환이를 칭찬할 때 원이한테도 색칠을 정말 잘한다고 칭찬했지만 목소리에 담긴 놀라움의 무게를 아이가 읽었으리라. 아이들은 사용하는 어휘는 적을 지 몰라도 부모의 감정에 대한 민감도는 훨씬 높은 듯 보인다.


 

로봇처럼 감정을 담지 않고 칭찬을 할 수도 없기에 아이가 서로 비교한다는 게 보이면 난처하다. 니가 잘하는 걸 하면 된다고 끊임없이 말하지만, 칭찬은 무엇에 대해서든 <더 나은 것>을 알려주는 말이기에 빛과 그림자처럼 비교하는 것을 멈추기가 어렵다. 특히 아이들이 듣는 칭찬 중에 "너 소질있다"라는 말이 있다. 소질은 사전적 의미로 타고난 능력이나 기질을 말하는 것으로, 소질있다고 칭찬을 받는 아이는 춤추게 하지만 그 옆에 있던 아이는 자신의 한계를 결정짓게 만든다. 옆 친구보다 잘 안되는게 내 눈으로 보이는데 옆 친구가 소질있다고 칭찬받는 말을 들으면 '나는 소질이 없어서 안되는구나' 하게 되지 않는가.



어린아이에게 소질이나 타고난 능력을 칭찬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면 누군가는 "노력으로 극복하면 돼지~" 라고 가뿐하게 말한다. 하지만 돌이켜 보자. 다이어트 해야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당장 내 눈 앞에 빵 한조각 참기도 어려운 것이 소시민의 삶인데, "안먹으면 돼지, 살빼는게 뭐가 어려워~?" 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 대 쥐어박고 싶으니 말이다. 타고난 능력까지 노력으로 극복하는 친구들은 노력으로 내 한계를 뛰어넘은 경험을 이미 여러번 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존감 만렙으로 어차피 다른 사람들의 칭찬에 쉬이 흔들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노력으로 장애물을 뛰어넘어 본 경험이 아직 적다. 때문에 그 경험치가 쌓일 때까지는 소질을 칭찬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차라리 좀 멋없더라도 "와, 정말 잘한다!" 정도가 부작용이 없다.



아이는 조금 일찍 걷거나 늦게 걷더라도 끊임없이 배우고 있다. 남자 아기들은 돌 이전에 걷기 시작한다는데, 우리 아들들은 14개월이 되어야 걷기 시작했고, 24개월을 꽉 채우고서야 말을 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늦었지만 조잘조잘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쉼 없이 동네를 뛰어다닌다.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주 작은 아이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다. 다만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이 다른 아이들과 비교할 뿐이니, 삘리 해낸 것을 칭찬하다 아이가 느린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겠다.




천천히 너의 속도로 가기를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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