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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치 Dec 26. 2022

크리스마스 왈츠

제이는 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CD를 플레이어에 넣고 재생 버튼을 누른 뒤 가만히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나보다 한 뼘은 더 훌쩍 큰 키가 무색하게도 그림 그릴 때의 습관으로 말린 어깨와 굽은 등 때문인지 유난히 작아 보이는 뒷모습이었다.

스피커에서는 로맨틱한 왈츠 연주곡이 흘러나왔다. 어떤 곡이 들어있는지도 모른 채 산 앨범 커버에 있는 서로 얼싸안고 있는 붉은색 곰 두 마리가 그려진 일러스트는 아마도 춤을 추는 모양이었나 보다. 그저 제이가 일상에서 일러스트 속 곰돌이들처럼 즐거운 순간들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에 충동적으로 산 것이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그 언젠가 한숨처럼 흘러나온 제이의 말이 단순한 푸념이 아닌 그가 가진 정서와 세상을 보는 방식과도 닿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나 역시 부정적인 생각이 찾아오면 한없이 늪으로 빠져들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삶 자체가 고통’이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었기에 제이의 회의적인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기도 했었다.

제이의 멜랑콜리는 병증이라기보다는 그를 이루는 리듬과도 같았다. 아무리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자고 일어나면 씻은 듯이 기분이 개운해지는 나와 달리 제이는 눈을 뜸과 동시에 깊은 호수 바닥에 깔린 기분을 건져내 서서히 움직이게 하고는 했다. 때로는 세탁한 수건을 하나씩 정성스럽게 개키면서, 때로는 간밤에 쌓인 먼지를 청소기로 빨아들이면서. 마치 절에서 108배를 하듯이 고요하고 경건하게 반복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제이의 얼굴은 현재가 아닌 다른 시간 속에 존재하는 느낌이 들어 쉽게 말을 걸 수조차 없다.

제이의 삶에 스며있는 멜랑콜리는 그가 만들어내는 작업과도 결을 같이 했다. 그는 작업 안에서 과거의 해소되지 못한 불안한 감정들을 펼쳐놓고 해부하고, 관찰하기도 하고, 결국에는 밀물과 썰물이 오가는 사이에 우뚝 서서 잠긴 물 밑의 그것들을 더듬어 보고 흘려보내기도 했다. 그의 세계에서 ‘과거의 시간’은 쉽게 지우거나 끝낼 수 없는 것이었고 그가 작업에 몰두한 시간만 셈해보더라도 마냥 명랑하게 지낼 수만은 없었으리라.

사랑이라는 감정에 취한 사람들이 쉽게 그러하듯 나도 처음에는 그를 변하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세계에 내가 빛을 비추어주면 그만이라고. 하지만 오만한 생각이었다. 그가 영원한 어둠이 아니듯이 나 역시 영원한 발광체가 아니었다. 밝아지는 어둠 꼭 그만큼 빛의 영역이 좀먹어갔다. 함께 지낸 시간이 늘어날수록 누구의 탓인지도 모를 빛의 얼룩들이 뒤엉켜 서로의 그림자에 새겨졌다.   

 

낮보다 환한 밤의 한가운데에서 제이가 다시 깊게 굴을 파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가 끝 모를 어둠으로 빨려 들어가기 전에 괜히 등짝을 한 번 찰싹, 때려 환기를 시켜본다. 굳어있던 제이의 얼굴이 일순간 풀리며 현실로 돌아온다.

나는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의 리듬에 나의 리듬을 더해 발을 맞추어 춤을 추는 것. 서툰 스텝에 발이 꼬이고 서로 다른 박자에 몇 번이고 실수를 하면서도 손을 맞잡고 흐르는 음악에 귀 기울이려 하면서 춤을 춰나가 보는 것. 그것이 너와 내가 함께하는 삶이 아닐까.


나도 모르게 상념에 빠져있던 중 트랙이 바뀌고 어스름한 저녁 빛이 베란다의 식물 그림자를 넘어서 걸어 들어왔다. 제이의 굽은 등이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조용히 좌우로 흔들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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