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0년 12월 24일부터 이듬해 1월 22일까지 진행된 '블루칩프로젝트(BLUECHIP-ROJECT)' 참여 작품의 원본입니다. 블루칩프로젝트 인스타그램(@bluechip.everywhere)에서 전시 형태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1. 둘째는 파란색
사람의 취향은 언제 만들어질까?
대부분 사춘기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늦어도 초등학생 이전이었다. 두 살 차이인 친언니의 영향이 컸다. 언니는 내게 매일같이 신문물을 가져다주었다. 처음은 핑클과 지오디였다. 언니는 고모에게 얻어온 손바닥만 한 스티커를 보여주며 말했다.
"나는 이효리랑 손호영 가질게. 너는 누구 할래?"
나는 고민하다가 이진과 데니 안을 골랐다. 그들이 내 첫 번째 취향이 되었다.
그 기억이 얼마나 강렬하냐면, 당시 핑클과 지오디의 무대는 다 잊어버렸으면서 그때 언니와 나누어 가진 조그만 스티커를 책상 서랍에 다닥다닥 붙인 건 기억날 정도다. 언니는 그 후로 특별한 팬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정작 나는 데니 안의 버릇이 입술 뜯기라는 TMI까지 외우고 다녔다. 그래봤자 그 어린애가 할 수 있는 팬 활동은 'god의 육아일기' 본방사수 정도였겠지만.
이후 '세일러문', '웨딩 피치'를 지나 '포켓몬스터', '디지몬 어드벤처', '슈퍼갤즈'까지. 유년 시절부터 청소년이 될 때까지 언니가 보여준 이른바 '신세계'는 많고 다양했다. 특히 세일러문과 웨딩 피치는 중요했다. 인형 놀이를 해야 했으니까. 언니는 항상 주인공을 골랐다. 세일러문의 주인공? 당연히 세일러문이다. 웨딩 피치도 마찬가지다. 그럼 나는 나머지 중에서 골라야 했다. 나는 세일러마스와 웨딩 릴리를 좋아했다. 슈퍼갤즈도 으뜸이(최애)가 있었는데, 인형 놀이는 안 하는 대신 캡처 이미지를 모으곤 했다. 나는 당연히 주인공 친구인 호시노 아야만 찾아다녔다. 그렇게 나의 취향은 정해지듯 만들어졌다.
좀 자라서 열한 살 무렵에는, 갑자기 파란색이 좋아졌다. 여태껏 특별히 선호하는 색이 없던 나는, 선택지가 주어지면 파란색만 외쳐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아해하던 부모님도 나중에는 익숙해지셨는지,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연이는 파란색 사주면 되지?'라며 알아서 골라주셨다. 부모님 입장에서도 나와 언니가 같은 색을 두고 싸우는 것보다야 취향이 갈리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언니는 당연히 늘 고르던 빨간색과 분홍색을 차지하니 좋았을 것이고, 나는 언니가 탐내지 않는 파란색을 가질 수 있어 좋고.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결과였다. 가끔 남들이 너는 여자애가 파란색을 좋아하냐는 시답잖은 말을 해대도 나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평범함을 벗어났다는 사실이 왠지 짜릿했다. 나는 아직도 그때 입던 민트색 점퍼가 눈에 선하다.
누군가는 이 글을 보고 언니가 맨날 먼저 선택하는 게 잘못된 것 아닌가? 혹은 뺏을 수는 없는 건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 입장은 이렇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언니를 만났다. 언니는 나의 삶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었다. 나이가 비슷하지만, 친구는 아니고. 같이 살지만, 부모는 아닌 사람. 나의 소우주를 이만큼이나 차지하는 사람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언니 말이 다 맞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엄마 말은 안 들어도 언니 말은 들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언니는 내 문화생활 대부분의 선두주자였다. 나는 언니가 빌려온 만화책으로 순정만화에 눈을 떴다. 근 십 년 이상 좋아했던 아이돌그룹의 입덕을 전도한 이 역시 언니다. 절대적 존재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언니가 첫 번째인 것 정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두 번째인 것도 당연하고 말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거기에 만족했다. 언니 다음으로 고르는 것. 부모님이 언니 다음으로 소개하는 딸. 두 번째 서랍을 쓰는 것. 모두 충분히 익숙한 일들이었다. 불만을 가지는 방법을 몰랐다. 나아가 나는 무엇에도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대단한 의욕이나 열정도 별로 없이 살았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은 언니라는 선례가 없는데 욕심을 내야 할 때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2. 행성이항성으로변하기까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다. 다들 그랬겠지만 나 역시 대부분 환경이 바뀌었다. 한 번도 나온 적 없던 집을 나와 기숙사에 들어가고, 교복 대신 사복을 입고, 수업이 아닌 낯선 강의를 들었다. 나는 언니에게 물려받은 옷을 입고 언니 따라 산 아이라이너를 어설프게 그린 채 학교에 다녔다. 매일 저녁, 배가 고프면 언니와 마지막으로 먹은 낙지볶음을 그리워했다. 안 그래도 작은 우주의 한복판을 차지하던 행성 하나가 빠져나가니 빈자리가 그렇게 허전할 수 없었다. 아니다. 내가 언니 주변을 돌고 있었으니 언니는 내게 항성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나는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삶에 점차 익숙해졌다. 금요일 저녁이면 꼬박꼬박 내려가던 본가도, 과제와 팀플을 핑계로 발길을 한참 끊을 때도 있었다. 언니가 아닌 친구들과 옷을 사고, 때론 혼자 끼니를 해결했다. 깊은 고민이 생기면 언니 대신 친구에게 털어놓은 적도 숱했다. 당시 언니도 졸업 전시 준비가 빠듯해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 바빴다.
또 한 가지 어려웠던 건, 내가 나를 증명해야 하는 일이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나는 우리 집 둘째 딸 혹은 우리 언니의 동생, 또 내 동생의 둘째 언니, 그리고 아이돌그룹의 열성 팬 정도면 수식이 충분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대학에 와서는 다른 사람이 들어가지 않는, 그냥 내가 되어야 했다. 완전히 독립된 내 모습을 마주하고, 내가 누구인지 갖가지 방법으로 설명해야 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더는 언니에게 물어보지 않고 혼자 알아내야 했다. 덜 자란 부분이 있다면 자력으로 성장해야 했다. 완벽하지는 못해도 완전해야 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가장 많이 바라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나는 나의 우주를 아득히 팽창시키고 싶었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눈부신 항성이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언니 없이도 욕심을 내야 했다. 원하는 수식이 생기면 내가 직접 달았다. 나서야 한다면 나서고, 말해야 한다면 말했다. 점점 나에게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졸업을 앞두고 본가로 복귀했다. 이후 본가에서 직장을 다닐 무렵부터, 가족끼리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안온한 우리 집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여독을 풀듯 안정을 되찾았다. 그즈음 언니와는 업무 면에서 겹치는 부분이 생겨 서로 할 말이 많았다. 우리는 또 메이트가 됐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는 더 이상 언니를 따라 하고 싶지도, 아예 반대가 되고 싶지도 않아졌다는 것이다. 모든 기준은 내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언니가 보여주는 작품에서 내 취향을 억지로 찾지 않았다. 반대로 언니와 취향이 비슷해져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제 더는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나중에는 내가 언니를 이끌기도 했다. 언니의 첫 해외여행은 나와 함께였다. 첫 뮤지컬 역시 나와 함께 관람했다. 나에게 언니가 최초이듯, 언니에게 나도 최초가 되었다.
다섯 식구가 모이는 일도 전보다 많아졌다. 아직 미성년자인 동생을 제외한 네 식구는 종종 술을 한두 잔 하기도 한다. 우리는 더욱 가까워졌고, 요즘은 거의 친구처럼 지내게 됐다. 나는 장난식으로 그때 그 시절 둘째의 서러움을 말하곤 한다. 더는 억울하지 않지만, 뒤늦게 미안해하는 언니를 보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첫 번째로 두고, 유일한 항성이 되고서 달라진 점이 또 하나 있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순서를 부여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더 좋아하는 사람을 우선하기도 했다. 가족이든, 친구든. 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그러지 않는다. 평등은 의외로 간단하다. 모두에게 잘하면 된다.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여유가 생기고 나에 대한 확신이 드니 할 수 있었다. 스스로 빛나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빛을 주는 일은 생각보다 보람찼다.
3. 선택이 아닌 선호
몇 년 전, SNS에 올릴 사진을 고르던 나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매력적이고 감성적인 이미지를 좋아해 웹서핑하면서 마음에 드는 것을 저장하곤 했는데, 그렇게 모은 이미지의 대부분이 빨간색과 분홍색이라는 사실이었다.
의외였다. 나는 줄곧 파란색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취향이 바뀐 걸까? 각각 다른 날에 저장했던 붉은 꽃 사진 다섯 장을 SNS에 올리고 문득 주위를 둘러보다가, 나는 작게 탄식했다. 내 주변은 어느덧 빨간색과 분홍색 천지였다. 구매한 지 1년이 좀 안 된 노트북 마우스와 외장하드는 빨간색, 노트북 파우치는 분홍색. 즐겨 입는 분홍색 니트는 벌써 여러 장이었다. 그러고 보니 집 근처 장미공원에 갈 때마다 붉게 핀 장미를 사진으로 곧잘 남기곤 했다. 일러스트레이션 페어에서 팬시 제품을 잔뜩 살 때도, 사무용 책상을 꾸밀 때도, 심지어 머리핀을 사는 사소한 순간조차 나는 더 이상 파란색을 고르지 않았다. 내가 언젠가부터 자주 듣던 말은-
"다연이는 분홍색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다연 씨는 완전 파스텔톤 취향이네요."
였고, 친구들이 내 타입이라며 보여주는 것들은 하나같이 분홍색이었다. 분명 어릴 때 듣던, '다연이는 파란색 좋아하지?'와 비슷한 말이고 색깔만 달라졌을 뿐인데. 나는 지금이 더 만족스러웠다. 이건 단순한 취향 변화가 아니었다.
두 번째인 나, 언니 다음인 나, 주인공을 선택하지 않는 나는 파란색을 '선택'해야 했지만,
첫 번째인 나, 유일하고 완전한 나, 주인공을 자처하는 나는 빨간색과 분홍색을 '선호'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이제 나는 주인공 친구가 아닌 주인공을 좋아하게 되었고, 수록곡만 듣던 앨범에서 타이틀곡을 찾아 듣기도 했다. 누군가 나서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말하고, 양보하지 않아도 될 때는 당당하게 내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다른 이의 빛에 만족하지 않고 나 스스로 빛나는 방법이었다. 취향이 확실해지니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사랑하는 것을 구분 짓기도 편했다. 이제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