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복직의 시작.
' 애썼어. 힘들었지? 모든 걸 다 해낼 수 없음을 받아들인 너를 칭찬해. 혹독했던 첫째 주를 잘 견뎠어. '
워킹맘이 된다는 게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시작해 보니 힘들다고 말도 못 할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정말 힘든 데 누구에게 힘들다고 말해야 할지, 무엇이 어떻게 힘들다고 말해야 할지 말을 정립할 수 없었다. 나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어른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복직 교사로서의 일, 교육공무원으로서의 일, 아이의 엄마로서의 일. 모두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복직을 하면 애쓰지 않고 나를 잘 지키며 살아보겠다고 복직 전에 수없이 다짐했지만 실상은 힘겨움을 혼자 말도 못 하고 끙끙댔다. 힘들지만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려 노력했다. 적응하면 힘듦의 크기가 줄어들고 점차 살만해질 거라 기대하며 틈날 때마다 내 마음을 스스로 다독였다.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눈물을 삼키며 참았다. 쓰러질 것 같은 두통을 견디며 아슬아슬하게 첫째 주를 견뎠다.
몸과 마음이 축 났지만 사실 마음속에는 욕심도 있었다. 교사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모두 잘 해내고 싶은 욕심. 내게 바라는 모습이 있는데 몸은 따라줄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니 마음이 참 괴로웠다. 일단 할 수 있는 만큼만 각 역할들을 수행했다. 평소처럼 가정을 돌볼 수 없어도 복직 전처럼 수업을 준비할 수 없어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며 나를 스스로 격려했다. 그 힘으로 조금이라도 더 움직여보았다. 하지만 힘듦의 크기는 나날이 더 커지는 듯했다.
' 대충 해. ' 신랑의 한 마디가 내 눈물샘을 결국 자극했다. 진정시킬 수 없어서 눈물을 계속 흘리며 출근길에 나섰다. 아마 신랑은 내게 도움을 주려 해준 말이었을 것이다. 내 상황이 힘들었기에 나는 도움의 말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애쓰고 있는 내 모습이 잘 못되었다고 충고해 주는 말로 들렸다. 그 말에 화를 내고 눈물을 흘리는 내 모습이 싫어서 속상했다. 복직의 첫째 주는 이렇게 흘러갔다. 내가 바라는 모습의 어른답지 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