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엠마 Jun 25. 2021

Ep.18 눈물 흘릴 시간조차 없는 외국인 노동자



첫 공장일은 당연히 순탄치 않았다. 

아니, 혼돈과 공포 그 자체였다. 


‘20대 애들 중에 제 발로 시골에 들어가 가축을 도축하며 돈 버는 삶을 몇 명이나 경험할까?’


일하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도축하는 파트 ‘Kill Floor’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내가 원했던 파트는 (남들에게 들었던 것처럼) 깔끔한 작업 환경에 뼈만 발라내는 ‘보닝’이라는 파트에 들어가고 싶었다. 물론 공장 전체에 기계화가 잘 되어 있었지만, 내가 해야 하는 도축 파트는 사람 손으로 직접 작업해야 하는 부분이 더 많았다. 


말인즉슨, 기계에 거꾸로 매달려 오는 닭들 중 자동으로 목이 베이지 않은 닭들은 직접 손으로 작업 처리를 해야 했다. 그 후엔 작업자들 여러 명이 나란히 서서 줄지어 오는 닭들의 내장을 손으로 일일이 다 빼야 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공정들 후엔 닭들을 직접 기계에 매달아 다음 파트에 보내줘야 한다. 매일 새벽에 출근하여 수백, 수천의 닭들을 이런 과정으로 처리했다. 


첫 주에는 정말 몸이 내 몸이 아니었다. 극심한 근육통과 팔 저림, 발바닥 통증, 신체적 고통과 더불어 영어를 써야 하는 환경,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더해지니 집에 와선 마치 강제로 유체이탈이 되는 느낌이었다. 밥이고 뭐고 일단 몸부터 뉘어야 떠나간 정신과 영혼이 돌아오는 것만 같았다. 


나름 정신력이 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공장에서 일을 시작하자마자, '하... 그만둘까?'라는 생각을 하루에 서른 번은 넘게 한 것 같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시 잡곤 ‘이게 진짜다, 여기서 무너지면 한국 돌아가야 한다. 이걸 이겨내야 다른 것도 다 해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다짐했다. 








이런 나의 악착같은 멘털 관리에도 불구하고 공장일은 더 힘들어졌다. 공장 내 각 파트의 슈퍼바이저(감독)는 전체 공정과 일을 관리, 담당한다. 그의 밑에는 매니저가 직원들을 관리하고 또한 각 팀원들의 일의 능률을 도맡는다. 내가 일하던 파트의 매니저는 키가 족히 170cm가 넘어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는 공장에서도 훨씬 멀리 떨어져 있는 깡촌에서 온 호주 사람이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부터 그녀의 여동생과 함께 같은 작업장에서 일했다고 했다. 


이 매니저는 처음부터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표정부터 그러했다. 초짜여서 텃세 부리나 싶을 정도로 오히려 더 어렵고 막노동 수준의 일만 시켰다. 서러웠다. 쪄 죽을 정도의 공장 내 열기와 남자들도 힘들어하는 작업들은 매 순간 '나 그만둘래!!'라는 말을 혀 끝까지 뱉어내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와 다른 호주 직원들이 나를 얕보는 게 싫었고, 기죽기 싫었다. 오기로라도 이겨내고 싶었고 그녀가 날(혹여나 아시안 사람이어서) 무시하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다는 듯, 보란 듯이 작업장에서 소리쳤으며 다른 직원이 날 도와주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곤 더 빨리 하라고 재촉하고 닦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예 불운의 아이콘은 아니었나 보다. 다행히도 같이 일했던 그녀의 여동생과 다른 호주 남자 직원들은( 남자 10, 여자 3 ) 알고 보니 정말 쾌활하고 엉뚱한 순수 시골 친구들이었다. 나이 때도 할아버지뻘 되는 직원부터 갓 16살 된 소년까지. 첫 주, 둘째 주가 지나가고 점차 그들이 나에게 사적인 질문도 많이 했다. 같이 웃고 떠들기도 했으며, 작업장 분위기도 전체적으로 많이 밝아졌다. 무엇보다 내가 힘들어하면 이제는 몇몇이 자발적으로 와서 도와주기도 했고 농담도 하고 지낼 정도가 되었다. 


매니저였던 그녀가 나에게 혹독하게 일을 시킨 것이 고의가 아니었단 걸 알게 된 건 일을 하고 몇 달 지난 후였다. 나는 그녀와 대화다운 대화, 즉 문장을 2-3번 이상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일 하는 동안 그저 오며 가며 인사하고 작업에 필요한 단어 몇 마디뿐이었다. 


하지만 직원들과 친해진 이후 그녀의 행동을 주시할 기회가 많았다. 초반에는 일도 힘들고 정신도 없어서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한데 자세히 보니 그녀는 원래 퉁명스럽고 말투 자체가 상냥한 편이 아니었다. 다른 호주 직원들에게도 짧게 묻고 답했으며, 재미있는 농담에도 2초 정도  웃곤 다시 무표정이었다. 다른 남자 직원이 농담 아닌 농담으로 그녀에게 ‘ 넌 너무 cranky (짜증 내는, 툴툴대는)해. 작업장에서 네 목소리가 더 커서 기계 소리가 안 들리던걸?’이라고 말한 탓에 전 직원이 대폭소를 했다. 그녀는 정곡이 찔린 듯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 Oh, just shut up!’이라고 말했다. 혼자 속으로 '나이도 어린데 싸가지가 정말..!'이라 생각했던 내 생각에 괜히 죄책감을 느꼈다. 모두가 비슷하게 생각했었다. 이런 일화들 이후로 오해가 한 줌 줄어들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그렇게 힘들던 공장일도 조금씩 익숙해져 가던 어느 날. 주말을 맞아 친구들과 시내에 있는 클럽에 가서 술 한잔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내 시선에 Cranky 매니저, 그녀가 보이는 것이다. 나는 괜히 불편한 마음이 들어 자리를 피할까 싶었다. 하지만 결국 마주치게 되어 그녀와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하곤 다시 각자 친구들과 놀았다. 그런데 잠시 뒤 누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돌아보니 그녀였다. 

순간 ‘뭐지?’ 싶었다. 그런데 그녀가 칵테일 한 잔을 나에게 내미는 게 아닌가? 그녀의 행동은 나를 더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 아, 아니야.. 괜찮은데.. 내 거라고? ‘ 


나는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 Yes. It’s for you. You always work hard. You deserve it.  (응, 네 거야. 너 항상 열심히 일하잖아. 이 술 마실 자격 있어.)


그 짧은 문장 ‘ you deserve it’에서 나는 울컥했다. 그녀가 나를 인정해 준다는 단어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란 걸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매서운 눈빛이나 말투, 퉁명스러운 말은 항상 나를 주눅 들게 했고 나의 작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 모든 서러움과 힘듦을 한 번에 씻어내 준 고맙고도 따스한 말 한마디였다. 


그 이후 그녀가 똑같이 화내고 소리치고 퉁명스러워도 더 이상 그녀가 밉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오해의 콩깍지가 한 꺼풀 벗겨져 그녀가 앳되고도 순박한 20살, 제 나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진실은 나도 잘 모른다. 나를 싫어했는지 관심이 없었는지. 하지만 같은 여자로서 또 힘든 일을 같이 했기에 인종을 뛰어넘은 일종의 동기애가 그녀와 나 사이에 생긴 게 아니었을까.(아님 말고!) 


그녀와 나는 아직도 페이스북 친구이며, 몇 년 전 그녀는 결혼까지 했다. 그녀의 원래 고향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의 사진을 볼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녀도 그동안 기나긴 여정을 거쳐 행복한 삶에 정착했으니 잘 된 일이다. 


She deserves it! 





작가의 이전글 Ep.17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