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살짝 언급했던 대로 내가 참여했던 '벤처 기업'은 Y라는 친구가 원작자인 'OO몰'이라는 쇼핑몰을 주 수입원으로 하고 있었다. 나는 게스트로 참여했던 개발자이기에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고, 세월이 흘렀다고 해도 함부로 기술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듯하다. 그렇지만 기업의 주력 상품의 소유권 각자의 역할 이런 것들이 맞물려 일어난 일이었을 것으로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다. 어느 날 주력 멤버들이 웅성웅성하더니만 '벤처기업의 해체(정확히는 둘로 나눠짐)'를 알려왔다. OO몰의 원작자와 나머지 그룹으로 갈라지는 것이었고, OO몰의 Y는 내게 자신이 분리 독립하게 되는 쪽으로 합류를 제안해 왔다.
벤처기업에서 사이트 3개 정도를 구축한 내가 실력이 탁월해서는 아닐 듯싶고, 아마 예의상 제안해 준 것이 아닐까 생각하여 고맙게 생각은 했지만, 사실상 껍데기만 남게 되는 쪽의 서버개발자, 디자이너 등과의 의리(?)로 Y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세월이 흘러 지금에 와서 보자면 '벤처기업' 하다가 대박을 낼 것도 아니었고(소위 쇼핑몰이라는 것도 훗날 흔하디 흔한 기술처럼 되어 버린다), 뼈를 묻을 일도 아니었기에 지금 시각에서는 어디로 합류하건 큰 의미 부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당시에는 이제 겨우 '초보 프로그래머'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눈앞에 닥쳐온 난관이 결코 쉬워 보이지 않았다. 남아 있던 멤버들과 사이트 구축 수주를 해 보려 하고, 조금 큰 프로젝트에 제안도 해보려 하는 등 노력했지만 주력이 빠진 자리는 거대해 보였다. 그리고는 홀로 개인사업자를 내서 특정의뢰를 받아 몇 달간 사이트 구축(돈은 한 푼도 건지지 못한)을 하는 등의 몸부림 끝에 벤처 기간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어느 날 생계를 위해 '컴퓨터학원 강사자리'라도 알아보다가 함께 했던 벤처 동료들 사무실에 방문했는데 서버관리자 'N'의 군생활시 중대장인이었고, 최근 대위로 전역한 지인을 만나게 되었다.
"대전에서 육군 워게임 개발 프로젝트가 있는데, C프로그래머 좀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하는 말을 듣게 된다. 약 2초의 생각 후
"제가 가면 안 될까요?"
하는 대답으로 내 생의 벤처를 청산하고 대전의 군시설로 향하게 되었다.
몇 개월짜리로 사이트 구축해 본 것이 다였던 내 앞에 '육군 시뮬레이션 프로젝트' 3년짜리가 놓였다. 한두 명이 가내수공업처럼 조몰락 거리며 개발하던 것에서, 여러 명이 분야를 나눠가며 개발하도록 바뀌었다. 또 Windows(윈도우즈)에 웹 사이트 구축을 위한 프로그래밍만 하면 되었었는데, 리눅스(Linux: DOS처럼 명령을 내려가며 제어를 할 수 있는-그래픽 환경도 있음- 좀 어려운 UNIX계열의 운영체제)도 만져야 했고, 오라클이라는 데이터베이스도 사용해야만 했으며 Uml 툴이니 뭐니 하며 각종 이런저런 Tool(개발에 필요한 여러 S/W) 사용법도 익혀야 했다.
또한 소위 'Simulation(시뮬레이션)'이다 보니 (이름만 들어도 나름 있어 보이지 않나?!^^) 각종 공부를 해야 했고, 영어라고는 'I'm Tom. You are a Jane.' 수준인 내게 영어로 된 시뮬레이션 아키텍처 책을 던져주며 학습 & 발표를 요구했다. 아... 미티... ㅋㅋㅋ
그리고는 'C언어 개발자'를 필요하다고 해서 왔더니만, 몇 개월이 지나가도 'C언어' 구경할 일이 없었다. 매번 세미나 발표 그리고 산출물(개발 시 필요한 업무 분석, 시스템 설계 등을 진행하며 정해진 양식에 맞춰 MS워드 혹은 아래아 한글 혹은 파워포인트 등으로 만드는 문서) 작성을 하였다. (공공 프로젝트는 사기업 프로젝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서 작성 요구가 많다. 혹자는 산출물과 개발의 비중이 5:5라고 할 정도로^^)
'아... 씨. 내가 프로그래머인 건지... 타이피스트인 건지... ㅠ'
개발에 참여한 구성원들은 개발을 하러 온 건지 타자를 치러 온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각종 문서를 만들어 내느라 진땀을 흘리게 되었다. 물론 서넛이 옹기종기 모여 벤처기업을 할 때에 비해 회사 생활하는 맛도 있고, 안정적인 보수와 장교 아저씨들 눈치를 좀 봐야 했지만 군부대 테니스장 이용 등 나름 재미있는 날들이 이어졌다. 육군 테스트 장에서 테니스 연습하다가 쫓겨나서 인적이 드문 공군 테니스장에서 연습하는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초급 장교도 죄다 골프 치러 다니느라 테니스장 운영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