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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빛 Feb 13. 2024

야탑의 등대

올해도 죽지 않고 살아갈 거야

주말을 맞아 오랜만에, 살포시 비가 내려 촉촉이 젖은, 아파트 단지안 정원을 산책한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산책하며 곳곳에 내 시선을 묻혀 두었던 곳인데, 최근에는 거의 돌아보질 못했다. 매일같이 야근을 하고, 거의 매일같이 누적된 피로에 절어 있다 보니 단지 안 정원 산책보다는 안락한 소파와 유튜브가 나를 잡아끌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일 년 전 눈 내려 하얗게 덮인 이 길을 걷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불황이 시작되던 H반도체에서 프로젝트를 마치고 다음 프로젝트를 기다리던 시기였는데, 그 기간이 길어지자 불안과 초조함이 엄습해 오던 그런 시기였다. 다음 일자리가 확정되지 못한 가장의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고, 그 마음의 무게만큼 발걸음 또한 한없이 무거웠고 길은 또 어두웠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어디 알바라도 알아봐야 할까..?'


하얀 눈 위를 걷는 발걸음 하나하나마다 여태껏 생각지 않았던 타인의 마음이 공감되어 다가왔다. 

코로나 시기에 자영업자들은 얼마나 힘겨웠을까? (주:  IT 역시 코로나 초기 급속 냉각되었지만, 재택 비대면 등이 일상화되면서 유례가 없는 IT호황기를 맞이했다). 4,5십대에 '명퇴', '조퇴'를 한 가장들의 마음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술도 담배도 도박도 당구도 하지 않는 나는 그저 블루투스 헤드셋에서 나오는 음악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나는 얼마나 재미없는 사람인가! 물론 남들의 시선에 ^^)


서른 즈음에 즐겨 들으며 '죽음의 철학'을 논하던 '말러(Gustav Mahler: 1860~1911, 오스트리아의 낭만파 음악가)'의 교향곡 2번이나 7번 따위를 듣기에는 무거움에 무거움을 더하는 꼴이 되어 버릴 것 같았다. 차라리 메탈의 교과서 '메탈리카(Metallica: 미국의 헤비메탈밴드)'를 세대의 첼로와 재즈드럼으로 제대로 폭발시켜 버린 'Apocalyptica(핀란드의 심포닉 메탈 밴드)'를 택하거나, '브로콜리 너마저'와 '가을방학'의 보컬이었던 '계피'의 말랑말랑 촉촉한 곡들을 넘나들며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다독여야 했다.

(주: Apocalyptica의 'For whom the bell tolls' 연주를 들으면 메탈리카 것보다 더 심장을 불태워준다)


다행히 나의 IT 불황(내가 호황이면 세상이 호황이고, 내가 불황이면 세상이 불황이다)은 너무 오래가진 않았고, 작년 초 종로에서 단기프로젝트를 거쳐 4월에 'PCN'에 합류하게 된다. PCN에서 야탑 준비기를 거쳐 8월 1일 프로젝트 시작되던 날... 나는 전화 연결음을 변경했다. 위에 언급한 '계피'의 '2019'라는 곡으로.


< 2019 >


눈을 뜨면 내 얘길 들어줘

네게 하고 싶은 말들이 있어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고 싶다던 

너의 고백에


두려움이 앞서기도 하지

모든 겨울을 지나왔을 네게

이 봄을 담아서 온기를 담아서 

노래 부를게


- 중략 -


미래는 한 걸음씩 우리 곁을 찾아오고 있고

우리의 항해는 이제 여기 시작되려 하지

푸르게 피워 날 사월의 노래 네게 주고 싶어

우리는 올해도 죽지 않고 

살아갈 거야


글: 계피(임수진) & 형광소년(김예슬: 계피의 남편)

곡: 형광소년

노래: 계피


나는 지난 8월 이후 내 전화 연결음으로 선택한, 얼핏 젊은이의 사랑노래로 시작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곤 한다. 특이한 보컬인 계피의 음성 탓도 있겠지만, 가사 마지막 줄의 "우리는 올해도 죽지 않고 살아갈 거야"... 아! 이거 뭐냐?! 이들은 무슨 고뇌가 있었길래 내 마음과도 이렇게 닿아 있다는 말인가! 거의 매일 하루에 몇 번씩 듣고 내게 전화 거는 이에게도 강제로 듣게 만든 이 곡... 눈물이 흐를 때도 있고, '죽지 않고 살아가자'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이기도 하는 그런 감정이 언제라도 나를 일깨워준다. (내겐 아픈 아이가 있어 십여 년 전부터 '즐거운 우리 집'이었던 날이 없다)


일 년 전도 힘들었고, 일 년 후인 지금도 힘들다. 원래 삶이란 힘든 것이지만, 그때와 지금의 '힘듦'이란 닮은 듯 닮지 않은, 결이 다른 '힘듦'일 것이다. 스스로 헤쳐나갈 수 없는 것과 스스로의 동력으로 헤쳐나갈 수도 있는 그런 차이. (물론 후자인 현실도 각 개인의 동력으로만 해결되지 않을 외부 변수에 놓일 수 있긴 하다.)


'2019'라는 곡을 소개하려 가사를 적다 보니...

'푸르게 피워 날 사월의 노래'... '사월'이 등장한다.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로 적용되는.

우리에겐 '힘겹게 뽑아낼 사월의 산출물과 어노테이션'으로 바뀌어 적용되겠지만 ^^.


< F = ma >

라는 뉴튼의 운동법칙이 있다. '힘'은 물체의 '질량'과 '가속도'에 비례한다는 것이다.(다들 아는 것이지만^^)  우리 IT 현실에도 통용되지 말라는 법은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R = ea (Result = Effort X Aability)

"결과물은 노력(정성)과 능력에 비례한다"가 되지 않을까? 아니면 "E = mc2"을 적용해서 '노력' 혹은 '능력' 어느 하나의 제곱에 비례할 수도 있겠다. 어느 공식이 적절한지 알 수 없지만... 결과는 개개인의 능력이 비슷하다면 투입한 시간(혹은 시간의 제곱)에 비례할 것이고, 투입한 시간이 비슷하다면 개인이 가진 능력(혹은 능력의 제곱)에 비례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어느 값이 '상수'이고, 어느 값이 '변수'인지를. 

우리 프로젝트(일터)를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변수'의 값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것을.

(변수가 '노력'인 분들과 변수가 '능력'인 분들 각자 자신의 변수값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는 뛰어난 스페셜리스트 개발자가 아니다.

이것을 아는 나는 '뛰어난' 개발자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들보다 조금 더 'Effort' 변수값을 증가시키는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뛰어난 넘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야탑의 밤을 밝힌다. 

'야탑의 등대'가 되어.


/*

덧 ) '구로의 등대'

구로에 위치한 넷마O(게임회사)의 개발자들이 장기간 이어진 야근에 '돌연사', '심근경색사망' 등이 이어지며 붙여진 오명. '야탑의 등대'... 사실 위험한 짓이다. 자칫 돌이킬 수 없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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