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수록 퇴고
와, 와, 와. 이건 분명 내 인생 또 다른 처음.
선배이자 오빠이던 사람이 '결혼하자'라고 하던 그 순간, 내 아이가 내 손가락을 잡고 방긋 웃던 그 순간, '엄마'라고 처음 불러준 그 순간처럼 처음이다. 메일은 세상 어느 고전보다도 아름다운 제목을 달고 있었다. 한 달 전 브런치에서 나를 '작가'라고 불러줬을 때 나는 꽃이 되어 피어난 듯 했다. 작가의 작가됨을 지지하는 브런치에 감사하자.
같이 마실 수는 없어도 홍차를 한 잔 준비하고 상대방에게도 권한다. 커피를 좋아하시려나. 그건 나중에 묻자. 소꿉놀이다. 눈으로 읽으며 만나 본 적도 없는 편집자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집에 아무도 없다. 나는 모니터를 보며 혼자 이야기를 이어간다.
네, 저도 가슴깊이 기쁨이 차오르네요.
좋은 기획의 원고가 더욱 완성도와 짜임새를 갖출 수 있도록 1차 보완에 대한 안내 메일을 드립니다.
네, 보완해야죠, 저로서는 토할 만큼 다시 보고 보낸 원고여도 그럴 줄 알았어요, 보완할게요, 암요!
담당 편집자가 배정되었다. 다른 책에서 보면 책을 낼 때까지 얼굴 한 번 보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첨단 문물의 발달이 그 배경이다. 아날로그 갬성이 강한 나로서는 서운하다. 하지만 우리 딸이 그랬다.
"엄마, MZ하게 작업하세요. 언젠가 볼 일 있으면 보겠지."
초보 작가인 마흔 중반의 애미는 열 다섯 딸의 인사이트를 받아들여 아쉬움을 서랍에 고이 접어둔다.
메일은 어제 늦은 오후에 도착했다. 전날 4시간 밖에 자지 못했고, 기말고사 출제와 여러 업무가 겹쳐 두통이 심했다. 글동무 작가님들과 운동인증을 시작했는데 운동 안 하던 이 몸은 그 운동 적응기에 더 큰 피로를 느끼는 중인 듯했다. 스마트폰에 알림이 떴다.
제목 : 안녕하세요, 작가님
주말이 가기 전에 편집자가 배정되었으면, 편집 일정과 과정을 알았으면, 일정상 타임스케줄을 만들어봤으면 했는데 이런, 다음 주 월요일 오전까지 1차 작업을 해야한다. 오 마이갓.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헤밍웨이라는 그 위대한 작가는 그렇게 자신을 낮추며 뒤를 이을 작가들에게 마음의 위안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위로만 받을 때가 아니다. 결국 그 쓰레기를 자원순환 업사이클하여 세상에 존재할 만한 무엇인가로 만드는 과정을 밟고 또 밟아야 한다. 오로지 쓰는 일로.
생각보다 시간이 촉박하다. 하긴, 이 나이 되니 분명히 알겠다. 넉넉한 시간이 품질을 높이거나 더 나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음을. 최재천 교수님은 항상 정해진 마감일보다 일주일 전에 셀프마감일을 설정하고 그전에 최소 수십 번의 퇴고를 거치신다고 한다. 반면 안광복 선생님은 스스로를 '마감 중독자'라고 표현한다. 처음에는 마감일에 맞춰 쓰기 때문에 그렇게 명명한 거라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끊임없이 마감을 맞이하는 유명 작가이기에 그렇게 표현하신 건 아닌가 싶다.
모처럼 푹 잤다. 머리가 맑다. 어제 상세첨부파일은 일부러 열어보지 않았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 과제를 무리하게 안기면 내 성격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이 듦이 좋은 면도 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밤새 가며 닥치는 대로 해야 직성이 풀렸는데.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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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다, 첨부파일 열어보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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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숨을 쉬어본다. 동기 작가님들의 응원을 하나하나 꺼내어 입안에서 굴려보며 나에게 먹인다. 파일을 연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야 '희망'이 보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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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이어리를 꺼낸다. 어제 적어 둔 계획과 생각들 옆에 다시 할 일을 새롭게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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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급하다고 되는 일은 없다. 오늘 나는 걷고, 읽고, 쓰는 하루를 살아야지. 걸었다고 읽었다고 쓰는 하루였다고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가족, 동기작가님, 라이킷과 댓글로 소통해주시는 브런치 작가님, 사회적 가족들이 만들어가는 세상 속에 나는 살고 있다. 은경쌤도 응원의 메세지를 보내주셨다. 나는 나를 믿는다. 그리고 속삭인다.
틀려도 괜찮아, 너는 혼자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