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내 인생의 아몬드 꽃
예술의 전당에서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이 열렸다. 문득 혼잣말을 해본다. 당신은 교양있는 사람입니까. 다소 연극적인 분위기가 묻어나는 이 질문은 사회적 필요에서 시작될 수도 있고, 어느 날 스쳐가듯 본 한 점의 그림, 여느 날 바람처럼 귓가를 흘러간 한 소절의 음악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름에도 예술의 영역에서 공통분모인 위대한 예술가들이 있다. '태양의 화가'이자 '영혼의 화가'로 불리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도 그 중 하나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첫 고흐는 언제였을까. 나는 학창 시절 미술과 세계사에서 고흐를 만났으나 그다지 큰 감흥은 없었던 듯 하다. 시험지에 답안으로 존재하는 예술은 감동과 거리가 멀다. 그러던 내가 연애를 시작하며 고흐를 새롭게 만났다. 그는 고흐를 좋아했으며 나는 기꺼이 그를 바라보는 해바라기가 되고자 했다. 우리는 장미 대신 작은 미니 해바라기를 서로에게 풍성하게 안겨주곤 했다. 평균 연령이 100세에 육박하는 시절, 서로를 몇 십년 동안 한결같이 사랑하는 일은 호르몬 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어렵다.그러나 20대는 서로를 지지 않는 해바라기로 여기고 평생을 거는 도박을 하기에 좋은 시기였다.
결혼을 하고 첫 아이가 찾아왔다. 아이는 시간이 갈수록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 안을 톡톡 두드리고 기지개를 켰으며 점점 나의 배를 동그마니 부풀렸다. 오빠에서 남편이 된 곁지기는 어느 날 나와 아이를 위한 선물이라며 직소 퍼즐을 사왔다. 고흐의 <(꽃피는)아몬드 나무 Almond Blossom>였다. 아, 정말 아름다운 선택이다! 고흐를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의 아이를 기다리며 아내와 함께 한 조각 한 조각 맞춰가기에 더 이상 딱 맞는 작품은 없겠구나, 싶었다. 나는 두고두고 천천히 남편과 함께 셋이 함께 살아갈 시간을 상상하고 이야기나누며 그림을 완성해갔다.
우리 아이가 형처럼 굳센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어
고흐의 동생 테오는 미술 거래상이었다. 그는 형의 작품을 팔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당시 시장은 고흐를 외면했다. 고흐의 온갖 기행과 부진한 판매에도 불구하고 테오는 고흐를 지지하고 후원했다. 심지어 자신의 아이에게 형의 이름을 물려주며 '형처럼 의지와 용기'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노라 말했다. 고흐는 자신의 조카이자 동생 테오의 아들, 빈센트 빌렘 반 고흐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이 그림을 그렸다.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의 우애는 유명하다. 테오는 고흐에게 형제이며 경제적 후원자이자 고흐의 영혼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는 688통에 달했다. 이 편지를 다룬 책인 <반 고흐, 영혼의 편지>에서는 두 사람이 주고 받은 편지 원문을 통해 고흐의 고뇌와 형제 간의 갈등, 우애, 사랑과 견딤을 볼 수 있다.
아몬드 나무는 겨울이 다 가기 전 꽃을 피운다. 그렇기에 아몬드 나무는 봄의 전령사이며 새로운 생명과 희망, 재생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꽃피는 아몬드 나무>는 1890년 2월, 고흐가 프랑스 남부 생레미(Saint-Rémy)에서 정신병원에 머물던 시기에 완성되었다. 1888년 자신의 귀를 자른 후 정신병원에 세 해째 입원한 상태였던 그가 얼마나 피폐한 상태였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이 그림에 담긴 조카를 향한 사랑과 희망, 축복의 손길은 고흐가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피워낸 것이기에 더욱 귀하다. 어쩌면 그는 자신도 다시 한 번 피어나기를 소망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은 12월, 어떤 마음으로 보내고 계신지. 올 한 해는 잘 살았다며 꽉 찬 만족감을 느낄 수도, 마음에 들지 않는 한 해의 결과를 돌아보며 2025년 1월이라는 신상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겠다. 어느 쪽이든 당신이 편안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한 해를 살아내지 않았나. 고흐의 작품이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며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해도 고흐는 이 세상에 없다.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는 하루하루 그저 큰 걱정없이 자신이 원하는 그림에만 몰두하고 싶은 예술가의 소망, 자신을 믿고 지지하는 동생에게 보답하고자 하는 형의 안타까움과 초조함,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불화하는 가운데 자신의 관점과 시간을 지키고 싶었던 한 사람이 남아있다.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며 마른 빵가루만 보름을 먹어도 행복하겠다던 위대한 예술가 고흐. 그는 살아 생전에 인정과 응원, 다정함이 있는 아주 보통의 하루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연말이다. 다들 모임과 선물 준비로 바쁠 시기이다. 나 역시 엄마, 딸, 며느리, 직장인, 글쓰는 사람으로 사는 와중에 글동무들과 모임 한 번 잡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오늘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보이지 않아도, 당장 만날 수 없어도 언젠가 만날 그 시간을 약속하며 오늘의 글을 쓴다. 서로의 상황을 알리고 이야기하여 글동무들과 2025년 고흐의 전시회에 함께 가기로 했다. 나는 이번 방학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다. 새 봄, 내 글동무들과 고흐를 보러 갈테니 말이다.
내 안에서 열 달을 자라 나온 아이는 열 다섯이 되어 점점 자신의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고흐가 자신만의 그림을 위해 규율과 가족의 요구를 벗어던지고 예술의 심장으로 뛰어들었을 때처럼 그 아이답게 방황하고 성장하기를 축복한다. 그 곁에서 나 역시 성숙해가기를 응원한다. 오늘은 아이가 좋아하는 따끈한 냉이두부된장찌개에 계란말이를 준비할 생각이다. 우리가 각자를 축복하는 방식은 아주 보통의 하루에서 각자다움으로 충분하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눈이 멀어 지금을 놓치지 말자. 깨어있는 하루하루가 이어져 한 폭의 <꽃피는 아몬드 나무>를 완성할 것이다. 당신은 이미 충분하다, You are good enou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