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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재 Nov 19. 2024

김장에는 진주가 제격이라오     

피라미드를 지은 텃밭의 진주, 양파 

김장철입니다. 핵가족을 넘어 1인 가족이 대세인 시대에도 김장은 여전히 전 국민의 행사입니다. 딸이자 며느리인 저도 곧 김장에 동참합니다. 이번 김장에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감성으로 몸빼에 진주 귀걸이를 하고 가볼까 합니다. 귀에 목에 준비 안 해도, 김장하는 자리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진주가 있죠. 우리를 눈물 흘리게 하는 존재, 대지가 빚어낸 진주, 바로 양파입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1665 / 이리재, 왕진주 귀걸이를 한 김장전사, 2024  


우리가 먹는 양파, 뿌리일까요 줄기일까요? 


양파는 영어로 'Onion'이고 그 어원은 '진주'라는 뜻의 라틴어 'Unio'입니다. 조개 속의 진주가 층층이 형성되며 그 둥근 광채를 빚어가듯 양파도 그렇게 자라납니다. 잘 자란 양파를 캐면 뽀얀 젖빛의 둥근 알이 탐스럽게 광채를 발하며 눈을 즐겁게 합니다. 타원형의 양파를 세로로 세워 가운데를 자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양파심'이라고 부르는 부분이 보입니다. 그 부분이 바로 양파의 줄기인데요, 그 줄기에서 잎이 하나하나 차근차근 감싸듯 포개지며 자란 것이 바로 사람들이 섭취하는 부분입니다. 결국 우리가 먹는 양파는 '알뿌리'가 아닌 '비늘줄기'인 것이지요. 양파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였고 그 건조한 지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양파가 선택한 전략은 '겹겹이 둘러싸기'였던 것입니다. 


양파는 오래전부터 그 효능과 독특한 향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습니다. 기원전 5000년 무렵부터 중앙아시아에서 재배된 양파는 그 뛰어난 효능에 힘입어 중앙아시아 전역, 중동, 아프리카 지역까지 뻗어나갑니다. 성분 분석기나 식품영양학이 있었을 리 만무한 시절, 호모 사피엔스의 삶에 양파가 이토록 깊숙이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에게 이로웠기 때문입니다. 효능과 함께 저장성까지 뛰어났던 양파는 고대 인류 사회에서 바이럴 마케팅의 끝판왕이었던 셈이지요.  


산 자도 죽은 자도 나에게 오라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양파는 '산 사람을 더욱 살리고 죽은 사람을 언젠가 살릴' 마력의 작물이었어요. 피라미드 가운데 기자 피라미드는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거대한 피라이드입니다. 이 피라미드는 여러 파라오를 거쳐 상당히 오랜 시간 대를 이어가며 건설되었다고 해요. 피라미드를 짓기 위해 단시간에 엄청난 노예와 백성들을 투입해 후딱 지었을 거라는 저의 편견은, 아마도 영화 속 채찍과 탄압의 이미지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고고학의 발굴에 따르면 이집트의 권력자들은 혹사와 착취를 통해 피라미드 건설을 강요하기보다 작업자들을 관리하고 비교적 여유 있게 건설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무지막지한 돌들을 깎고 옮기고 쌓는 일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육체노동이었을 겁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들에게 양파를 제공하여 노동력을 관리했어요. 이 사랑스러운 작물은 그 시대 힘겨운 육체노동을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의 자양 강장제 혹은 보양식품이었던 거지요. 우리도 이미 알고 있다시피 양파에는 피를 맑게 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비타민 C, 칼슘, 단백질, 탄수화물 등 다양한 영양소가 들어있습니다. 현대의 우리들은 생양파를 쌈장과 함께 섭취하거나 얇게 채쳐서 샐러드에 넣기도 하고 양파즙을 내려마시며 콜레스테롤을 관리하지요.   


www.womaneconomy.co.kr (좌)  네바문과 레크미레 벽화 중 연회장과 양파 Btitish Museum Egytian Life & Death (우)


양파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에 모두 관여하는 신성의 작물이었습니다. 피라미드 노동자들에게는 육체적 힘과 건강을 더하는 먹거리였고, 죽은 자의 부활을 염원하는 미라를 만들 때에도 빠지지 않는 영혼의 먹거리였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미라를 만들 때  미라의 눈구멍, 겨드랑이 등에 양파를 채우거나 붕대 안에 양파를 끼워 넣기도 했습니다. 이집트 여행에서 박물관에 들어가 미라가 층층이 쌓인 방을 처음 봤을 때는 영화 <미라>에서 본 것 같은 저주가 나를 덮칠까 봐 바들바들 떨었어요. 첨단 과학의 시대에 살아도 근원적 두려움은 이성으로 모두 해결되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공포나 두려움은 사라지고 소중한 이가 다시 부활하기를 바랐던 수천 년 전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이 느껴졌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죽은 이의 육체를 잘 보존하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시신이 썩지 않게 처리하는 일이 정말 중요했습니다. 세대를 거치며 먹어온 양파에 대한 '경험'으로부터 양파가 지닌 항균, 부패 방지의 효능을 알고 시신 처리에 사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양파 자체가 다른 작물에 비해 저장성이 뛰어나 오래가는 점도 '영원'과 '부활'이라는 이미지에 한몫했을 거고요. 더 이상 숨 쉬지 않는 소중한 존재의 부활을 염원하며 겹겹이 붕대를 둘러 미라를 만들던 그 마음이 양파를 묘하게 양파를 닮았습니다. 


그보다 훨씬 시간이 흘러 유럽으로 흘러들어 간 양파는 가정집 문 앞에 매달려 마녀를 쫓는 부적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양파는 파, 마늘과 친척인데요 양파의 친척들은 악귀와 사악함을 쫓기 위해 유럽의 가정에서 맹활약을 펼칩니다. 마늘은 드라큘라와 싸우고 양파는 마녀를 무찌르는 역할을 맡았거든요. 머나먼 항해를 떠나면서는 악마를 멀리하고 식품의 부패를 막기 위해 반드시 챙겨야 하는 아이템이었답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유튜브에 '양파 활용 독감 퇴치법'이 종종 보입니다. 껍질을 깐 양파 하나를 머리맡에 올려놓으면 온갖 나쁜 바이러스가 달라붙어 독감을 예방한다는데 예나 지금이나 양파의 살균, 방부에 대한 고대의 경험치가 기억의 DNA로 이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양파 같은 사람', 괜찮지 않나요?  


까도 까도 속이 나오기에 '속 모르겠는 사람'을 지칭하는 앙큼함의 대명사, 양파. 하지만 저는 추운 겨울을 지나며 한 층 한 층 차올라 뽀얀 얼굴을 내미는 양파가 사랑스럽고 듬직하게 느껴집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각도를 바꿔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인다"라고 했지요. 수육은 먹고 싶지만 김장은 하기 싫은 며느리의 마음을 양파심처럼 깊숙이 넣어두고, 양파가 자라나듯 한 포기 한 포기 배추를 버무려 쌓아 가야겠어요. 이번 김장철, 허리가 아프고 몸이 고돼도 내 가족과 인류 역사에 공헌한 양파를 진주처럼 여기며 김장을 하겠습니다. 혹시 아나요? 남편이 양파 같은 깊은 속으로 진주 반지 하나 준비했을지. 


메리 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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