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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재 Nov 17. 2024

지구는 괜찮아요, 우리가 큰일 난 거지

유엔 플라스틱 국제협약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5)를 앞두고

시작하세요, 한 번 쓰고 던져버려 라이프


라디오를 즐겨 듣는다. 클래식 채널이 BGM인데 오늘은 뉴스를 들어봤다. 유엔 플라스틱 국제협약에 대한 뉴스가 몸을 파고든다. 2022년 세계 175개국 대표들이 모여 플라스틱 감축을 둘러싼 법적 강제성이 있는 협약을 만들자고 합의했다. 기한은 2024년. 그 협약의 5번째 마지막 회의가 11월 25일 부산에서 시작된다. 미국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택했고, 중동은 전쟁에 휩싸여 있으며 세계 경제는 침체기로에 서있다는데 지속가능하게 살기는 살아야겠으나 자본주의가 분명한 삶의 문법이 되어 버린 지금, 각국의 상황과 입장이 다르고 세계시민들도 온도차가 크니 어찌 될지 시야가 흐리다.


1955년 <라이프 매거진>은 '한 번 쓰고 버리는 삶(Throw away Living)'을 제안했다. 표지에 실린 각종 일회용품을 던지며 환호하는 사람들(아마도 가족)의 모습은 할 말을 잃게 한다. 고작 70년 전이다. 사람은 놀라운 존재임이 확실하다. 인류의 등장은 지구 역사를 24시간으로 가정할 때 자정에 가까우며, 그 짧은 시간 중에도 탄소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여 지구를 갱년기 안면홍조 발열증을 가뿐히 능가하는 환자로 만들었다. 어쨌든 쓸고 닦고 정리하는 일을 40시간 가까이 줄여주겠다는 이 기적의 물질 앞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발명 초기 일회용품을 다시 쓰는 습관을 버리고 한 번만 쓰기를 장려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70년이 지나 지금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생활 문법이 되었다. 편리하고 저렴하며 원하는 형태와 색상을 자유롭게 연출할 수 있었던 이 기적의 물질은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플라스티쿠스로 만들었다.  


그러나 최초로 만들어진 칫솔이 분해되려면 앞으로 수백 년이 남았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플라스틱은 자연순환과는 거리가 먼 물질이다. 석유계 원료로 탄소를 배출하며 만들어져 기존의 자연법칙에 따라 분해 후 거름이 되지도 않고 소각할 때조차 엄청난 양의 탄소와 독성 물질을 내뿜는 물질이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사라진다는 삶의 명제가 플라스틱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탄소배출과 기후위기는 손에 잡히지 않는 연기처럼 떠돌다가 인간과 야생 동물이 맞닿은 경계에서 전염병이라는 형태로 일상을 쓰나미처럼 덮쳤다.


혼란의 도가니 속에 플라스틱은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야기한 상징적 주범으로 떠올랐다. 플라스틱이 가진 문제를 파악하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세계를 뒤덮었다. 알지 못하는 신종 전염병은 죽음의 공포로 사람들을 갈라놓았다. 전쟁 때에도 유지했다던 학교가 문을 닫았다. 그 초유의 사태에서 사람들을 구원한 것은 플라스틱이었다. 80, 94가 붙은 일회용 마스크가 우리의 호흡기를 보호했다. 겹겹이 포장된 일회용 용품이 감염의 위험으로부터 사람을 지켰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지나치게 높아진 가족의 근접거리 피로도로 인해 지친 부모들은 일회용기에 담겨온 따끈한 식사로 일상의 고단함을 달랬다.  


문제를 알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암담함, 일회용품을 줄이고 환경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며 내 아이에게 일회용 마스크를 날마다 씌워 보내야 하는 이중성, 남들은 모두 똑같이 사는데 나 하나 달라진다고 뭐라 바뀔까 눈 감고 싶은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이니까, 사람이니까 이대로 살 수는 없다는 마음이 모여 제로웨이스트 가게를 찾게 한다. 그러나 터치 한 번이면 스페인산 양파가 식탁에 오르는 세상에서 한 번 두 번 플라스틱 하나를 버리지 않아 보려는 노력은 하면 뭐 하나 싶은 노력이 되어버린다. 귀찮음은 의지를 거의 언제나 이긴다. 삶의 모든 분야에서.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일회용 컵에 음료 담아 마시며 남 탓 세상 탓만 하면 아무것도 안 바뀐다. 어제 수백 명이 모인 워크숍에 다녀오며 텀블러 지참에 대한 안내를 받고 먼 길 오느라 텀블러를 미처 챙기지 못한 글동무들의 텀블러를 챙겼다. 번거롭지 않다. 내게 소중한 동무들을 지키는 일이니까. 고맙다 인사하며 주고 받는 표정과 목소리, 그 마음에서 나는 사는 보람을 느낀다. 쓰레기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구는 괜찮다. 세상을 구하려 하지 말고 나와 내 가족을 구해야 한다. 거창하고 대단한 담론이 아니라 내가 건강하게 나이 들고 내 아이가 사람답게 살기 위한 세상을 만드는 일, 남에게 피해 주지 말고 서로 돕고 살라 가르치고 배워온 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보자는 마음, 그 마음을 가진 사람이 나 하나는 아니며 특별한 마음도 아니다.  


인디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 하지 않나. 내 곁의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려보고, 그런 마음이 있어도 냉소적 반응이 두려워 말조차 못 하는 이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창문을 내보자는 마음, 전국에 그런 마음들이 모이고 모여 제로웨이스트 가게라는 공간을 만들고 이어지게 했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가장 크고 위대한 변화는 바로 당신이 일회용 컵 하나를 쓰지 않으려는 그 마음에서 시작된다. 지구를 구하지 말고 나와 내 가족을 구해야 한다. 사과와 배추가 금값인 건 가까운 쓰나미의 아주 작은 전조에 불과하다. 제로가 아니어도 괜찮다. 완벽주의에 시달리며 시작도 못 하는 것보다 오늘 하나 줄이려는 노력이 귀하다. 어머나, 이것은 글쓰기와 같지 않은가? 그러므로 당신이 일회용품을 덜 쓰려고 노력한다면 글도 더 잘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자, 오늘도 궁리해 보자. 나의 편리와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판타스틱한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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