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무서웠던 존재가 무능력함을 깨달을 때
그만 좀 물어봐!
시간이 흘러 어느덧 10개월 차. 책임은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는 듯이 질문 좀 그만하라고 말했다. 언제까지 다 물어볼 것이냐고도 덧붙였다. 나는 그 말에 그냥 픽 웃었다.
언제는 다 물어보고 하라면서요.
나는 장난기를 섞어 되물었다. 내 반응에 책임은 퍽 당황한 듯 그땐 그때고! 하고 괜히 언성을 높였다. 이어진 말을 들어보니 이제는 나 혼자 할 수 있어야 한다나.
혼자 할 수 없어서 물어보는 게 아니라, 본인이 물어보고 행동하라고 해서 그랬던 거일 뿐인데. 나는 더 토 달지 않고 그냥 네네 하고 넘어갔다. 예전이라면 억울하고 속이 상했을 만도 한데 이제는 그러려니 했다.
3개월은 정말 기적의 숫자와 같았다. 3개월을 넘어가니 업무와 회사 프로세스를 체화시키기 시작했다. 밤 11시까지 해도 끝나지 않던 업무는 어느새 30분 만에 처리되었고, 손이 빨라지니 검수할 시간이 늘었다. 덕분에 실수도 줄었다.
몸이 적응하니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직원이 새로 들어오거나 나갔고, 나를 제명했던 대리는 과장으로 승진했다. 그사이 나는 새로 입사한 경력자에게 내가 맡았던 브랜드를 넘겨주었다. 대신, 다른 브랜드를 메인으로 담당하게 되었다.
야! 이거 뭐야. 왜 이렇게 돼 있어?
가장 많이 변한 건 나 자신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책임의 부름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을 텐데, 이제는 한숨부터 쉬었다. 나는 책임의 물음에 뭐가요? 라고 답했다. 어떤 상품이, 어느 몰에서, 어떻게 문제가 있는 건지 말해주어야 확인을 해볼 것 아닌가.
여기. 옵션이 잘못되어 있는 것 같은데.
엥.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중얼거리듯 답했다.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책임이 잘못 보는 경우가 100번 중 98번이기 때문이다. 그럼 남은 두 번의 경우면 어떡하냐고? 어차피 고객사가 발견한 것도 아닌데 뭐 어떠한가. 빨리 고치기나 해야지.
내가 10개월 동안 학습한 건, 직장에서는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짧고 굵게 사과하고 칼같이 수정하기. 직장에서는 아무도 내가 물을 엎지르게 된 사연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여기는 라디오도, 학교도 아니니까. 그저 빨리 사과하고 닦는 게 중요했다.
칠리야. 이거 어떻게 보더라.
재밌는 건, 이쯤 되니 역으로 책임이 내게 질문을 해댄다는 것이다. 내가 업무에 적응한 후로 책임은 실무를 완전히 놓았다. 15년 차 정도 됐으면 원래 일하지 않아도 되는 거라나. 20년 차가 넘은 수석님께서 이 말을 들으면 코웃음을 치겠지만 내버려 뒀다. 원래 저런 사람이니까.
야! 00과장이 이러는데, 무슨 이슈 있었냐?
문제는 우리 팀의 책임자인데 팀 내 이슈도 모른다는 것이다. 명색의 '책임'인데 그는 작업물 검수도, 업무 모니터링도 하지 않았다. 고객사와의 채팅도 제대로 읽지 않아서 어떤 이슈가 터지면 아무것도 몰라 대응이 늦어지기 일쑤였다.
여기까지만 해도 게으른 사람이니 그러려니 하겠다. 그런데 나중에는 일개 사원에게 고객사 측에 사과 메일까지 보내라고 했다. 어떤 이슈가 있어서 고객사 측에서 전체 메일로 해당 내용을 공유해달라고 했는데, 딱히 담당자를 지정해 준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책임이 '책임'을 지고 수습해야 하지 않겠는가. 결국 책임의 성화에 못 이겨 담당 직원분이 회사를 대표해서 메일을 보냈다. 기가 차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나중에 회식할 때 들어보니 수석님께서도 못마땅해하시더라.
이러니 자신이 확인해 봐야 할 게 생기면 책임은 무조건 날 불렀다. 별 볼 일 없는 일들로도 불러대니 이제는 귀찮아질 지경에 이르렀다. 가끔 우습기도 했다. 매일 나를 욕하던 사람이, 나한테 가르침을 받는 꼴이라니. 그렇다고 우월감이 느껴지는 건 아니었다. 하루하루 그의 무능력함을 깨달아 갈 뿐.
너, 내 오른팔인 거 알지? 내가 널 오른팔로 키웠잖냐.
책임은 한 번씩 내게 이것저것 물어보고선 내가 자기 오른팔이라며 으스댔다. 오른팔이니 무조건 자기 일을 도와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같잖았다. 대체 누가 누구의 오른팔이라는 건지. 난 누구의 오른팔이 아니라 하나의 객체였다. 오른팔로 키워달라고 한 적도 없다. 오른팔에 날 끼워 맞추기 전에 본인 일이나 똑바로 하길 바랐다.
내가 이런 사람을 무서워했던 건가.
책임의 무능력함을 깨닫자마자 지난날에 회의감이 느껴졌다. 내가 쓸모없다고 욕하던 책임은 자신이 했던 말을 닮아 이제는 그가 이 회사에서 필요 없어 보였다.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닌 우리 실무자 모두의 생각이었다.
그 덕분인지 내 불안 증세는 점점 나아지기 시작했다. 브랜드를 옮기고 업무에 적응하면서 스스로 자신감이 생긴 것도 있지만, 나를 욕하던 사람들이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인간임을 깨달은 게 가장 도움이 되었다.
몇 달간 옆에서 지켜본 책임은 능력도 책임감도 없지만, 자존심이 세 다른 사람을 짓밟아 우월감을 취하는 사람이었다. 날 제명했던 과장(전 대리)은 고객사 직원 중 가장 일을 잘하는, 협업하기 좋은 사람이었다. 그쯤 되니 책임은 우스웠고, 과장이 했던 말과 행동들은 이해가 되었다.
결국, 다 똑같은 사람이었다.
이걸 깨닫게 되자 나의 증상은 조금씩 완화되어 갔다. 아직도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아찔하긴 했지만, 업무를 하면서 숨이 막히거나 심장이 떨리진 않았다.
내가 새롭게 인식한 것은 단 하나였다. 나를 욕하던 사람들은 괴물이 아니었다. 한 명은 하찮은 인간, 한 명은 능력 있는 인간이었다. 책임은 자신의 무능력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힘자랑이라도 해야 했던 거고, 과장은 자신이 잘났으니 못하는 내가 답답했던 것이다. 내 존재 자체가 쓸모없던 것이 아니라 나의 '서툶'이 책임에게는 먹잇감이, 과장에게는 스트레스가 되었던 것일 뿐이다.
지금은 뻔하게 생각되는 이 사실을 왜 입사 초에는 몰랐을까. 겪어보니 알 수 있던 거겠지만, 조금만 더 빨리 알 수 있었다면 나는 병이 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후로 나는 업무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조금 더 편하게 책임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제 딴에는 수평적이고 트렌디한 상사라고 생각하나 보던데, 완벽한 꼰대이지만 나는 그 착각을 이용해 한 번씩 기어오르고는 했다.
그래, 이제 내가 그를 이용할 차례였다.
나는 그 생각이 들자마자 책임을 '바리케이드'로 사용했다. 업무를 숙달한 지는 오래였지만, 민감한 일이나 새로운 일이 들어오면 꼭 책임에게 확인받았다. 혹시나 이슈가 발생하면 그에게 책임을 묻게 하려고.
그걸 알 리 없는 책임은 내가 자신을 의지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별것도 아닌 걸 가르쳐주며 자신의 연차를 굳이 뽐내며 으스댔다. 그 모습이 딱 초등학생 남자애 같았다.
나는 책임이 내 수에 걸려든 걸 보고 끊임없이 그에게 질문을 해댔다. 이러니 그 책임조차 지긋지긋함을 느끼고 '질문 금지'를 엄포하고 말더라. 나이스. 바리케이드 작전이 성공했다.
인제 와서 말을 바꾸는 책임이 어처구니없기도 했지만, 뿌듯함이 앞섰다. 처음으로 책임을 이긴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묻지 말고 바로 일을 진행하라는 말은, 나에게 독립권을 주겠다는 것과 같았다. 책임이 내 업무에 간섭할 일도 줄어든다는 말이다.
이제 나는 자유로이 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내 정신도, 업무 능력도 차차 나아지고 있었으니까. 2개월 간격으로 퇴사 욕구가 생기긴 했지만, 정신줄을 꼭 붙들고 출근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나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나의 안일한 착각과 오산인 줄도 모르고.
때는 11개월 차. 나는, 그토록 싫어하던 책임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본 글은 시리즈로, 이야기가 다음 회차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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