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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미 Sep 25. 2021

있지만 없는 아이들-미등록 이주아동 이야기

은유 작가를 좋아해서 강연을 듣고 싶었는데 작년에 '지혜의 바다' 도서관에서 그 소원을 이루었다. 책에 실린 글처럼 강연도 설익지 않고 몸으로 실감한 표현이라  진심이 묻어나서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믿고 읽는 은유 작가의 신간이라  이 책도  망설임 없이 주문을  했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이라는 책 제목에서 암시하는 무거움은 예상을 뒤엎지 않았고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아픈 현실을 마주했다.


책을  다 읽고  즐기는 프로그램 '방구석 1열'을 통해 '가버나움' 영화를 바라보는 전문가의 해석을 챙겨봤다. 영화와 책이 지향하는 질문이 일맥상통해  찹찹한 기분은 쉬이  내려가지 않고 자꾸만 마음 한편에 똬리를 틀며 엉기어 붙는다.  그나마 자인은 영화를 통해 지금의 사태를 알릴 수 있었고 자유가 주어졌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책은 미등록 장기체류 이주아동의 체류자격 부여 제도가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들을 만들어내고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했다.  총 아홉 명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마리나(몽골), 페버(나이지리아), 김민혁(이란), 카림(우즈베키스탄), 달리아(우즈베키스탄) 등 이주아동 다섯 명,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어른들인 이주아동 호준(몽골)의 어머니  인화, 이주인권활동가 석원정, 이주민 이야기를 꾸준히 써온 작가이자 이주인권활동가 이란주, 이주아동을 지원하는 변호사 이탁건이다.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아이들의

평등을 지켜주는 게 공적 지원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

-일본 사회학자 미나 시타 기류


은유 작가는 이 글을 다이어리 첫 장에 적어두고 틈틈이 생각했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미등록 이주아동에 관한 책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귀가 열렸다고 한다.


국내에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20-30만 명, 미등록 이주아동은 2만 명 정도로 추산되며 부모가 유효한 체류자격이 없으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혹은 어느 날 갑자기 법을 어긴 존재가 된다. 당장 추방되는 것은 아니고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의거해 학습권이 주어져 고등학교까지는 다닐 수 있다고 한다.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미등록 이주아동은 공부할 권리는 있지만

살아갈 자격은 없는 모순된 현실에

'있지만 없는 아이들'로 자라나는 것이다."


이 아이들은 그 학교생활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주민(외국인) 등록번호가 없어서다.  본인 명의의 핸드폰 개통이 어렵고, 통장도 만들 수 없으며 , 청와대 견학을 가서도 들어가지 못하고, 봉사 사이트 1365 자원 봉포 털에 가입하지도 못한다.  국민국가에서 신분증 없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기의 명의의 통장 없이 과연 살 수 있을까.  '비국민' 아이들에게 배제와  좌절은 일상이다.  약자 뒤에 가려진 이중의 약자들이다.
                             

"저는 한국에서 유령으로 지내온 거나 마찬가지예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마리나는 한국에서 태어난 몽골 국적 아동이다. 언어장애와 청각장애가 있는 부모를 위해 말을 배우고 24시간 통역을 도맡았고 무엇이든 스스로 처리하며 자랐다. 사회복지사라는 구체적인 꿈을 키웠으나 고삼을 지나면서 강제퇴거 중단을 요청하는 진정을 넣었는데 해결되지 않고 있다. 카림과 달리아는 남매로 카림은 역사 덕후인데 한국사 능력시험에 응시하지 못했다. 달리아는 백석 시인을 좋아하며 시를 쓰지만 대학에 가지 못한다.


페버와 김민혁은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살다가 체류자격을 얻은 경우로 언론에 소개되어 체류자격이 주어졌다. 김민혁은 피케 시위, 국민청원 등 당차고 치밀한 전략으로  0.1퍼센트 가능성에 도전한 교사와 친구 덕분에 난민 인정을 받았다. 이들의 행동은 시민의식을 이끌어냈고 살아있는 교육 현장을 목격한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엄마인 인화의 삶도 처절하다. 그녀도 코리안 드림의 덫에 걸려 25년째 불법체류자다. 다섯 살밖에 안 된 아이를 방에 홀로 두고 일을 다녔으며 미등록 신분이라 추방될 위험에 차별과 괴롭힘을 참고 또 참았다. 한국에서 인내심 하나는 제대로 키웠다는 그녀의 말에  그건 인내심이 아니라 강요된 침묵으로 목소리를 빼앗긴 사람이라는 저자의 말에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그 힘든 삶을 버텼을까.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주민 곁의 활동가들"


이란주 대표는 이주민의 목소리를 실어 나르는 작가다. 한국말이 서툰 한 네팔 여성 노동자가 행려병자로 취급되어 무려 6년 4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던 끔찍한 실화를 담은 <말해요 찬드라>를 써 이주노동자의 처참한 현실을 세상에 알렸다.  이 외에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으며 이주아동들의 편에 서 있다. 우선 이주아동에게 학번 같은 '등록번호'라도 주어져 배움과 복지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이탁건은 재단법인 소속 변호사로 난민. 이주민을 담당하고 있다. 펍의 강제퇴거명령 취소를 끌어냈고  마리나 등 이주아동의 합법적 체류를 위해 힘쓰고 있다.


석원정은 이주인권활동가로 서울시 성동 외국노동자 센터장, 외국인 이주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소장,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을 맡고 있다. 한국에 이주노동자가 들어온 1990년대 초부터 이주노동자 곁에서 일했다. 카림과 달리아 남매, 마리나 등 이주청소년의 체류자격 인정을 돕고 있다.


이들의 안색을 살피고 말을 들어주고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을만큼 가까이에 어른들이 머무는 것이 중요한데, 그자리를 교사와 활동가들이 지키고 있어 참 다행이고 고맙다.                              


"미등록 이주아동을 줄이는 방법은

미등록 노동자의 수를 줄이는 것일 텐데

인권 침해 시비가 없는 방법은

사업주들을 압박해 그들의 고용을 막는 것이다."

     사회학자-박경태  


우리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도 한국에 살 수 있었는 것이다.  저렴한 임금으로 그들을 고용했던 사업주들이 많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버젓이 이뤄지고 한국사람 기준에서 소위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이주민 혐오나 인종차별 이데올로기로 가려지고 묵인되었고, 그렇게 계급적 불평등이 유지되었다.
                             

"나는 이들에게서 운명을 마주하는 힘을 배웠다."


미등록 이주아동의 삶에 가닿음으로써 내가 나임을 증명하지 못해서 애를 먹었던 순간을 위로받았고 , 운명을 마주하는 힘을 배웠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 또한   이 책이 국가와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아이들의 평등을 지켜주는 사회적 토대를 다지는 일에 이주아동들의  목소리가 씨앗이 되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그들이 불안을 베고 잠들지 않도록 '존재의 합법화' 경로가 제대로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기록하는 건

좋은 일도 아니고 나쁜 일도 아니며

그냥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           


은유 작가는 작가의 소명을 다 하고 있는 것 같다.  존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이주민에 관한 기사가  신문에 실리면 눈을 더 크게 뜨고 살펴보게 된다. 나는 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책을 쓰면서 가슴이 답답할 때 부암동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올라 키 큰 나무 밑에 누워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가 반복되는 시 <팔복>을 읊었다고 한다. 슬픔을 말하는 것으로 세상이 조금씩 나아졌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슬픔은 보시가 된다고 하니 우리도 팔복 시를 읊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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