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점 만점에 오늘은 4점
통증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나의 통증은 나만이 느낄 수 있다. 신체화장애는 눈에 보이는 내과적, 외과적인 문제가 없기 때문에, 지극히 환자의 호소에 따라서 약이 처방되곤 한다.
나는 매일 통증을 기록한다. 통증은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객관적으로 숫자로 작성해 보려고 노력한다. 아침, 점심, 저녁 숫자를 기록한다. 바쁜 날에는 평균을 내서 숫자 하나만이라도 적는다. 10점 만점을 이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최악의 통증이라고 했을 때, 0~10점으로 나의 통증을 기록하는 것이다. 4가 넘어가면 나는 울거나, 울다 지쳐 잠에 든다. 나는 요새 3.5일 때가 많았다. 특히 왼쪽 관자놀이인 측두근 쪽이 많이 아팠다. 통증이 계속 있었다. 묵직하게 나의 왼쪽 얼굴을 누르고 있었다. 나의 메인 약인 N약은 나에게 잘 듣는 건지 아닌 건지 잘 모르겠다. 분명 2주 전부터 아침, 점심, 저녁 200mg씩 먹던 것을 300mg으로 늘렸는데도 오히려 더 아프다.
지난 주말, 나는 많이 아팠다. 왼쪽 얼굴이 유달리 아팠다. 왼쪽 관자놀이도, 눈도, 턱도 너무 아파서 무서운 마음에 신경과의원을 찾아갔다. 아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그래도 너무 아프니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내 신경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차라리 문제가 눈으로 밝혀져서 대학병원 신경과에서 또 다른 치료를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병원에서는 간단한 피검사와 신경검사를 받았다. 얼굴에 기계를 올리고, 살짝씩 '찔끔', '찔끔' 여러 곳에 자극을 주었다. 한 5분 정도 진행했다. 그렇게 약하지도, 그렇게 무섭지도 않은 검사였다. 검사 결과는 금방 나왔고, 역시나 이상이 없었다. 의사는 친절했고, 내가 현재 먹고 있는 여러 가지 약에 대해 물었으며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의사는 내 증상이 현재 알고 있는 비정형안면통이라기보다는 삼차신경통에 가깝다고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에서 '삼차신경통'은 칼에 베이는 듯한 통증이다. 나의 통증은 에는 듯한 통증이라기보다는 둔탁하고, 무겁고, 요새는 두꺼운 드릴로 관자놀이를 누르는 듯한 느낌이다. '삼차신경통은 아닌 것 같은데, 뭘까?' 하고 생각했다. 원래 먹고 있는 약에 더해서 먹으라며 받은 약에는 진통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두 가지의 마음이 공존했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 다행이라는 마음과 차라리 무언가라도 나와서 나의 통증을 없앨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라는 두 마음이었다. 안도감과 씁쓸함이었다.
많이 아팠던 나는, 토요일에는 낮잠을 길게, 일요일엔 늦게까지 잤다. 통증을 잊고 싶었다. 통증이 유달리 심한 지난 주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이 너무 좋아서 잠을 더 이상 자고 싶지 않았다. 남편과 피크닉 짐을 싸서 나갔다. 캠핑 의자와 작은 테이블과 유명한 에그타르트 집에서 산 구움 과자들을 챙겨서 옆 동네에 있는 '태화강국가정원'으로 향했다. 잔디밭에 앉아 초록초록한 나무들과 식물들, 그리고 꽃 피운 장미들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산들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왔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통증은 여전히 있었다. 하지만 통증이 그 순간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내 살결을 스치는 상쾌한 바람에 미소가 흘러나왔다.
만일 내가 2년 전, 집 근처 마취통증의학과에서 얼굴로 가는 신경을 끊어버리는 시술도 있다는 안내를 받았을 때, 그 시술을 했다면 산들바람을 내 얼굴 피부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그 병원에서는 목에 여러 번 주사를 놨었다. 해결되지 않는 나의 얼굴 통증에, 세 번째 방문만에 얼굴로 가는 신경을 끊는 시술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의사에게 화가 났었다. 그 이후로 그 병원을 방문하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그 시술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한 치의 아쉬움도 없다. 내 얼굴로 따스한 햇살을 맞고, 바람을 느끼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지!
3년 전, 병원을 전전하다가 한의원에서 들었던 '통증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라는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상담을 받으며 알게 된 나의 깊은 통증의 진원지와 근본원인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근본 원인을 '머리'로 안다고 해서, 몸이 싹 낫는 것은 아니었다. 통증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어떻게 이 통증이 사라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답답했다. 막막했다. 지금도 해결책을 찾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아프니까.
그런데 단 한 가지 내가 알게 된 점이 있다면, 그리고 3년간 아파온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통증과 거리 두기를 하되, 통증을 받아들여보는 건 어떨지에 대한 것이다. 다음 이야기는 통증을 대하는 나의 전략적 자세에 대하여 이야기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