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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혜진 Dec 23. 2021

허물을 벗고

2021-06-08

우연히 동기를 만났다. 2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을 알아보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눈이 마주치고 몇 초가 흐른 뒤 서로를 가리키며 이름을 불렀다. 그리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어서 내가 먼저 그를 알아보았더라면 피했겠지만, 정면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피할 도리는 없었다. 게다가 너무 신기한 우연이라서 이 놀라움을 같이 나누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둘 다 몇 번이나 ‘어이가 없다, 이게 말이 되냐’라는 말을 반복하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고 나니 더 이상 말할 거리가 없었다. 어색한 공기가 나와 동기 사이를 갈라놓고 있었다. 그 애를 어색한 건 아니었다. 그 애와 함께 보냈던 지난 날의 나와 지금의 내가 너무도 달라서, 지금의 내가 그 애와 함께 있어본 적이 없어서 어색했다. 


같은 날, 선배가 사진 하나를 보내왔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도 동방 책상에 둘러앉아 있는 사진 속 풍경이 너무나 익숙했다. 동방의 퀘퀘한 냄새와 시끌벅적 떠드는 소리, 언제나 부풀어 있던 내 마음과 들떠 있는 목소리까지 한 순간에 뇌리를 스쳤다. 하루로 끝난 동아리 유튜브 기획 회의라는데, 영상으로 남아 있다고 해서 보내 달라고 했다. 영상을 보니 더욱 생생하게 기억났다. 


얼토당토않은 말들을 생각없이 내뱉으면서 함께 있는 시간을 시시콜콜한 웃음으로 채워 가던 날들이 여전히 내 마음 한 켠에 잘 보관되고 있었다. 바로 어제 일 같으면서도 굉장히 먼 옛날 같았다. 그때의 내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달라졌으니 말이다. 


지나간 나의 모습이 묻어나는 사람과 사람들 속에 파묻혀 있던 나의 영상을 같은 날 마주하니 기분이 묘했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예전의 기억들이 손에 잡힐 것 같이 가까워지다가 다른 차원에 있는 것처럼 멀어졌다.


코로나, 그러니까 3학년이 되자 학교에 발길을 끊고 정말 가까운 지인하고만 연락을 이어갔다. 사람들 속에 비집고 들어가 있던 내가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많은 것들을 되찾았다. 작은 자극에도 요란하게 반응하던 온몸의 신경이 원래 자리를 찾았고, 사소한 것에도 이리저리 휘둘리던 마음이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누군가 내 손을 잡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더 이상 나를 잡아먹지 않았다. 


그 때를 생각하면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이 떠오른다. 곧 끊어질 것을 알면서도 계속 잡아 당겼던 것은 누구라도 좋으니 날 봐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절실하게 손을 내밀 때마다 도리어 마음은 황폐해졌다. 알게 되는 사람 모두에게 온 애정을 쏟던 그 때 정작 내가 어떤 상태인지는 한 번도 살피지 않았다. 


온 몸의 세포가 다른 사람들에게 온통 쏠려 있던 지난 날의 내가 후회스럽지는 않다. 그 시기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원래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도 서슴없이 해봤다. 


다만 예전의 나를 떠올리면 드는 낯섦과 약간의 창피함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나와 전혀 다른 모습의 나를 마주하는 것은 꽤나 어색하다. 몇 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날 보면 이런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지난 날의 나를 추억하며 나는 또 다시 허물을 벗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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