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매번 '이보나'는 한국이름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폴란드 작가인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는 이미 한국에서 20여 권이 넘는 책을 출간했고 작가 스스로도 '한국은 작가 인생이 시작된 곳'이라고 하는 걸 보아, 그녀의 이름에서 운명을 느낀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작품은 그림책을 처음 접하는 어른에겐 대략 난감하다. 글의 추상성은 그나마 어찌어찌 고리를 연결해 보겠는데, 그림의 추상성은 개인적으로 생전 처음 듣는 외국어를 접하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무엇을 그렸는지는 알겠지만, 그림이 결코 형태만을 담고 있지 않다고 신호를 보내니 숨겨진 그것을 읽어야 한다는 난관을 만나게 해 준 작가이기도 하다.
'금이 생겼어요'(2024)와 '문제가 생겼어요'(2010), 둘 다 읽은 사람이라면 두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으며 13년의 시간(심리적 시간으로 해석해 보자)이 흐른 뒤의 이야기라고 짐작할 수 있다. 두 책의 인물이 같은 사람일지는 모르겠지만 관계는 모녀라는 점이 공통이고, 두 이야기 모두 다리미 때문에 생긴 사건으로 시작된다.
내가 눈여겨본 것은 이야기의 주요 화자가 '문제가 생겼어요'에서는 '아이', '금이 생겼어요'에서는 '엄마'라는 점이다. 작가가 쌍방의 인물 중 '상대적 약자'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린 딸과 어른 엄마의 관계에서 어른 딸과 늙은 엄마의 관계로 변하는 사이, 역학적 관계의 변화가 가져온 이야기.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이야기, 돌고 도는 이야기, 그래서 내게는 더 무거운 이야기였다.
엄마는 전과 같지 않은가 보다. 한 번의 실수가 아니었을 거다. 본의가 아니게 어긋나고 틀어지는 시간과 경험이 쌓일수록, 노력해도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만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아픔이 있었을 거다. 그렇게 엄마는 자책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기억을 끌고 와 미래를 재단했다. 끝이다!
네가 원했던 것을 줄 수 없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었지.
엄마처럼 되고 싶어 하면서도 엄마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고 싶은 딸, 딸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었지만 딸이 원했던 것을 줄 수 없었던 엄마. 나와 우리 엄마도 그랬다. 그리고 나와 내 딸도 그렇다.
엄마의 빈정거리는 말버릇을 끔찍이 싫어했으면서도, 아이와 실랑이를 할라치면 이길 심산에 이죽거렸다.
사춘기를 심하게 보냈던 나는 아이의 사춘기를 잘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이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요동치는 감정이 마음을 삼키는 날이 허다했다.
정말 잘해보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꼬여가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세상이 갈라진 거야. 너는 나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지.
완벽하고 싶었던 내가 문제였다.
완벽한 엄마를 바랐던 나의 문제였고,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던 나의 문제였다.
우리는 모두 애썼지만, 때론 타이밍이 나쁘기도 했고, 때론 준비가 부족하기도 했고, 때론 마음이 앞서가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실수하고 실패하면서 여기까지 온 거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거다.
그러니 이제, 내가 기대했던 결과는 잠시 미뤄두고
지난 시간, 그 안에 담긴 땀과 눈물과 기억나지 않는 행복한 순간을 복기하려고 한다.
금 간 자리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결국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를 문제가 아니게 만들 수 있는 건, 결국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다.
한 번 간 금이 번져가지 않도록 막는 건, 결국 나에게 달려있다.
더 이상 과거가 내 미래의 관계를 발목 잡는 걸 내버려 두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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