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단 좀 열라 뛰어보자
때는 1988.
올림픽으로 전국이, 특히 서울이 마구 뜰썩였던 그 해에 J는 종로학원에서 재수 중이었다.
앞서 '달리기와의 오랜 악연 2'에서 말했듯
입시에서 낙방을 했으니 갈 곳은 재수 학원밖에 없었다.
당대 명문인 종로학원이나 대성학원에 가려면 시험을 보고 합격을 해야 했다.
지금과는 달리, 대성보다 종로가 컷이 더 높았고 더 명문이었다.
명문이라 해서 시설이 좋거나 뭔 특별한 노하우가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니다.
서울대를 비롯, 좋은 대학에 많이 합격시키면 명문이다.
수강생 컷이 더 높으니 10개월 후 명문 대학에 더 많이 합격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한 번 제대로 떨어져 본 J로서는
종로학원 합격이 마치 대학 1차 합격이라도 되는 듯 고마웠다.
2월 중순경부터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종로 6반.
문과가 앞반이고 이과가 뒷반이었다.
앞반부터 아래층에 배치되었기에 J가 속한 6반은 1층이었다.
음.....말이 1층이지 사실상 지하다.
들어가는 입구는 1층이었지만 입구 외엔 모두 지하인 특이한 구조여서
교실이나 복도에 창문이 하나도 없다. 정말 하나도 없었다.
입구 가까이 위치한 화장실에는 창문이 있었다. 창문에 바로 붙어 옆 건물 담이 있긴 했지만.
제대로 된 창문은 2층부터 있었다.
이렇듯,
J를 비롯한 재수 6반 동기들은 거의 10개월 동안 지하에서 지냈던 것이다.
당시 종로학원 1층이 얼마나 어김없는 지하였는지 증명할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학원 전체가 정전된 적이 있다.
교실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불이 꺼지더니 사방이 깜깜해졌다.
순식간에 칠흑이 됐다.
애들 말소리는 들렸지만 진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깜깜한 세상은 태어나 처음 겪었다.
모두들 웅성웅성 어쩔 줄 몰라하면서 시간이 제법 흘렀다.
방송이 나왔다.
정전이 됐는데 복구에 시간이 걸리니 학생 여러분들은 모두 귀가하라고.
방송은 들었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나갈 길을 찾기도 어려웠다.
가방도 챙길 수 없었다.
웅성웅성 망설이던 와중에 어디선가 플래시를 비췄는지
뭔가 조금 보이기 시작해서 모두들 귀가 준비를 서둘렀다.
교실 뒤에 있는 문 두 개를 누군가가 열어서
복도로부터 옅은 불빛이 들어왔던 것 같기도 했다.
나오면서 돌아본 눈에 들어온 칠흑 같던 교실을 J는 지금도 기억한다.
학원의 어둠과는 대조되게 바깥은 햇살 충만한 초여름 날이었다.
눈이 부셨다.
아, 얼마 만에 만나는 햇살인가!
감옥에 있던 재소자가 출소할 때 기분이 이럴까 싶었다.
대낮 밝은 햇살을 만난 J는 그 소중한 휴가를 그냥 보내기 너무 아쉬웠다.
이대 앞에 간다, 대학로에 간다, 서울역에서 기차 타고 근교에 간다 등
주변에서 많은 제안과 말들이 있었다.
하지만 고2 이후의 잦은 음주가 낙방의 주 원이이라고 판단한 J는,
잘못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재수 기간만큼은 흠결 없이 보내고 싶었다.
그래! 흠결 없는 재수, 한 번 해보자!!!!
집으로 향했다.
도시락을 집 근처 놀이터에서 까먹고는
벤치에 앉아 멍 때리며 두어 시간 보내고는 집으로 갔다.
어쨌거나..............
재수 기간 동안 J가 가장 노력한 것은 자신을 좀 바꿔보는 것이었다.
그 첫째가 달리기였다.
언제나 느리고 느긋했던 생활 태도가
학력고사 날 전력질주 지각이라는 참사를 불러온 것이라고 나름 판단했던 것이다.
그 교정 방법은 매사에 열라 뛰는 것, 느긋함을 버리는 것!
그리하여 J는 재수 시절 내내 횡단보도만 보이면 뛰었다.
가서 기다리더라도 일단 뛰어가고,
신호가 간당간당하면 당연히 다다닥 뛰어서 건너고.
이런 작은 교정이 자신을 바꾸고 태도를 바꿔서 하늘도 감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참 지나 J는 이런 생각도 결국 스스로를 괴롭히는,
쓸데없는 프레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 10개월 내내 참 많이도 뛰어다녔다.
덕분에 중고등학생 시절 푹 쪘던 살이 좍좍 빠져서
재수 시절 내내 43kg이었다.
제일 싫은 달리기를 굳이 기꺼이, 열심히 해서
스스로를 바꾸려는 노력이 먹혔는지는 모르나,
재수는 성공했다.
허나, 달리기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더 커졌다.
합격 이후 달리기를 끊었다.
뛰다 보면 재수 시절의 긴장과 불안이 몰려오기 때문이었다.
숨이 차고 심장이 헐떡거리는 느낌이 너무너무 싫었다.
서두르고 달리는 생활, 긴장과 불안의 삶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후 지금까지
비록 그리 죽어라 달리지는 않아도 되었으나,
언제나 종종거리며 무척이나 서둘러야 하는 날들로 가득했다.
시간에 쫓기는 삶은 늘 지속됐다.
느긋함은 고3까지였다.
1988년 2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10개월의 달리기를 끝으로
달리기와 친해지려는 1차 시도는 결국 실패로 마무리됐다.
재수는 성공하였으나
달리기를 더더더 싫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