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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범 Oct 26. 2024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또 한 번의 여름이 지나간다. 이른 점심을 먹고, 어느덧 선선해진 바닷바람을 맞으며 앉아있다. 시퍼런 물 밖으로 숨을 참으며 뛰쳐나온 물고기를 갈매기가 낚아챈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한다. 우리는 수많은 죽음의 결과물이다. 유기물 덩어리인 나 또한, 그 끝에서는 다른 생명의 결과물로 돌아가기 마련일 것이다. 우리는 왜 태어나서,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끝없이 팽창하는 우주처럼, 답이 없는 물음이 머릿속에서 펼쳐진다.


 나는 사후세계니, 영혼이니 하는 거창한 말들을 믿지는 않는다. 그저, 태어났으니 살아갈 뿐이고, 감각을 느끼니 본능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죽음이라는 생명활동의 중단 후에는 우주의 공허와도 같은 무의 영역이 나를 기다릴 것이기에, 죽음도 삶도 내게 그리 큰 영감을 주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나름 삶을 열심히 살아간다. 각자 저마다의 목표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종종 삶이 덧없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인생의 다음 목표가 있는 사람들에 비해, 내 삶은 그저 동력을 잃고 넓디넓은 우주를 떠도는 탐사선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마치 누군가 나를 영겁의 연옥에 던져놓은 것처럼, 끝없이 길고 의미 없는 날들이 펼쳐져 있었더랬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삶은, 사람을 나이 들게 한다.


 그도 그럴 듯이, 최근 내 삶은 안정적인 궤도를 타고 하염없이 공전하는 위성과도 같은 삶이었다. 하루의 반을 배낭을 메고 걸어 다니는 대신 사무실에 앉아 삶을 영위하기 위한 월급을 받고, 낯선 여행지보다 친숙한 곳들을 선호하고, 즉흥적인 모험보다는 계획된 길을 걸어가는 삶. 그 속에서 나는 방향을 잃은지도 모른 채 무작정 걷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익숙하고 평탄한 길은 나로 하여금 권태를 불러일으키고 시간이 주는 쾌락을 점점 무디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길을 다시 벗어나고 싶지는 않았다. 환경의 변화도 매일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 일상이 되고, 마찬가지로 지겨움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스쳐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러한 '늙어감'은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는 '나 자신'을 탓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기회가 생겨 바다로 내려오게 되었다. 죽기 전 꼭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였던 바다 옆에 살기. 안전하게 삶을 영위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길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지방 발령을 지원했고 다행히 바라던 대로 발령을 받을 수 있었다.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나니, 내가 걸어온 길들을 되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삶을 살면서 그리 거창한 계획을 세우는 편은 아니었다. 시험 점수에 맞추어 대학을 가고, 시간적 여유가 생겨 배낭을 메고 세계여행을 다녔고, 다른 나라 친구들의 집에서 그들의 삶을 엿보다 보니 외국에 살아보고 싶어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고, 내가 소개한 여행지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며 여행사에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에 여행사에서 일을 하고, 대학을 졸업하니 내 한 몸 건사해야겠다는 생각에 회사를 다니고. 그냥 내가 걷던 길에서 다른 길이 보이면 즉흥적으로 이동하는 편에 가까웠다. 수많은 갈림길을 거쳐온 끝에 나라는 사람이 있었다. 끝없는 노화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찾아가고 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게 할지언정 나아가는 방향을 더 명확하게 알게 해 주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난 뒤에도 사실 내 삶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길 위에 있고,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아마, 길이 끝나고 절벽이 펼쳐지는 순간까지 그 답을 찾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러나, 방향감을 상실하고 정처 없이 걷던 내게 한 가지 나침반이 생겼다는 기분은 든다. 나는 오늘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고, 지금의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길을 나아가다 보면 어느 날 또 다른 갈림길이 나의 선택을 기다릴 것이다. 뒤를 돌아봤을 때 후회 없는 선택이었음을 확신할 수 있도록, 지쳐서 중간에 주저앉는 일이 없도록, 지나가는 여름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자. 바닷물이 어느덧 내 발치까지 다가왔다. 또 하루가 지나가고,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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