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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발 Sep 04. 2023

축구는 비가 와도 합니다.

그깟 공놀이:직장인은 축구를 얼마나 볼 수 있을까? 12화

회사를 다닐 때 점심시간에 주로 나눴던 대화 주제 중 하나는 나는 주말에 어디를 가는가였다. 축구를 보겠다고 주말에 전국을 다니는 내가 회사 사람들에게는 꽤나 신기한 사람으로 보였던 것 같다. 장마가 한창이던 때, 이번 주말에는 가까운(내 기준에서는 가깝다.) 수원으로 축구를 보러 가겠다 하니 비가 오는데 축구를 하냐는 질문에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축구를 좋아하고 즐기는 내게 비가 오는 것과 축구를 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싶었지만 축구에 관심이 없고 모르는 분들에게 비가 오는데 축구를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내가 ‘축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천재지변으로 인해 안전상에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해요.’라고 말하자 다들 굉장히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프로축구보다 프로야구가 인기가 더 많아서 그런 것일까? 우천취소가 있는 야구처럼 축구도 비가 오면 안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위에 언급했듯이 축구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경기가 취소되는 경우는 적지만 나는 비 오는 날 경기장을 가 본 경험이 거의 없다. 기억을 아무리 되짚어봐도 한두 경기가 전부인 것 같다. 축구팬인 나도 비 오는 날의 직관은 쉽지 않다. 특히 비가 많이 내리는 한여름 장마철은 더더욱.


난 기본적으로 옷이나 내 몸이 젖는 게 싫다. 그래서 물놀이도 썩 즐기지 않는데 비를 맞는 건 당연히 싫어한다. K리그 경기장들 중 지붕이 있는 경기장도 많지만 지붕이 없는 경기장도 많다. 심지어 지붕이 있어도 복도 쪽 자리가 아니라면 바람의 방향에 따라 비를 피하기 어려운 자리도 대부분이다. 그런데 오래된 종합운동장이나 광주의 축구전용구장은 조금의 비를 막아줄 지붕도 없다. 고척돔처럼 돔구장이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런 곳이 없으니 젖는 걸 싫어하는 내게는 피하고 싶은 날이다.


비 맞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은 내 개인적인 이유지만 축구적인 이유도 있다. 대부분의 K리그 경기장들은 경기장의 배수 시스템이 굉장히 안 좋아서 비가 많이 오면 경기장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기거나 비가 그쳐도 이로 인해 많은 잔디가 손상되어 공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아 경기력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비가 많이 오는 날의 경기는 패스나 슛을 한 공이 중간에 멈춰버리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만큼 경기는 지루해지고 재미가 없어진다.


우리 팀의 승리를 응원하기 위해서라면 날씨 따위야 참을 수 있는 열정이야 있지만 여름의 더위와 3월과 10월, 11월의 추위 그리고 비는 ‘오늘은 그냥 TV로 보자.’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래도 이전 두 경기를 집관했고, 수원FC의 홈구장 수원종합운동장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아서 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수원으로 향했다.


조금만 와라 빌며 수원종합운동장으로 향했다.


길이 너무 막히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서울을 빠져나가는 길이 막히지 않았기에 수월하게 수원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킥오프 시간까지 여유롭게 도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상상도 못 했던 문제가 우비를 사러 들린 평촌 롯데백화점에서 발생했다.


경기가 진행되는 두 시간 내내 우산을 들고 있는 건 팔도 많이 아프고 다른 사람들의 시야에 방해도 되는 문제가 있어 우비를 입기로 했다. 경기장을 가는 길에 찾은 다이소에 가기 위해 백화점 주차장에 주차 후 여유롭게 쇼핑을 즐기고 다시 경기장으로 떠나기 위해 주차장을 나서려는데 좁은 주차장 대비 많은 차들로 인해서 정체가 발생했다. 그런데 이 정체가 진짜 상상이상으로 심해서 백화점 주차장을 빠져나오는데 30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고 우린 결국 경기가 시작되고 나서야 경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막혔다.
흐리다 흐려.


우비에서도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나는 안경을 쓰는데 우비의 모자가 안경과 거대한 내 머리를 커버해주지 못해서 안경이 고스란히 비에 노출되었다. 안경이 없으면 시야가 좋지 않은 수원종합운동장에서 난 눈 뜬 장님처럼 아무것도 볼 수 없어서 결국 트렁크에서 우산도 챙겨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 와보는 수원종합운동장은 다른 종합운동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야와 구조였다. 지붕이 전혀 없어서 비를 그대로 맞아야 했지만 이건 홈팬들과 다르지 않은 환경이고, 원정석 쪽에도 매점이 있어서 편하게 이용할 수 있으니 나름 갖출 수 있는 부분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다만 가변석 덕분에 더 좋은 시야에서 경기를 관전할 수 있는 홈 서포터들의 시야는 부러웠다.


비가 오는 날씨에는 관중수가 현저히 줄어든다.
종합운동장의 시야는 정말 불편하다.


수원FC 경기는 광주가 원정을 오지 않아도 한 번쯤은 오고 싶었을 정도로 관심이 가는 팀이었다. 특히 수원FC 흥행에 큰 도움이 된 이승우의 플레이를 실제로 보고 싶었던 이유도 컸다. 우리 광주와 같은 시민구단임에도 이승우, 윤빛가람 같은 스타플레이어도 보유할 수 있는 재정능력은 리그에서 가장 돈 적게 쓰기로 소문난 광주팬에게는 너무나 부러운 요소였다. 게다가 그 선수들이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많은 관중들을 즐겁게 해 주고, K리그에서 흔치 않은 지역더비를 1부 리그에서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수원FC의 흥행카드였다. 이렇게나 와보고 싶었는데 왜 그동안 한 번도 오지 않았을까 싶었다.


경기 중에만 이라도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했지만 빗줄기가 약해지다 강해지다 할 뿐 경기가 진행되는 두 시간 내내 비는 끊임없이 내렸다. 우비도 입었고, 우산도 있어서 비에 젖지는 않았지만 맑은 날의 경기와는 확실히 달랐다. 뭐랄까… 흥이 덜 난다고 해야 할까? 전반전 중간에 매점 가다가 빗물에 미끄러져 크게 넘어진 탓에 쪽팔림과 통증으로 인해 경기에 제대로 집중을 못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전반전 두현석의 환상적인 발리슛으로 한 점 앞서나간 광주는 이 득점을 잘 지켜내며 0:1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7월 한 달 동안 승리가 없던 광주의 오랜만에 기록한 값진 승리였다. 많은 원정팬들이 수원까지 찾아왔고, 열악한 구단 인프라 때문에 비가 오면 제대로 된 훈련조차 하지 못하는 팀이 힘을 합쳐 승리를 거두어 서포터들도 행복했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정효 감독님도 선수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졌다.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경기가 끝난 후 선수단 버스가 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두현석을 가장 좋아하는 자칭 악개(악성개인팬) 여자친구를 위해 퇴근하는 두현석 선수를 기다렸다가 사인을 받기로 했다. 생각보다 긴 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두현석 선수가 모습을 보였고, 이런 적은 처음인지라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큰 소리로 선수를 불러서야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열심히 유니폼을 잡아당기며 사인을 할 수 있게 노력해 보았지만 이상하리만치 유니폼이 밀리면서 사인이 제대로 되지 못했다. 힘겹게 사인을 받을 수 있었지만 계속 덧대어진 펜 때문에 사인이 좀 엉망이 되었다. 우리는 개의치 않았지만 두현석 선수는 우리에게 다음에 경기장에 찾아오면 유니폼을 선물하겠다 약속했다. 어떻게 유니폼을 준다는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지만 그저 우리는 사인을 받고 함께 사진을 찍어서 좋을 뿐이었다.


항상 피해왔던 비 오는 날의 축구 경기. 적지 않은 비 때문에 옷도 발도 젖었고, 경기를 보기에도 쉽지 않았으며, 넘어져 다치기까지 했지만 승리를 했다. 그거면 더 넘어지고 더 젖어도 상관없다. 승리와 승점 3점. 그거면 된 거다.


다음에 또 비 오는 날에 경기가 있다면 얼마든지 갈 생각이다. 우리가 관람하기 힘든 환경 속에서 열심히 응원한다면 선수들 역시 뛰기 어려운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경기장을 뛰어다닐 테니 말이다.


여러분, 축구는 비가 와도 합니다.





1R 수원삼성 0:1 광주FC / 승

2R 광주FC 0:2 FC서울 / 패

3R 전북현대 2:0 광주FC / 패

4R 광주FC 5:0 인천유나이티드 / 승

5R 광주FC 2:0 수원FC / 승

6R 포항스틸러스 2:0 광주FC / 패

FA컵 3라운드 광주FC 2:1 부산아이파크 / 승

7R 대구FC 3:4 광주FC / 승

8R 광주FC 0:0 강원FC / 무

9R 광주FC 0:1 제주유나이티드 / 패

10R 울산현대 2:1 광주FC / 패

11R 광주FC 0:0 대전하나시티즌 / 무

12R FC서울 3:1 광주FC / 패

13R 광주FC 0:2 대구FC / 패

14R 인천유나이티드 1:1 광주FC / 무

15R 수원FC 0:2 광주FC / 승

16R 광주FC 4:2 포항스틸러스 / 승

17R 광주FC 2:1 수원삼성 / 승

18R 대전하나시티즌 1:1 광주FC / 무

19R 광주FC 2:0 전북현대 / 승

20R 광주FC 0:1 울산현대 / 패

21R 강원FC 1:1 광주FC / 무

22R 제주유나이티드 0:0 광주FC / 무

23R 광주FC 1:1 대구FC / 무

24R 수원FC 0:1 광주FC / 승


번외 경기

K리그1 8R FC서울 3:1 수원삼성


2023 시즌 광주FC 직관 성적

12경기 4승 4무 4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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