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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붕 Nov 11. 2021

해발 5276m를 오르다-등반

쓰꾸냥산四姑娘山등정기

*여행시기: 2021.10.1.-10.6


쓰촨성 여행의 베이스캠프, 청두 도착


출발 당일 탑승 직전, 공항에서 갑자기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탑승은 예정대로 진행되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기내에서   시간을 기다린 끝에 겨우 이륙할  있었다. 늦을까봐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팀원들과의 약속 시각인 7 전에 호텔에 도착하여 예정대로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혼자 왔고 더군다나 외국인이니 미리 얼굴도 익히고 분위기 파악도 하고 싶은 이유에서였다. 메뉴는 청두 답게 훠궈. 꼬치와 맥주를 곁들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야외활동이라는 취미가 같아 금세 친해질  있었다. 배불리 먹은 뒤 호텔로 돌아가 늦게 호텔에 도착한 팀원들까지 모두 함께 모였다. 팀원 12명과 가이드 2명, 총 14명이 앞으로 5박 6일을 함께 할 동료들이다. 사전 미팅 겸 이야기를 나눈 뒤 다음날 새벽 기상을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

배터지게 먹은 훠궈.

쓰꾸냥산을 가기 위해서는 청두에서 '아바장족자치주阿坝藏族自治州 쓰꾸냥쩐四姑娘镇(镇은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중 하나로, 우리나라의 읍 정도에 해당)'까지 차를 타고 네 시간 반 정도 가야 한다. 국경절 연휴라 차가 막힐 것을 대비해서 아침 7시에 출발했으나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 법. 역시 중국 최대 연휴답게 청두 외곽부터 차가 막히기 시작했고,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쓰꾸냥쩐에 도착했으니 예상 소요 시간의 딱 두 배인 9시간이 걸린 셈이다. 호텔에 짐을 풀고 동네 구경 및 개인 물자 보충, 저녁 식사를 하며 남은 시간을 여유롭게 보냈다. 이미 해발 3000m까지 올라왔기에 날씨는 제법 쌀쌀해졌고, 몇몇 팀원들에게선 고산병 증세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밤이 되자 나에게도 약간의 고산병 증세가 찾아왔는데, 자려고 누웠는데 호흡이 약간 힘들다거나 잠자다가 가끔 두통을 느끼는 등의 비교적 미약한 정도였다.

하늘과 골목길의 조화가 아름다웠던 쓰꾸냥쩐.


해자구海子沟 입구 - 해발 3800m 캠프 도착(1일 차 야영) - 해발 4200m 캠프 도착(2일 차 야영) - am2:00 기상 및 준비 - am3:00 이봉二峰등반 시작 - am7:50 정상 도착 및 하산 준비 - am 11:00 캠프 도착, 휴식 및 풍경구 하산 준비 - pm 16:00 하산 완료, 호텔 도착


몰랐던 사실과, 말에 대한 단상


아침에 일어나 국수를 먹는 것으로 트래킹 첫째 날 일정이 시작되었다. 걸어야  거리가 제법  하루이므로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각종 건식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산에서 2 3일 동안 사용할 각종 짐들은 전날  驼包(말이 싣고 가는  짐가방. 직역하면 ‘낙타 가방’)에 넣어 말에 실어 보내고, 당일 사용할 짐만 메고 간다.


일반 관광객의 경우 입구 도착  표를 구입하고 관광할 풍경구(창평구长坪沟,해자구海子沟,쌍교구双桥沟) 골라  입구로 들어가면 되지만, 등반의 경우 일반 입구가 아닌 ‘야외 활동 전용 입구户外活动管理中心 들어가야한다. 사전에 가입한 여행보험 번호 기입 및 각종 동의서 서명 등 여러 가지 절차가 상당히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정도면 개인이 자유여행으로 오기 힘들  같아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풍경구 관광은 자유여행이 가능하지만 최종 베이스캠프에서 정상에 오르는 등반은 반드시 현지의 쓰꾸냥산 소속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편의를 위해 여행사를 택했지만 실은 이것 외엔 방법이 없었던 셈이다.


또 다른 몰랐던 사실은 10월 현재 내가 오를 이봉二峰에는 눈이 없다는 것. 해발 5000m의 봉우리엔 언제나 눈이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오고 나서야 쓰꾸냥산의 적설기는 11월-5월 정도이며, 10월엔 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들었을 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정확히 이틀 후 새벽, 고산지대의 매서운 칼바람과 높은 고도를 온몸으로 실감하며 정상으로 힘들게 한 걸음씩 발을 떼는 동안 '눈이라도 없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으니 사람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말에 실어보내는 개인 물품 및 팀 전체의 이틀치 식량 및 각종 물건들.
사람이 가는 동안 말도 짐을 싣고 해발 4200m까지 올라간다.

풍경구에 입장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준 것은 수많은 ‘말’이었다. 짐을 잔뜩 쌓아 올린 말, 사람을 태우기 위해 기다리는 말… 정상 등정을 위해 산속 캠프에서 이틀 밤 야영을 해야 하므로 우리 팀을 포함한 대부분 사람들은 말을 이용하여 짐을 옮긴다. 사람과 말이 비슷한 속도로 함께 올라가는 셈이다. 그런데 걷다 보니 이 길이 만만치 않다. 이미 해발고도가 높기 때문에 금세 숨이 차오르기 일쑤에다 경사가 조금만 높아지면 몇 배로 힘들기 때문이다. 걷다 보니 내 짐을 짊어진 말에게 미안하고 측은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내 배낭 하나도 이렇게 힘든데 말은 어떨까 싶어서.


그들과 함께 걸으며 ‘가축’에 대해 생각해본다. 본디 야생동물이었던 것을 길들여 인간에게 유용하게 이용하는 동물. 그러므로 애초부터 그런 목적으로 낳고 기르는 동물. 그때 마침 사람을 태운, 아직 몸집이 자그마한 어린 말이 내 옆을 지나갔다. 이 말들은 어릴 때부터 무수히 긴 시간 동안 이 산을 몇 번이나 오르고 내릴까. 사람이 무거운 짐을 제 몸에 하나 둘 얹는 동안 가만히 기다리면서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사람과 짐을 싣고 오르내리다가 죽어서는 고기까지 내어주는 그들의 삶이 기구하면서도, 고맙다. 그래서 길을 걷는 동안 마음 한 켠이 묵직해졌고, 그들에게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해발 3800m, 4200m에서 이틀간의 야영


해발고도가 상당히 높기에 그 누구도 서둘러서 걷지 않는다. 천천히 걸으며 창조주가 하나씩 촘촘하게 박아 넣은듯한 나무의 군락을 만끽하고, 들판 위로 저마다 색을 뽐내며 조화를 이루는 각양각색의 식물에 감탄하며, 그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함께 자연을 누비고 싶은 마음을 담아 흘려보내 본다. 하나라도 놓칠세라 카메라에 자꾸만 손이 가는 건 당연한 일.

오후 4시쯤 해발 3800m의 야영지에 도착했다. 이미 도착한 다른 팀들은 맞은편에 텐트를 설치하는 중이었고, 우리 팀도 근처 평평한 곳에 자리 잡아 야영할 준비를 시작했다. 말에 싣고 온 짐을 넘겨받아 짐 정리를 하고 쉬는 동안 가이드는 저녁 준비에 여념이 없다. 물이 끓고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몸을 따뜻하게 녹인 후 저녁 식사를 기다리며 카드 게임으로 무료함을 달래보기도 한다. 고산지대의 쌀랑한 날씨가 웃음으로 제법 훈훈해질 때쯤 완성된 저녁 식사는 그야말로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만찬'이었다. 산 아래였다면 그저 평범했을 중국식 한 끼 식사는 4년 중국 생활 중 최고의 식사가 되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사방이 칠흑과 같은 어둠에 덮였다. 추위를 피해 재빨리 침낭 안에 몸을 뉘이니  어떤 호화로운 침대도 부럽지 않을 만큼의 푹신함과 편안함이 온몸을 감싸 왔고, 그제야 하루 종일 걸었던 몸이 쉬겠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마침 텐트를 가볍게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를 잠동무 삼아 눈을 으니 금세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해발 3800m 캠프에서 야영 1일차. 텐트를 설치하고 준비하는 동안 가이드는 저녁을 준비한다.
만국 공통 가드게임. 말은 안 통해도 게임 룰은 다 통한다.
카드게임을 하는 동안 저녁 식사가 완성되었다. 그 무엇보다 맛있었던 저녁 식사.


트래킹 둘째  아침. 가볍게 아침을 먹은  짐을 꾸려 말에 먼저 실어 보냈다. 어제 고산병으로 힘들어했던 팀원  명은 고민 끝에 이후 일정을 포기하고 먼저 내려가서 쉬기로 결정했다. 아쉽지만 건강이 우선이기에  밑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그녀를 보냈다.  날은 이동 거리가 멀지 않기에 캠프 근처 경치 좋은 곳에서 단체 사진과 각종 개인 사진을 찍으며 여유로운 오전을 보낸  트래킹을 시작했다. 400m 올라가면 되니까   아닐 거라는 오만한 생각은 급경사를 만나자  들어갔는데, 가이드는 '정상 등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힘들다고 징징대는 우리에게 겁을 주었다. 거친 숨을 내쉬며 4200m 야영지에 도착하니 이미 설치된 몽골식 게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발고도가  높아진 만큼 바람이 세고 춥기 때문에 텐트보다 훨씬 따뜻하고 튼튼한 게르에서 자기로  .(물론 건너편엔 텐트에서 자는 팀도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을 꼽자면 바로 '화장실 가는 '이었다. 야영지에  하나 있는 공용화장실은 우리 게르에서 시냇물을 건너  50m라는  길을 걸어 올라가야만 했다.  걸음만 가도 숨이 찬데 화장실까지 올라가려니 어찌나 힘들던지. 게다가 몸을 녹이기 위해 따뜻한 물을 자주 마시다 보니 화장실 가겠다는 신호도 잦아 여러  거친 숨을 내쉬며 화장실을 가야만 .

트래킹 둘째날 숙소였던 해발 4200m의 게르. 해발고도가 높아져서 주변이 온통 풀과 돌 뿐이다.

휴식 후 오후 5시쯤 이른 저녁을 먹었다. 가이드는 새벽 2시에 일어나야 하므로 늦어도 7시쯤 잠을 잘 것을 권유하였다. 다들 새벽에 바로 출발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뒤 침낭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지만 이 날 나는 거의 잠들지 못했다. 내가 가져갔던 침낭의 성능이 지나치게 좋았던 탓에 너무 더웠고, 드디어 꿈꿔왔던 정상 등반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설렘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다 함께 자니 편하지 않았던 탓인지 도무지 잘 수 없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침낭에서 뒹굴거리다 보니 어느새 새벽 2시. 모두 일어나서 저마다 등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세수를 할 수 없어 대충 물티슈로 얼굴을 닦고 크림과 선크림만 바르고 가방을 챙겼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등반을 하기 위해 억지로 가이드가 가져온 빵과 죽을 먹으며 설명을 들었다. 새벽 3시에 출발하고, 반드시 아침 8시 반 전에는 정상에 올라야 하며, 이 시간 이후에는 무조건 내려가야 한단다. 이유를 물어보니 낮에는 기상 변화가 심하여 가장 안정적인 새벽에만 등반을 허가한 규정 때문이라고 한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헤드렌턴 착용까지 마쳤을 무렵, 세 명의 팀원이 결국 등반을 포기했다. 알고 보니 밤새 고산병으로 고생을 했고, 새벽에 일어나니 도저히 갈 수 없는 몸상태였던 것이다. 팀원 12명 중 8명과 가이드 2명, 총 10명만 등반길에 올랐다.


인생 최고의 등반


내가 밟았던   가장 높은() 곳이며, 잊지 못할 최고의 경험임과 동시에 최고의 난이도였던 이번 등반은 무엇하나 보이지 않는 깜깜한 암흑 속에서 시작되었다. 앞서가는 사람들의 불빛이 한데 모여 내가  길을 알려주고, 나의 불빛에 뒷사람이 의지하며  발자국씩 앞을 향해 나아갔다. 곧이어 급경사가 시작되고 조금씩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하면서 다리에 무거운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컨디션 조절을 하면서  박자에 맞춰 천천히 올라갔겠지만 여기에선 그럴 수가 없었다. 혼자 쉬자고 주저앉아버리면 뒤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팀에서 이탈될  있어 힘들어도 참고 팀원들의 속도에 맞춰 오르는  외엔 방법이 없었다. 중간중간 쉬어갔지만  몸을 매섭게 때려대는  바람에 금세 체온이 떨어지므로 그전에 서둘러 다시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위로 오를수록 내려가는 기온과 세기를 더해가는 바람 때문에 가이드는 버프와 모자로 얼굴과 귀를 최대한 가리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꼭지처럼 콧물이 물처럼 줄줄 흘러나왔다. 봄가을용 등산 장갑은 점점 차가워지는 손가락을 위해 두터운 겨울장갑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사람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우리 팀 2 역시 너무 힘들었는지 결국 등반을 포기하고 내려갔다. 남은 팀원은 6.

 

사천 미터 후반대부터는 체력과 정신력의 싸움이었다. 생전 처음인 고산에서의 야간 등반, 이로 인한 한계에 다다른 것만 같은 체력과 호흡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머릿속을 지배하던 딱 한 문장, '여기까지 왔는데 내려갈 수 없다'였다. 마지막 정상 등반 때엔 줄에 의지하여 암벽을 올라가야 하는데 몸에 힘이 빠져 한계임을 느끼며 '못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거의 다 왔다"며 뜨거운 물 한 잔과 빵을 건네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가이드 덕분에 마지막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오전 7시 50분, 한없이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던 정상에 드디어 도착했다. 어둠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뿌연 연개 때문에 사진으로 봐 왔던 뷰는 아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드디어 도착한 쓰꾸냥산 이봉 5276m.  올라온 고생이 잊혀질만큼의 감동적인 순간이다.

빨리 내려가라며 등을 떠미는듯한 강풍과 추위에 사진을 여러  찍을 겨를도 없이 다시 장비를 챙겨 서둘러 하산하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 더욱 경악의 연속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대낮에 길을 보면 오를 엄두가   만큼, 차라리 새벽에 아무것도  보여서 오를  있었다고  정도의 돌무더기와 높은 경사의 조합이었다. 만만치 않은 하산이었지만 쉬엄쉬엄 걷다 보니 오전 11시쯤 원래 출발지였던 게르에 도착할  있었다. 모든 팀원들이 하산한 , 게르에서 짐을 챙겨 이틀 동안 걸었던 길을 되짚어 나오기 작하여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호텔에 도착하며 모든 트래킹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그토록 원하던 버킷리스트 한 가지를 달성한 지금, 또 다른 대자연을 만날 꿈을 꾸며 설레는 마음으로 새 리스트를 살포시 추가해본다. 티베트, 신장위구르, 히말라야..



* 다음 목표는 작년에 가려다가 개인 사정으로 인해 못 갔던 네팔 히말라야입니다 :)

* 일과 슬럼프에 치이는 가을이네요. 하루 한 문장 쓰기가 참 어렵지만, 다시 한 번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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