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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빈 Your Celine Nov 05. 2023

새로운 꿈을 사랑하는 게 두려웠을까

꿈을 소문내니 용기가 생겼다.

내가 음악을 소중하게 다루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엄마가 회사 경품으로 받은 검지 손가락만 한 빨간색의 YEPP MP3를 쥐어주었을 때부터였을까. 15세 시절 차마 유료를 다운로드할 수 없어 포쉐어드에 있는 음악들을 뒤지고 뒤져서 원본 음원을 발견하면 기쁘게 다운받았다. 아마도 이때가 음악을 소유했던 마지막 시대였다. 아니면 어디에도 위로받지 못해 위태로웠던 날 꼿꼿하게 걸어 다니다가 지하철에서 듣던 가사 한 줄에 하염없이 축축해져 버린 소매로 얼굴을 훔치던 날이었을까. 또 아니면 도무지 서사를 알 수 없는 가사들에 열광하는 대중들의 반응에 더 알 수 없는 이유로 내가 부끄러웠을 때였을까. 가사의 흐름으로 노래의 흐름을 따라가는 나로서는 힘든 부분이었는데, 예를 들면 에프엑스의 '딱 세 번 싸워보기 헤어질 때 인사 않기'나 엑소의 '이 초라한 초능력 이젠 없었으면 좋겠어'같은 독창적 가사들이 주범이었다. 아직도 이런 노래를 듣지 못하는 병(?)은 고치지 못했다. 


비트나 멜로디를 기반으로 하는 노래들이 대중적인 히트를 만드는 건 사실이기에, 가사에 감탄하는 노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 또한 사실이다. 어떠한 노래는, 노련한 가수들이 자신만의 감정과 호흡으로 가사를 읊어주었을 때 텍스트에서는 전해지지 않는 전율이 생긴다. 나에겐 소설보다 더 문학적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창구였다. 때론 작사 작곡을 직접 하는 가수들의 노래는 음성편지를 듣는 것 같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늘 강한 비트의 히트곡을 내는 아이돌 가수가 트랙 뒤에 숨어있는 수록곡에서 가사를 자신의 이야기인 양 읊어줄 때 새로운 매력을 알게 되는 순간을 즐긴다. 


늘상 노랫말에 예민했던 나는 자연스레 작사가를 꿈꾸게 되었다. 2020년 12월 4일, 나의 기본 메모장에 작사가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이후 3년간 메모장에는 꾸준하고 구체적으로 '작사'라는 단어가 적혔다. 다만 어떤 마음인지 정확하게는 설명하기 어려우나 '꿈'이라는 것에 대해 보수적으로 반응하는 나를 발견했다. 6년간 준비했던 공중파 아나운서에 대한 꿈은 돌고 돌아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허탈함이 아니다. 오랜 꿈을 붙잡고 있는다고 달고나를 찍어내듯 그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그래서 간절한 꿈에 오히려 간절하고 싶지 않은 이질적인 마음이었다. 새로운 꿈을 사랑하는 게 두려웠을까. 이 꿈은 변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 깊숙이에 두고 혼자서만 가끔 열어보았다.


그렇게 3년이나 지난 줄은 정말 몰랐다. 핑계였다. 지나 보니 그 문을 열어보는 게 무서웠던 거였다. 하루는 '당장 내일 죽는다면 오늘 뭘 남길 것인가'라는 다소 자조적인 고민을 던졌다. 가장 솔직한 답을 스스로에게 들을 것 같았다. 나는 좋아하는 선율에 가사로 하고 싶은 말을 남길 것 같다. 나조차도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그때부터 주변에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 사실 작사하고 싶어요."라고 말이다. 정확히는 '작사도' 하고 싶은 거지만.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재미를 줄 일들이 많아서, 아마 이번 생은 게으르긴 힘들 것이다. 만나는 사람들 마다 꿈을 소문내니 용기가 생겼다. 시작할 용기 말이다. 내가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검열을 거쳤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만큼 시도에 대한 확신이 있다는 증거였다. 


23년 십일월 사일, 첫 작사가 학원 강의실 문을 들어갔다. 

다음 이야기는 다음 주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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