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행을 먼저 떠난 어른을 찾는 것은 삶의 행운이자 영광이다
매 순간 좌표를 찍는 삶은 마음이 기우뚱할 때가 많다. 이내 내일을 살아내기 위해 저 아래부터 마음을 깎아내리다 보니 오뚝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좌표를 좀 잃어버리면 어떤가. 아니 도착했는데 예상했던 도착지가 아니면 또 어떠한가. 다시 찍으면 되는 것을.이라고 스스로 명치를 두어 번 토닥인다. 회사에 출근하는 나의 친구 A는 말했다. 삶의 좌표가 다른 사람에게 쥐어져 있다는 암울한 진실이 얼마나 섬찟한 일인지 아냐고. 자신의 4년 뒤의 모습은 13층 맨 왼쪽에 김선배. 10년 뒤 모습은 24층 두 번째 복도의 모서리 부근의 박 차장이었다. 한 건물 안에 자신의 좌표가 모두 존재한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을 때, 그녀는 회사의 일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눌어붙은 누룽지처럼 11월이면 힘없이 떨어지는 낙엽처럼 무언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저항이 곧 어색한 고통이라면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이다. 그 또한 의미 있는 행복이다. 다만 꿈이 큰 사람일수록 오늘 가야 할 길을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 우리의 삶은 내일 당장 거대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생각보다 더 긴 여행이기 때문이다. 긴 여행을 먼저 떠난 어른을 찾는 것은 삶의 행운이자 영광이다.
맨몸으로 바닷가를 향해 나아가는 청춘에게 바닷가에 다다른 어른이 말한다. 멀리 보아야 오래 걸어올 수 있다고. 바다에 오고자 하는 마음을 안고서, 물에 잠길 것이 무서워 시냇가에 발목만 담그고 있는 자는 결코 바다에 올 수 없을 것이라 충고한다. 그렇게 바다를 향해가던 청년은 점차 물에 잠겨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배꼽까지 차던 물이 올라온다. 어깨 위로 목 울대를 스치는 물보라에 고개를 위로 추켜올린다. 한 번 더 발을 내딛자 한 번씩 물아래로 몸이 잠겨 숨이 막힌다. 다시 한 발짝을 내딛는다. 머리를 위로 내밀고 저 먼바다를 바라본다. 뻐끔 뻐끔 푸.. 뻐끔 뻐끔 푸.. 물에 머리카락이 들어갔다가 나왔다 하는 와중에 점차 숨을 쉬는 박자가 자연스러워진다. 머리 뒤로 날아오는 갈매기나 제비들을 기쁘게 바라보기도 한다. 비로소 물에 잠겨본 자만이 바다를 만나게 된다. 그런 청년이 태어나기도 전에, 같은 마음으로 물속을 헤엄쳤던 어른이 말한다. 너만의 수영법을 배워야 오래갈 수 있다고. 그것은 바다에 몸을 맡겨본 자만이, 자신의 움직임에 집중한 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남들이 모두 헤엄치는 방법이나 당장 숨을 두어 번 빠르게 쉬기 위한 개헤엄은 예상치 못한 순간 가라앉아버릴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일임을 말한다. 그것이 혼란스러운 청년에게 얼마나 매혹적인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 바다 밑 가라앉아버린 사람들을 숱하게 목격한, 청년을 사랑하는 어른이었다. 청년이 바다를 유영하는 모습을 목격하는 순간 어른은 단정한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