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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크나인 Apr 13. 2021

곱슬머리가 어때서

파마한 게 아니라 자연산이에요

봄비가 내린다. 건조한 대지를 촉촉하게 적셔주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비 내음이 긍금했다. 어떤 향일까? 방충망이 없는 쪽의 창문을 열었다. 나무 향을 머금어 상큼하면서도 야릇한 비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그 향기에 좀 더 집중하려는 순간, 바람이 방안으로 훅 밀고 들어와 머리와 얼굴을 때리고 지나갔다.


정성스럽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이 위로 솟구쳤다. '뭐야...' 하는 마음으로 거울을 보니 머리가 산발이 됐다. 바람을 못 이긴 머리카락은 바람이 지나간 방향 그대로 자리를 이동해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 모양이 참으로 우스꽝스러웠다. '이 지긋지긋한 곱슬머리...'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곱슬머리다. 어릴 때는 곱슬머리가 아닌 줄 알았다. 초등학생 때 사진을 보면 바가지 머리에 곱슬끼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중학교를 진학하면서 두발 단속으로 머리를 짧게 깎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후 고등학생이 되어 머리카락을 기르기 시작하자 내 몸에서 가장 위쪽에 자리한 소중한 머리카락들은 웨이브를 그리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 가장 부러웠던 사람은 공부를 잘하는 사람도 잘 생긴 사람도 아니었다.(공부에 큰 관심은 없었고 얼굴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바로 찰랑거리는 부드러운 머릿결의 생머리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등교하는 버스 안에서 창문 사이로 부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머리를 쓸어 넘기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손으로 쓸어 넘긴 머리는 기가 막히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곱슬머리인 나는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액션이었다. 그렇다. 바람 따라 움직인 곱슬머리는 바람이 멈추면 다시 제 위치로 돌아오지 않는다. 짧으면 움직이지도 않고, 어중간한 길이부터는 원상태로 돌아오길 완강히 거부한다.


꼬불거리는 내 머리는 큰 스트레스였다. 그나마 중학생 때는 짧은 스포츠머리여서 곱슬머리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지 않았는데 고등학생이 되고 헤어 스타일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 고통이 시작됐다. 친구 놈들은 개털이다. 라면 머리다.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파리지옥이다. 라며 놀려댔다.


같은 반에 나와 비슷한 곱슬머리가 서너 명 정도 있었다. 그중 한 명과 동네 화장품 상가에서 스트레이트 약을 사 일주일에 한 번씩 직접 머리를 폈다. 순간은 기뻤지만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일주일에 한 번 했던 작업을 5일에 한번, 3일에 한 번씩 하다 매일 스트레이트 파마약과 씨름을 하기도 했다.


대학생 때는 힘들게 머리를 기른 뒤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펴는 스트레이트 매직 파마를 했는데 머리카락이 녹아버려 다시 짧게 자르는 아픔을 겪었다. 그 뒤 헤어스타일로는 변화를 줄 수 없다고 생각해 염색이나 코팅같은 색상으로 변화를 주기도 했다.


곱슬머리에게 비 오는 날은 최악이다. 아침에 드라이로 싹 말리고 정리를 해 어느 정도 펴진 듯한 머릿결은 습한 날씨 덕에 조금씩 조금씩 곡선을 그렸다. 여기에 우산이 없어 비라도 맞게 되면 바로 꼬불꼬불로 변해갔다. 차라리 계속 비를 맞으면 그나마 낫다. 비가 그친다거나 비를 맞지 않는 실내로 들어가면 젖었던 머리가 말라가면서 부스스함을 더해 정말 최악의 상태가 된다. 그 덕에 내 머리는 항상 짧았다. 짧게 잘랐다가 조금 길어질 것 같으면 다시 짧게 자르기를 반복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랜 세월 곱슬머리로 지내다 보니 나름 관리 방법을 터득했다는 거다. 가르마를 반대로 타는 게 그 방법이다. 가르마를 타지 않더라도 반대로 머리카락을 빗어 넘기면 훨씬 자연스러워지는 효과가 있다.


얼마 전 미용실에 갔을 때다. 짧게 잘라달라고 하려다 문득 한번 길러보고 싶다는 마음에 조금만 잘라달라고 했다.

헤어디자이너는 “곱슬머리가 정말 자연스럽고 잘 어울리세요~”라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스트레스라고 말했더니 “생머리인 사람들은 곱슬머리를 부러워하더라고요. 돈 들여 파마도 하잖아요. 너무 생머리인 어떤 남자분은 머리카락이 심하게 뻗쳐서 그게 스트레스라며 일부러 파마도 하는걸요. 고객님이 가진 곱슬머리를 잘 관리하고 활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은 예전보다 곱슬머리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하지만 그래도 그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되고 용기가 됐다.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일 수도 있고 은근히 상술이 내포된 말일 수도 있지만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칭찬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다.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 생각하는 것. 내가 가진 단점이 누군가에는 부러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맞다. 지금은 개성이 중요한 시대다. 내가 가진 개성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봐야겠다.


학창 시절 나를 놀렸던, 내 곱슬머리를 무시했던 녀석들을 향해 크게 외치고 싶다.


곱슬머리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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