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는 그냥 왼손잡이일 뿐이다
즐거운 점심시간, 동료들과 함께 거리로 나와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메뉴는 부대찌개였다. 모 과장이 전날 과음을 했다며 칼칼한 국물에 햄과 라면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해서다. 주문을 한 찌개가 나오고 각자 앞접시에 한 국자씩 퍼서 몇 술 떴을 때였다.
일행 중 한 명이 왼손잡이여서 왼손으로 식사를 했는데 자꾸만 오른손으로 식사를 하는 옆 동료와 팔이 부딪혔다. 오른손잡이 동료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불편함을 드러냈고, 왼손잡이 동료는 미안함을 표현하며 바깥쪽으로 조금씩 빠져 앉아 남은 식사를 마저 했다.
왼손잡이라면 위와 유사한 상황을 겪어봤을 것이다. 내가 왼손잡이가 되고 싶어 된 것도 아닌데 (물론 안타까운 사고나 다른 상황 때문에 오른손이 아닌 왼손을 주로 쓰는 경우도 있다.) 왼손잡이를 대하는 사회의 시선, 주변의 시선은 마냥 곱지 않다.
세상 속에서 왼손잡이는 비주류다.
정통파나 옳은 쪽은 항상 오른쪽이다. 반면 어떤 입장의 반대나 잘못은 언제나 왼쪽이다. 우파, 좌파처럼 말이다. 이는 동, 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유교적 사상에 힘입어 예를 중시하며 다수와 다르면 과감하게 싹수를 잘라버렸다. 서양에서도 왼손잡이들은 줄곧 차별을 받아왔다.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하기도 하고 결혼 부적합 판정을 받기도 했다.
영어에서 오른손잡이(right)들은 권리(rights)를 갖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뒤에 처져 남겨진다(left behind). 영어 단어 left(왼쪽)는 네덜란드와 독일의 북해안 지역인 프리슬란드 언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약함/쓸모없음(luf)을 뜻할 정도로 왼손잡이에 대한 차별은 오늘 내일 일이 아니었다.
전세계적으로 왼손잡이는 약 10%가량이다. 신기한 건 오랜 시간이 흐르고 역사와 문화가 바뀌는 흐름에도 불구하고 이 수치는 비슷하다는 것이다. 더 늘어나지도 더 줄어들지도 않는 왼손잡이다. '왼손이 만든 역사'라는 책을 보면 이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왼손잡이가 되면 불이익을 많이 받으므로 이를 숨기거나 의도적으로 오른손잡이가 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다만 고대 잉카 문화만이 왼손잡이는 운이 좋다고 여겼다.
사실, 나는 변절자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왼손으로 식사를 하고 왼손으로 글씨를 썼다. 자식이 남들과 다른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모님은 '강제 교정'을 택했고, 그 덕분(?)에 지금은 식사와 글쓰기는 오른손이 담당하고 있다. 내 뜻과는 상관없이 왼손잡이로 태어난 나는, 마찬가지로 내 뜻과는 별개로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식사와 글쓰기를 오른손으로 하게 됐다.
지금은 왼손으로 젓가락질이나 글씨 쓰기는 하지 못한다. 다만, 공을 던지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 때는 오른손이 아닌 왼손이 먼저 나선다. 축구를 할 때도 왼발이 주 발이다. 지갑이나 휴대폰을 넣을 때는 왼쪽 주머니에 넣고 가방도 왼쪽 어깨로 메며 왼쪽 눈이 주시다. 탁구도 볼링도 테니스도 배드민턴도 당구도 야구도 모두 왼손이 메인이다.
21세기를 살면서도 왼손잡이로서 불편한 게 없다면 거짓말이다.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할 때 왼쪽 주머니에서 왼손으로 교통카드를 꺼내 오른손으로 옮겨 카드를 찍는다. 삼겹살 자르는 일은 같은 자리에 있는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준다. 면과 국물을 함께 뜰 수 있는 국자는 오른손으로만 사용이 가능하다. 군대에서는 왼손잡이를 위한 소총이 없다. 하지만 오른손잡이가 대다수인 사회에 나도 모르게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고, 이미 적응이 된 부분도 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왼손잡이만을 위해 전용 물건을 파는 샵이 꽤 있다. 직접 가보지는 못하고 온라인 상에서 봤을 때, 눈이 휘둥그레 해질 정도로 신기하고 기발한 상품들이 많지만 구매 대신 불편함을 감수하며 또한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적응해가며 살아가고 있다.
최근 주변에 왼손으로 밥을 먹는 사람이 많아졌다. 지금은 예전만큼 왼손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하지 않고, 부모도 아이의 왼손 사용을 굳이 바꾸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억지로 바꾸려다 보면 뇌에 혼선이 와 언어장애 같은 부작용이 올 수도 있다는 보도 때문일 수도 있다.
왼손잡이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보다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왼손을 쓰든 오른손을 쓰든 처음부터 아예 관심이 없거나 알 바 아니라는 사람도 있다. 왼손잡이를 존중해주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왼손잡이를 보는 불편한 시각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내가 왼손을 쓰는 것을 보면 어떤 이는 “왼손잡이는 천재라는데 이야~ 대단하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불쾌한 것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사실이다. '내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나폴레옹, 베토벤, 니체, 빌 게이츠처럼 정말 왼손잡이 천재라면 여기 이러고 있겠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직 잠재력이 터지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라는 헛된 희망을 가져보기도 한다.
따뜻한 햇살이 등 뒤쪽을 정면으로 내리쬐어서일까? 갑자기 등이 간지럽다. 오크색 탁자 위에 놓여있는 효자손을 집어 올려 등 쪽으로 밀어 넣었다. 역시, 등을 긁는 손도 왼손이다.
왼손잡이는 거울에 비친 오른손잡이가 아니다. 소수의 왼손잡이도 다수의 오른손잡이와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아파하고 같이 기뻐하는 존재다.
왼손잡이는 그냥 왼손잡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