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우리의 나이는 다섯 살
결혼행진곡을 들으며 힘차게 세상을 향해 발을 뻗은 지 어느덧 5년이 흘렀다.
5년 전 이날, 나는 떨리는 가슴으로 그녀의 길고 하얀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우리는 평일인 금요일 오후에 결혼했다. 가족과 친인척만 참석한 가운데 예식을 치렀고 저녁 7시 30분에는 지인들을 초대해 웨딩 세리머니를 진행했다. 결혼식 당일은 부슬비가 내렸다. 리허설 때까지만 해도 해가 쨍쨍했는데 예식 시간인 오후 5시 30분이 가까워지자 하늘이 흐려지더니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다. 야외에서 예식을 진행한 터라 걱정을 했으나 다행히 관계자 분들이 속이 비치는 우산을 공수해 와 별 탈 없이 예식을 치를 수 있었다. 아내와 난 '결혼식 때 비가 오면 잘 산다'는 속설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다독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는 그쳤지만 8월 중순의 늦더위가 몰아쳤다. 웨딩 세리머니는 실내에서 진행했고 식을 마친 야외 공간은 특별히 DJ를 섭외해 맥주를 무제한으로 제공하며 한여름 밤의 꿈처럼 흥겨운 '맥주 파티'를 하고자 기획했는데 덥고 습한 날씨로 인해 야외로 나가 파티를 즐기는 분들이 별로 없어 지금까지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재미있는 것은 아내는 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싱글벙글 미소가 한가득이었다. 신부 입장 순서에서도 그녀는 환한 미소와 함께 두 손을 흔들며 천사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반면 나는 주례 대신 인사말을 하는 어머니의 따뜻한 음성과 귀한 이야기에 울컥했고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면서 또 한 번 울컥했고 무엇보다 축가를 부르며 다시 한번 울컥하고 말았다. 그런 나에게 아내는 말없이 다가와 나의 등과 어깨를 토닥이며 살포시 안아줬다. 5년간 같이 살면서 그때를 회상하니 아내는 늘 그런 존재였다. 흔들리는 나를 잡아주었고 나의 결정을 존중해주었고 스스로 앞장서면서 부족한 나를 채워주었다.
결혼식을 마친 다음날인 토요일, 우리는 신혼여행을 겨울로 미루는 대신 1박 2일 일정의 대학원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다.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아내의 권유였고, 함께 입학 원서를 접수한 뒤 나란히 합격 통지를 받은 것이다. 이후 2년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주경야독하며 일과 공부를 병행했다.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학위를 받은 것은 '함께'였던 덕분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고마워했다.
돌아보면 지난 5년 동안 정말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작은 일에 함께 기뻐했고 그보다 더 사소한 일로 다투면서 서로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 기대하고 바라고 내가 원하는 선에 닿지 못하면 아쉬워하고 실망도 했다. 하지만 서로의 본모습 그대로를 조금씩 인정하고 서로 같지 않음을 받아들이면서 엉켰던 실타래가 점차 풀리기 시작했다.
나는 지인의 다양한 기념일 중에 결혼기념일을 최우선으로 챙기려고 노력한다. 결혼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새롭게 태어난 날이기 때문에 그 어떤 날보다 소중하고 고귀하기 때문이다.
올해 다섯 살이 된 우리의 소중한 기념일 저녁 식사는 아내가 좋아하는 해산물로 정했다. 결혼 1, 2년 차 때는 호캉스도 가고 바다도 보러 갔지만 올해는 여러 상황 상 멀리 가지 않기로 했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서 서로에게 소중하고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것이며 재미있고 행복한 내일의 삶을 설계할 것이다.
“입보다는 귀를 열고, 잘 말하기보다는 잘 들으며 잘 살겠습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우중 결혼식에서 우산을 과감히 뒤로 던지며 직접 축가를 부른 뒤 내가 하객들 앞에서 크게 외친 다짐이다. 결혼한 지 5년이 된 지금,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그때 내가 한 말을 한 번이라도 떠올려 본 적이 있는가? 그 말을 지키며 살았는가? 입만 살아서 내뱉은 인사치레였던 건 아니었나?
아직 5년밖에 안된 새내기 부부(10년까지는 신혼이 아닐까...?)지만 어떤 마음으로 아내와 결혼을 했고 지금은 어떤 마음이며 앞으로는 어떤 생각과 행동으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면서 마음을 다잡아 본다. 5년을 넘어 10년, 20년, 50년까지 지금처럼 존중하면서 멋있게 살아가고 싶다.
초록빛 나무 사이에서 매미들이 목놓아 외치는 맴맴 소리가 마치 우리에게 보내는 응원의 함성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