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하나 없는 검은색
몰려오는 피로
눈 감을 수 없는 적막감
길을 잃은 도로
눈 떠도 보이지 않는 위협감
짙은 어둠이 내린 도시
사라지는 그림자
이질적인 풍경과 사람, 유쾌한 분위기는 다른 대륙에서 느낄 수 없는 아프리카만의 매력이다. 마트에 갈 때 횡단보도 앞 운전자는 시도 때도 없이 인사를 해준다. 잠보! 지나가는 사람과 직원도 유쾌하다. 사람 한 명 한 명은 친화적인 반면 마을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상당히 위협적이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서 절반은 호기심, 나머지 반은 소지품에 향해있다. 타 여행지에서 동양인에게 느끼는 신기함의 눈빛과는 확연히 다르다.
탄자니아의 경우 여행자를 대상으로 한 강도 범죄가 매우 빈번하여 혼자 밖에 다니는 것에 대해 강하게 경고한다. 백팩을 메고 다녀도 안된다. 가방을 잡은 채로 벗을 때까지 그대로 끌고 가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은 차라리 쇼핑백을 들고 다니길 추천한다. 몸은 다치지 않고 쇼핑백만 뺏기면 그만이니 그 방향이 차라리 낫다는 판단이다. 탄자니아에서 군 복무를 한 친구는 실제로 버스에서 4인조 강도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의 경험은 충격적이다. 사지가 강도들에게 잡혀 능지처참을 당하기 전처럼 대자로 펼쳐졌고 그 사이 가방에 모든 것을 털어 갔다고 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매우 충격적이었다고 전했고 당시의 묘사가 워낙 생생하여 직접 강도를 만난 기분이었다.
세렝게티에서 게임 드라이브가 끝나고 킬리만자로로 돌아가는 길에 타고 있던 차가 세렝게티 한복판에서 고장이 났다. 부품이 필요하여 다른 차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덕분에 마사이족과 직접 인사도 할 수 있었다. 마사이족 아이의 표정은 정말 순수했다. 서로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정지된 장면에서 마사이족의 어린아이가 먼저 꺼낸 말은 달러, 그리고 초콜릿이었다. 아마 과거의 여행자들이 이들에게 돈과 군것질거리를 건네주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미디어에서 보던 사자가 잡은 동물을 탈취하고 맹수와 맞서는 마사이족이 아니었다. 어른들은 폴더폰이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으며 아이들은 돈의 가치를 알았다. 가이드도 이제는 마사이족의 삶이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해 주었다.
몇 시간을 기다리고 나서야 다른 트럭이 도착했고 드디어 도착한 입구 쪽 도로. 나와 동승자인 송 군은 다시 다른 차로 갈아타야 했다. 이미 밤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가는 길에는 경찰차 수 대가 우리가 탄 차 주위를 포위하고 검문하기도 했다. 수상한 차의 범죄나 테러를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이름 모를 작은 도시에 도착하고 이미 깜깜해진 세상. 운전사는 여기에서 기다렸다가 다시 차를 갈아타라고 말해주었다. 몇 번이나 반복되는 환승, 가로등도 없는 도시에서 차를 기다리는 동안 옆에 있는 송 군이 큰 의지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운전사는 세미 정장 차림에 굉장한 거구였다. 다른 운전사와 다르게 가볍게 인사 후 말없이 운전만 한다. 송 군과 나는 동시에 구글맵을 켜고 수군거린다. 인터넷이 잘 터지지 않던 세렝게티와는 달리 다행히도 3G 인터넷이 연결되었다. 속도는 매우 느렸지만 먼 옛날 모뎀을 사용하여 라이코스에 접속했을 때보다 더 큰 기쁨과 안도가 느껴졌다. 이 차가 정말 킬리만자로로 향하는 것이 맞을까? 다른 곳으로 빠져서 납치당한다면 아무 저항도 못하고 다 털리겠구나. 각 아프리카 나라의 범죄 유형이 떠올랐다. 탄자니아는 돈과 물건만 빼앗는 점이 큰 위안이었다. 어떤 나라는 성별과 구분 없는 강간이나 장기시장이 존재하기까지 한다. 만일 범죄를 맞닥뜨린다면 줄 수 있다면 내 모든 돈을 줄 테니 각막과 콩팥만은 지키고 싶었다. 물론 엉덩이를 가장 지키고 싶었다.
몰려오는 엄청난 피로에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데 송 군이 잠에 든다. 나는 더 눈을 부릅뜬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송 군이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자 거짓말같이 나의 눈이 스르륵 감긴다. 그렇게 교대 근무하는 미어캣처럼 구글맵을 보며 오다 보니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무사히 도착하니 안전하게 데려다준 운전기사에게 괜스레 미안해진다.
숙소에 도착하여 샤워를 하니 이제야 마음이 놓이고 긴장이 풀린다. 아주 깊은 잠에 들 수 있었다. 긴 하루였다. 마지막까지 아프리카에서는 아무 일도 없이 안전하게 여행을 마쳤다. 그들을 불신했던 마음이 미안하고 인사에 조금 더 밝게 답해주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미안한 마음을 한편에 간직하고 탄자니아를 떠나 런던에 도착한 날, ATM기기 앞에서 깨달았다. 케냐에서 체크카드가 해킹당해 돈이 모두 털렸다는 것을. 그래도 괜찮다. 여행전용 체크카드에 돈을 분산시켜 넣어두었기에 피해액은 다행히도 40만 원가량으로 크지 않았다. 각막과 콩팥이 건강하게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빼앗긴 나라도 되찾았지만 한번 잃은 각막과 엉덩이는 되찾을 수 없다. 여전히 건강한 것에 만족한다.
아프리카는 아름답지만 위험하다. 해맑은 꽃길인 줄 알았는데 무서운 코끼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