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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vus Dec 30. 2020

36. 어딜 가도 혼자였다

  영재에게 주어지는 사회적인 어려움은 이전에 숱하게 살펴본 바와 같이 매우 다양하지만, 아마 그중에서도 성인이 된 이후까지 괴롭히는 문제는 친구, 즉 인간관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학창 시절에 영재가 겪는 인간관계 속 어려움은 꽤 연구되어 있다. 영재의 교우 관계에 대한 연구는, 연구에 따라 영재 집단이 교우 관계가 원만하다고 나타나거나, 그렇지 않다고 나타내는 등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영재 아동이 일반 아동보다 긍정적인 양상을 나타냈다고 보고하는 연구는 관찰추천제를 통해 추천되는 영재 아동이 이미 심리, 사회적으로 잘 적응한 아동이라는 한계점을 지적하고 있다.1) 영재의 상담 요구를 분석한 다른 연구는, 영재 아동의 교우 관계에 대한 전체적인 상담 요구는 크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더욱 원만히 지내고 싶거나 자신을 이해하는 친구가 없다는 점에서는 상담 요구가 컸다고 보고하고 있다.2) 미성년 영재에 대한 연구는 위에서 인용한 사례 이외에도 다수의 연구가 이루어져 있지만 대부분 학교 내 인간관계에 대한 분석이며 성인 영재에 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높은 장벽을 세우고 그 안에 틀어박힌 이유, 사람에 대한 실망


  아마 내가 혼자였던 이유는 내가 높은 기준을 세우고 그 안에 틀어박혀 살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내가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기준은 1) 자신의 전문 분야를 파고들 것, 2) 악기 연주를 할 것, 3) 언어를 공부할 것 세 가지였다. 이런 요소를 갖추고 있으면 대게 친해지고 싶어했지만, 이런 사람은 매우 드물었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이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는지 알 수 있을 만큼 다가가지도 않았다. 굳이 다가가지도 않았고, 당시의 상태가 불만족스럽지도 않았으니 주변에 사람이 적은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다가오는 사람을 굳이 밀쳐내지도 않았다. 단지 '친밀한' 관계가 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은 이유는 선천적으로 사람에 관심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사람을 보며 많은 실망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을 찾아 인터넷의 다양한 모임에 참여했는데, 그런 모임 역시 작은 사회인 만큼 수많은 불합리가 있었다. 일부가 모여 텃세를 부리고 보잘것없는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 그런 사람이 수년이 흘러 성인이 된 이후에도 비슷한 행동을 더 당당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고, 애초 텃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배울 만큼 배운 성인들인 경우도 있었다. 생물을 키우는 모임에서는 자신이 키우는 생물의 현금 가치를 보전하기 위해 안정적으로 생물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배척하기도 하고, 독점한 정보를 권력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이 싫었다. 하지만 저런 무리에 동조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실망을 넘어 혐오감이 느껴질 때면 모든 모임에서 나가고는 했다.




나와 같은 사람은 정말 드물다


  나는 점차 자신이 많은 사람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런 사실을 알고도 대학교에 입학하며 나와 비슷한 학생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다. 안 좋다고 인식되는 학교는 아니었고, 성적보다 학생이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를 더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특기자 전형과 유사한 입시 전형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나처럼 하고 싶은 것에 열중한 그런 학생을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다. 그런 기대가 깨지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와 같은 전형으로 입학한 친구들은 다른 과에서 편입하며 생물학 공부를 막 시작하거나, 생물학을 공부했다고 자부하지만 사실은 아는 것이 거의 없는 그런 친구들이었다. 나를 이해하는,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친구가 없다는 현실은 학교에서도, 영재원에서도, 그리고 대학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게 요구하기만 할 뿐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깊게 파고든 결과, 나는 어릴 때부터 남들은 하지 못하는 다양한 기술과 대개 알지 못하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추어의 관점에서 꽤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았고, 다양한 분야를 파고든 결과 서로 다른 분야를 접목해 문제점을 해결할 수도 있었다. 그런 능력의 결과는, 나에게 요구하기만 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은 나의 능력을 이용하고자 다가온 경우였다. 그저 무언가를 부탁하고 물어보기 위해 다가왔고, 문제를 해결하면 사라지고는 했다. 얻은 도움에 감사를 표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었다. 꾸준히 연락하는 사람도 결국은 나의 도움을 얻고자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도움을 주며 기쁨을 느끼던 때도 있었지만 결국 요구하기만 하는 사람들에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지식을 나누며 즐거움을 얻기에는 요구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들의 취미를 도와주고, 설계를 도와주고, 고등학교, 대학교 연구 과제를 도와주고 나서 감사 인사라도 받으면 운이 좋은 경우였다. 거의 모두가 내게 무엇인가를 바라며 먼저 다가왔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날 필요로 하지 않고 내게 다가오지 않았던 사람과 친해지고 싶어하기도 했다.


  서로 얼굴을 보는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학교에 입학하자, 어느새 나는 질문을 받아주고 과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가 완성한 과제를 몇 명이 받아 가면, 이내 과 전체에 퍼지는 식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그 몇 명에게 과제를 계속 넘겨주었는데, 거절하는 것보다 넘겨주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덜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내 도움을 받지 않으려 하거나 받은 도움에 확실히 고마움을 표현하는 사람과 친해지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내 능력이 아닌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References

1) 여상인, and 박상희. "초등과학 영재아동과 일반아동의 교우관계 비교." 영재교육연구 15.1 (2005): 49-66.

2) 성희경, and 한기순. "영재의 고민과 상담요구에 대한 개념도 분석." 청소년학연구 18.9 (2011): 309-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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